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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낮예배
2023.07.29 18:59

쉼을 창조하신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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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한봉희목사
설교일 2023-7-30낮
본문말씀 히브리서 4:3,10-11


쉼을 창조하신 하나님 / 히브리서 4:3,10-11


4:3 이미 믿는 우리들은 저 안식에 들어가는도다 그가 말씀하신 바와 같으니 내가 노하여 맹세한 바와 같이 그들이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다 하였으나 세상을 창조할 때부터 그 일이 이루어졌느니라

4:10 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이 자기의 일을 쉬심과 같이 그도 자기의 일을 쉬느니라

4:11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이는 누구든지 저 순종하지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



옛날에 비하여  오늘을 보면, 없는 것이 없을 만큼 현대문명 속에 살고 있습니다.

상상도 못했을 이웃나라, 먼나라를 한나절에 비행기로 왕래하고 있습니다.

정글 오지 마을에 있는 가족과 휴대폰으로 얼굴을 보며 대화할 수 있습니다.

지식의 부요함도 이루 말할 수가 없어서, 인터넷으로 모든 정보를 얻어내게 되었습니다.

사람의 노동으로 해야 할 일을 로봇에게 맡기고, 일일이 사람의 손으로 해야 했던 일을 컴퓨터가 상단부분을 감당해주고 있습니다. 심지어 의사의 손으로 수술해야 하는 부분을 로봇팔이 더욱 정교하게 하고 있습니다.

 

, 그렇다고 오늘날 사람들은 놀고먹는 시대를 만끽하고 있습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숨 막히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한 시간의 여유도 아닌, 5분의 여유를 찾지 못하고 잠을 제대로 취할 수 없는 사람들로 넘쳐나고 있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는 학원에 다녀본 일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학교수업을 마치면 집에 와서 숙제하고 문제집 푸는 일이 전부였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요즘 아이들은 아침에 학교에 갔다가, 계속 학원에서 학원으로 이동하고, 집에 와서 저녁을 먹고는 다시 학원으로 나가는 일들을 보게 됩니다.

아이들도 경쟁에서 앞서가기 위해서 남보다 한 시간이라도 더 공부에 매달려야 하는 것이 현실이 되었고, 그 아이들의 교육비를 뒷바라지하기 위해서 부모는 맞벌이를 할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그 여파가 한 자녀를 낳거나 아예 자녀를 낳지 않는 가정이 늘고 있는 것입니다.

거기에다가 제집 마련이라는 무거운 숙제를 끝내기 위해서 밤낮이 없는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청장년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이것입니다. “쉬고 싶다~”,

그리고 아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이겁니다. “놀고 싶다~”

비단 사람만이 쉼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오늘 지구의 자연, 이 땅도 쉬어주지 못해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이러한 무한 경쟁시대에서 살아남기 위해 잃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쉼입니다.

 

쉼을 잃은 인간! 그 근본 원인은 어디에 있습니까?


이는 하나님이 지으신 인간이 하나님과의 관계성이 깨지고 자기중심의 인간이 된 데 있습니다.

3:17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평생의 수고를 벗을 수 없는 인간이 되고 만 것입니다.

곧 쉼을 잃은 존재가 되고 말았습니다.

 

사람들은 그 쉼을 잠시라도 얻고자 하여 휴가를 계획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휴가마저도 온전한 쉼의 해결이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휴가를 위해서 해야 할 일을 당겨서 해 놓아야 하고, 돌아와서는 밀린 것을 다시 챙겨야 하는 결국 일을 몰아서 한 것밖에 되지 않는 것입니다.

 

현재 우리의 삶에 가장 필요한 것이 있다면 바로 쉼이 있는 삶입니다.

현대인들의 몸과 정신의 질병이 잦은 이유도 바로 쉼이 없는 삶에서 오고 있습니다. 몸도 쉬지 못하지만, 마음의 쉼이 없는 삶이 더 큰 문제입니다. 사회생활이나 직장생활 중에도 한 마디의 격려가 마음의 쉼을 줄 수도 있고 쉼을 빼앗을 수도 있습니다.   

비단 사람만이 쉼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쉼과 자연의 쉼은 상호적인 것이기 때문에 사람이 제대로 쉬지 못하는데 땅의 쉼을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스스로 인간을 위해서 정화작용을 해야 하는 자연의 세계가 인간의 끊임없는 욕심으로 파괴되고 병들고, 오염되고, 온난화로 생태계의 혼란을 가져옴으로, 결국 인간으로 인하여 저주받은 세계가 되고 말았습니다.

땅도 안식년을 주어야 하는데 계속 생산만 강요하고 있어, 이를 거부하는 땅에 화학비료를 쏟아 붓고 있습니다. 땅이 생명력이 잃고 있는 것입니다. 이에 인간도 더욱 쉼을 잃게 되었습니다.


보면, 역설적인 삶을 살고 있는 인간입니다.

좀 더 여유를 갖기 위해, 여유 없이 일하는 모순 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인도에서 휴가를 보내던 한 사업가가 모래사장에서 큼지막한  물고기 한 마리를 들고 돌아오는 한 어부를 만났습니다.

그는 어부가 잡은 것에 감탄하며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좋으시겠습니다! 또 잡으러 갈 거지요?

-또 잡으러 가다니요, 뭐하게요? 어부가 물었습니다.

물고기를 더 많이 갖게 되지 않습니까 하고 사업가가 물었습니다.

-그러면 뭐 하게요?

그걸 팔면 돈이 생기지 않습니까?

-그러면 뭐하게요?

작은 배라도 한 척 살 수 있을 테니까요?

-그러면 뭐하게요?

일꾼들을 쓸 수 있을 테니까요?

-그러면 뭐 하게요?

그 사람들이 당신을 위해 일할 겁니다.

-그러면 뭐하게요?

당신은 부자가 될 것이다.

-그러면 뭐 하게요?

그러면 쉴 수 있을 겁니다.

그러자 어부가 그 사업가에게 말했다.

-쉬는 건 지금 당장이라도 할 수 있는 걸요!

 

무슨 이야기입니까?

쉼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하고 살아가는 세상을 풍자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쉼은 하나님의 창조 안에 있습니다.

창조는 쉼을 전제로 하여 이루신 일입니다.


하나님의 창조는 여섯째 날로 끝난 것이 아니라, 안식하신 일곱째 날에 끝난 것입니다.

안식이 없었다면 아직도 창조는 미완성 상태입니다. 창조사역은 하나님의 안식 가운데 진행되었고, 일곱째 날의 안식은 바로 그 안식의 완성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쉼도 하나님의 창조입니다. 쉼은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역으로 말하면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삶에는 참다운 쉼이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육체적으로 7일마다 하루를 쉬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 나아가 예배하며 감사하며 맡기지 못하는 삶은 쉼을 얻지 못합니다.

 

여기서 짚고 가야 할 말씀이 있습니다.


종종 쉼을 아무 일이나 노동이 없는 상태에서 얻을 수 있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은 일과 쉼을 서로 배치되는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쉼에 대하여 말할 때, 일과 쉼을 분리해서 말하는 것은 결코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쉼에서 보듯, 쉼은 그 자체가 새로운 창조를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창조 전에 쉬셨고, 창조 가운데서 쉬시고, 지금도 쉬면서 일하시고, 일하시며 쉬시는 분입니다. 그렇습니다. 창조와 쉼은 상호배치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쉼을 누릴 수 있는 사람이 자신에게 주어진 창조의 힘을 나타낼 수 있고, 노동의 가치도 제대로 찾을 수 있습니다.

쉼이 없는 생명의 삶은 사실 죽음으로 가는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육체와 영혼의 결합체인 이 몸에 쉼이 없다면, 이미 하나님이 주신 생명으로서 가치를 상실한 것입니다.

이처럼, 쉼이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하나님 창조한 본래 인간의 삶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참 쉼은 하나님의 은총입니다.

이집트에서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어내어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실 때 그들에게 주신 약속의 표현은 안식이었습니다. 약속의 땅 가나안은 이스라엘 민족의 안식처, 즉 쉴 수 있는 땅이었습니다.

이집트에서 쉼을 얻을 수 없었던 히브리 민족에게 있어서 안식은 절대적 희망이었습니다.

구약에서 안식의 개념은 하나님의 해방 혹은 구원의 사회적이고 현실적 표현이었습니다.


이러한 안식을 얻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이 안식이 하나님으로부터 말미암는다는 <믿음>이었습니다.

 

자신들을 해방하신 하나님이 참 안식으로 인도해 주시라는 믿음과 그에 따르는 순종만이 광야생활을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아니 올바른 안식에 들어갈 자들을 위해 광야생활로 이끄셨습니다.

출애굽 이후 하나님이 마련하신 안식처에 들지 못한 사람들에 대해

오늘 히브리서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앞서서 318~19절을 봅니다.

3:18 하나님이 누구에게 맹세하사 그의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느냐

곧 순종하지 아니하던 자들에게가 아니냐

3:19 이로 보건대 그들이 믿지 아니하므로 능히 들어가지 못한 것이라

이어서 4장입니다.

4:1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지니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지라도

너희 중에는 혹 이르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함이라

4:2 그들과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들은 바 그 말씀이 그들에게 유익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과 결부시키지 아니함이라

4:3 이미 믿는 우리들은 저 안식에 들어가는도다

그가 말씀하신 바와 같으니 내가 노하여 맹세한 바와 같이

그들이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다 하였으나

세상을 창조할 때부터 그 일이 이루어졌느니라

 

그렇습니다.

안식, 곧 쉼은 구원하시는 하나님으로부터 <믿음으로 받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더욱이 이 믿음의 완성은 우리를 위해 대속의 피를 흘리신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올바른 쉼은 영성의 문제요 구원의 문제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쉼은 내가 누구인지 잠시 잃었던 자신을 찾도록 도와줍니다.

인디언이 말을 타고 달리다 잠시 멈추어 서는 것은 내 영혼이 잘 따라오는지돌아보기 위해서 랍니다.

 

우리 자신을 돌아봅니다.

혹시 마음에 쉼이 없습니까?

아니면 육체에 쉼이 없습니까?

 

육체의 쉼은 수면을 취하면 어느 정도는 얻을 수 있다 하지만,

마음의 쉼은 주님 안에 머물지 않으면 얻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

주님의 십자가는 우리의 쉼표입니다.

 

우리의 죄짐을 지신 십자가의 순종이 없으셨다면, 우리는 영원한 안식을 얻을 수 없었습니다.

 

순종하신 주 예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다같이!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이 세상 어디로 갈지라도, 아니 그 어디로 도피할지라도 내가 찾는 쉼을 찾을 수 없습니다.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지 않고는 이룰 수가 없습니다.

128절입니다.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12:8)

 

예수께서 말씀하십니다. 1129절입니다.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11:29)

 

나의 멍에는 주님 지신 십자가입니다.

어찌 주님과 똑같은 십자가를 질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내게 맡겨주신 십자가가 있습니다.

그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배울 때, 마음에 쉼이 찾아옵니다.

하지만 그 십자가를 외면하면, 오히려 세상의 더 무겁고 힘든 고통이 찾아오면서 마음이 쉼을 잃은 것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오늘 본문 11절 말씀입니다.

4:11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이는 누구든지 저 순종하지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


여러분!

오늘의 세상! 쉼을 잃은 세상입니다.

육체의 쉼은 고사하고라도, 더 큰 마음의 쉼을 잃고 있습니다.

 

우리가 힘써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잃어버린 마음의 쉼을 되찾는 일입니다!

안식, 곧 쉼은 창조의 완성입니다.

창조의 세계는 사람들에게 쉼이 없는 노동의 세계를 주시려고 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인간은 더 많이! 더 높이!” 하면서 탐심의 세계를 추구하며 스스로 웅덩이를 파면서 쉼을 잃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애굽의 노예생활에서 건져내시고 안식으로 초대하셨습니다.

이제 애굽과 같은 이 세상에서, 바벨론과 같은 이 세상에서 건져내시고, 비로소 쉼을 얻은 인생이 무엇인지를 알게 하시려고 안식의 주, 대속의 주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다시 말씀을 새겨 담습니다.


쉼은 내가 만들 수 없습니다.


오직 주 예수께서 지신 십자가와 같은 성분의 십자가를 질 때 쉼이 찾아옵니다.

쉼은 십자가를 지는 자에게 주시는 하늘의 큰 보상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11:28-29)

 

<축도후 영상>

 

오늘의 세상! 쉼을 잃은 세상입니다.

우리가 힘써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잃어버린 마음의 쉼을 되찾는 일입니다.

안식, 곧 쉼은 창조의 완성입니다.

 

인간은 더 많이! 더 높이!” 하면서 탐심의 세계를 추구하며

스스로 웅덩이를 파면서 쉼을 잃었습니다.

 

쉼은 내가 만들 수 없습니다.

오직 주 예수께서 지신 십자가와

같은 성분의 십자가를 질 때 쉼이 찾아옵니다.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11:29)

 

쉼을 창조하신 하나님 / 히브리서 4:3,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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