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 요15:16, 16:33
요 15:16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
요 16:33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세상을 보면, 이기는 사람도 있고 지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무엇이 이기는 것이냐고 다시 묻게 됩니다.
그렇다면 나는 이기는 자로 살고 있는가 또 다시 묻게 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의 배경은 최후의 만찬자리에서 이미 가롯 유다가 자리를 비우고, 열한 제자들과 함께한 늦은 저녁시간, 곧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전날 밤에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요16:33절의 말씀입니다.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그 누구도 이 세상에서 죄와 사망으로 말미암는 환난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또한 그 누구도 승리를 선언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여기에 승리의 선언이 있습니다. 바로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선언입니다.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인생이 역경이나 힘든 문제에 부딪힐 때는 세 가지 타입으로 나눠진다고 합니다.
하나는, 그냥 포기하고 도망가 버리는 사람입니다. 떠난다 하여서 퀴터(quitter)형이라고 합니다.
다음으로는, 포기하고 도망가지는 않지만, 그냥 그 자리에 주저앉아 현상유지나 하는 있는 사람입니다. 이들을 캠프를 치고 앉아 그냥 안주하는 사람이라 하여 캠퍼(camper)형이라고 합니다.
그 다음으로는, 산과 같은 역경을 만나면 모든 힘을 다해서 기어 올라가 결국은 정복해 버리는 사람입니다. 산을 타고 정복하는 사람이라 하여 클라이머(climber)형이라고 부릅니다.
여러분은 어떤 타입을 원하시나요? 역경이 닥치면 도망치는 퀴터가 되시렵니까? 그냥 그 문제에 주저앉아 있는 캠퍼가 되시렵니까? 아니면 역경이라는 산을 넘는 클라이머가 되시렵니까?
당연히 역경을 헤치고 나가야 하지요~
그런데 문제를 정면에서 돌파하려고 하는 인간의 생각이 하나님의 생각을 능가할 수는 없습니다.
인간의 생각과 노력으로 산 같은 역경을 넘어간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해결의 열쇠는 여기에 있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김은 곧 우리의 이김이라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의 말씀입니다.
고전 15:5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그 과정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2011년에 별세하신 온누리교회 하용조목사님(1946 평남 진남포출생. 4대 기독교가정)을 많은 분이 알고 있습니다.
하목사님의 지난 과거의 삶은 아픔과 실패의 언덕들이 많았습니다. 원하는 대학에 가지 못해서 재수하면서 겪은 좌절감을 통해서 인생에 실패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뼈저리게 느낀 일이 있었습니다. 대학시절에 폐병을 앓으면서 피를 토하는 고통을 겪다가 주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대학생선교회를 통해서 민족에 대한 비전을 꿈꾸고, 젊은이들에 대한 열정과 사랑을 얻게 되었습니다.
약한 몸으로 인해 도리어 책을 읽은 일에 몰두하게 되어 동서양의 유명한 소설들과 시들을 샅샅이 탐독하여서 ‘두란노서원’을 이루게 되는 데에 폭넓고 깊은 시야를 얻게 하였습니다.
20세 후반에 연예인 교회를 개척하고 7년간 연예인들을 대상으로 목회를 열심히 했는데, 또다시 건강이 악화되어 목회를 당장 그만두어야 한다는 의사의 통보를 받고, 서글픈 심정으로 모든 것을 정리하고 영국으로 가게 된 일이 있었습니다.
거기서 존 스타트를 만나 거룩한 지성과 기독교 사회에 대한 책임에 대해 깊은 도전을 받았고, 데니스 레인을 통해서는 강해설교의 능력을 알게 되었고, 짐 그리에엄과의 만남을 통해서는 성령의 기름부으심에 대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얼마간 영국에서 이민교회 목회를 한 후에 돌아와서 1985년 12가족이 모인 가운데 성경공부로부터 시작한 온누리교회가 탄생하게 됩니다. 처음 7년간은 QT를 중심으로 성경공부 훈련을 통한 기초를 다지는데 시간을 바쳤습니다. 그 이후로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교회로 성장했습니다.
그리고 2000년 1월 간암초기 진단을 받았습니다. 폐병 당뇨병 간암 등 위태위태한 것 같은 그의 삶이 도리어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능히 이루고 있었습니다.
하용조 목사님은 입버릇처럼 이 말을 고백한 바 있습니다.
“내가 목회를 계속할 수 있다는 것은 기적입니다.”
그의 삶의 어떠한 역경도 쓸모없는 것이 없었습니다.
도리어 하나님의 비전을 이루는 과정이었습니다. 성경 욥기 주인공 욥도 환난을 당했지만, 도리어 그 환난으로 인하여 더 깊은 영적인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물론 하나님이 주시는 복도 환난 전보다 갑절로 받은 것은 다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그러면,
1. 우리가 어떻게 담대하게 이 세상을 이길 수 있습니까?
1)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담대하게 세상을 이길 수 있습니다.
요일 5:4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주의 제자들이 이 믿음으로 세상을 이김을 보여주었습니다.
2) 말씀을 붙잡고 사는 사람은 담대하게 세상을 이길 수 있습니다.
수 1:7 오직 강하고 극히 담대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령한 그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수 1:8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
가나안 땅을 정복한 여호수아가 이것을 보여주었습니다.
3) 기도하는 사람은 담대하게 세상을 이길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 요15장 16절 말씀입니다.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
요한일서 5장 14절 말씀입니다.
요일 5:14 그를 향하여 우리가 가진 바 담대함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초대교회가 이것을 보여주었습니다.
여러분, 기도는 도를 쌓는 일이 아닙니다.
기도는 내 일이기 전에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입니다.
기도는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이끌림을 받도록 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내 이름으로 사는 자는 결국 넘어지고 말지만, 주님의 이름으로 사는 자는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납니다. 우리를 위해 죽고 다시 사신 주님의 이름으로 살기 때문입니다.
4) 천국에 소망을 둔 사람은 담대하게 세상을 이길 수 있습니다.
히 10:34 너희가 갇힌 자를 동정하고 너희 소유를 빼앗기는 것도 기쁘게 당한 것은 더 낫고 영구한 소유가 있는 줄 앎이라
히 10:35 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게 하느니라
우리는 거듭난 사람들입니다. 이미 영원한 부활에 참여한 자들입니다.
부활장인 고전 15장 마지막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고전 15:58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그 어떤 고난도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을 헛되게 할 수 없습니다.
오직 우리에게는 영원한 이김이 있을 뿐입니다.
주의 일에 더욱 힘쓰십시오. 이 세상에 대하여 담대하게 사십시오.
주 안에서의 수고가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주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직전에 제자들에게 남기신 말씀을 이제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아멘’할 수 있습니다.
아멘이십니까? (아멘)
그렇다면,
2. 우리가 세상을 이기게 하신 중요한 근거는 어디에 있습니까?
16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요 15:16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
여러분!
왜 돼지에게 꼬리가 달려 있습니까?
네, 꼬리에 돼지가 달릴 수 없어서 그럽니다. 의미가 있는 넌센스퀴즈였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달려 있는 것이 아니란 말입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다!
여러분! 바뀔 수 없는 중요한 것은 모두 선택받은 것입니다.
내가 태어날 때 내가 부모를 선택한 일이 없습니다.
내가 태어날 때 남자로 혹은 여자로 태어나기를 선택한 일이 없었습니다.
자신이 한국 사람이 되겠다고 선택하지도 않았고 모습이나 피부 색깔도 선택한 일이 없습니다.
배우자 선택도 그렇습니다. 나는 그를 선택했고, 그는 나를 선택했습니다. 선택받은 것입니다.
태어나는 날도 내가 선택하지 않았고, 이 세상을 떠나는 날도 내가 선택하지 않습니다.
생각해보세요~
자기 선택은 자기를 넘어설 수 없습니다. 자기를 벗어날 수 없습니다. 과거를 벗어날 수 없습니다. 사람보다 물질이 앞섭니다. 내면적 가치보다 외면적 가치가 앞섭니다. 희생적 사랑보다 이익추구가 앞섭니다. 그렇기에 사람이 자기 스스로 선택하는 인생을 산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가를 알아야 합니다.
인생을 보면,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닌, 하나님의 선택에 인도받은 선택이 되었음을 알 때 그 은혜와 복을 깨닫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내가 선택되었다는 것은 매우 놀랍고도 중요한 사실입니다.
내가 선택받은 존재라는 것은 우리의 믿음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기초이며 시작입니다.
이것은 나의 존재에 대한 매우 중요한 발견이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구원받은 자로 선택되었음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와 기쁨이 아니면 설명될 수 없습니다.
사도 바울이 에베소서에서 전합니다.
엡 1:4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엡 1:5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그뿐만 아니라, 주님은 또 묻고 계십니다.
오늘 본문 요15장 16절 가운데 부분입니다.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너희를 세상으로 ‘가라’고 보낸 이가 누구냐?
또한 너희에게 ‘열매’를 맺게 하는 이는 누구냐?
->바로 지금 너에게 말하고 있는 나 예수다!
->그러므로 너를 택한 나 예수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리라!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에게 들려주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1. 어떻게 담대하게 이 세상을 이길 수 있습니까?
1) 믿음으로 사는 사람! (요일5:4)
2) 말씀을 붙잡고 사는 사람! (수1:7)
3) 기도하는 사람! (요15:16, 요일5:14)
4) 천국에 소망을 둔 사람! (히10:34-35)
2. 우리가 세상을 이기게 하신 중요한 근거는 어디에 있습니까?(요15:16)
1)내가 너를 택했다.
2)말씀을 붙잡고 가라.
3)내가 열매를 주리라
4)이를 위해 내 이름으로 구하라 다 받게 하리라
오늘을 살고 있는 나에게 이김을 주신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를 택했다." 아멘!
기도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