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예수 / 요한복음1:14-16
요 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요 1:15 요한이 그에 대하여 증언하여 외쳐 이르되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시는 이가
나보다 앞선 것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하니라
요 1:16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
우리에게 주신 놀랍고도 복된 소식은 이 세상과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이 이 세상을 버려두지 않으시고 찾아오셨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위에서 말씀만 하시는 분이 아니라.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고통은 사람들이 인간의 지식과 인간의 지혜를 믿고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가고 있다는 데 있습니다. 결국 하나님을 떠나, 하나님의 뜻을 벗어난 삶, 이른바 생명길을 벗어나 육체가 되어버린 육체의 탐욕을 따르는 사망의 길로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올라가고 있을 때, 이와는 반대로 하나님은 오히려 하늘로부터 내려오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대림절 둘째주일을 통해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주님을 만나고 있습니다.
“육신을 입으신 하나님”이라는 복음의 비밀 앞에 우리가 있습니다.
기독교에는 ‘성육신’(成肉身)이라는 놀라운 교리가 있습니다.
[방송실 : “성육신 成肉身” 이미지 송출]
이룰 성(成)자에 육신이 붙은 말입니다. 곧 육신을 가진 사람과 같이 되셨다는 말입니다. 예수께서 입으신 몸은 우리와 똑같은 몸이었습니다. 그것은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죄없는 인간으로 대신할 수 있는 속죄 제물이 되시려고 육신을 입고 우리가 사는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하신 행위 중 가장 최고의 행위일 뿐만 아니라, 일찍이 일어났던 모든 일 중에서도 가장 놀랍고 신비롭고 은혜로운 역사입니다. 이 일은 전적으로 하나님이 하신 역사였습니다. 성육신 사건은 우리가 죄사함을 받고 구원받기 위해 일어난 유일한 사건으로 그 이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인류 역사에 초점을 찍은 역사입니다.
종교개혁신학자 칼뱅(J. Calvin,1509~1564)은 이같이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존엄 그 자신이 우리에게 내려오지 않았다면, 상황은 분명히 절망적이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그에게 올라가는 것은 우리의 능력 안에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성육신하심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시겠다는 약속의 가장 확고한 역사입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가 대속의 은혜로서 온전하게 표현되었다는 사실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나와 같은 육체를 입고 오신 하나님, 곧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뒤돌아설 어떤 이유도 내세울 것이 없습니다. 오직 구원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음을 감사할 뿐입니다.
실로 예수께서는 이 땅에 구원의 소망을 이루시기 위해서 육신이라는 감옥에 오셨습니다.
요 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말씀이 육신이 되셨다! 어찌 하나님이 육신이 되셨습니까?
이것은 그 육신을 깨뜨리심으로 육체적 존재로 추락한 인간을 해방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육신이 깨진 사건이 바로 십자가에서 죽으신 사건입니다.
육신을 입고 오신 하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이 사실은 무엇을 말합니까?
보세요~ 로마서에서 전합니다.
롬 8:3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죄를 지시기 위해 육신을 입으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께서는 오늘이라는 삶의 자리, 지금 여기에 함께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여전히 예수께서 내 육신의 감옥에 갇혀있다고 생각해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하나님의 영, 그리스도의 영, 곧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지 않고서는 그 누구도 육신의 감옥에서 나올 수 없습니다. 로마서8:9 말씀이 이것에 대하여 말씀합니다.
롬 8:9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그렇습니다.
예수께서는 육신의 소욕에 매여 사는 인생을 구원하시려고 이 세상에 육신을 입고 오셨습니다.
그리고 오늘이라는 삶이 육신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 성령께서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우리와 함께하시는 것입니다.
육신은 자꾸 달라고 하고, 눕기를 원하고, 편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가 육신의 감옥에서 나와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삶을 누리시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만들어놓고 장난감 가지고 놀듯이 즐기시려고 사람을 창조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사람에게 입히시고, 하나님의 성품을 사람에게 넣어주셔서 하나님과 함께 하는 인간, 하나님과 소통하는 인간, 하나님과 즐거움을 공유하는 인간이 되기를 기뻐하시는 겁니다.
이를 위해서 하나님이 유일무이한 성육신의 역사를 이루신 것입니다.
죄를 짓고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된 인간 그 안으로 오시는, 그 유일한 방법으로 신이 사람이 되는 것을 택하셨습니다. 그래서 참 하나님이면서도, 참 인간이 되신 유일한 중보자로서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곧 내가 살아가는 삶 속으로 온전히 들어오신 것입니다.
사람과 같이 되신 예수님!
사도 바울은 성육신을 이렇게 전하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하나님의 마음과 인격이 담겨있습니다.
빌 2: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빌 2: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신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내려가실 수 있는 가장 밑바닥에는 다름 아닌 죽음이 있었습니다. 어쩌다 죽으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한 마디로 죽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성육신은 예수께서 죽음에 이르기 위해서 입으신 몸이었습니다. 인간의 죄를 다른 짐승의 제물로 완성할 수 없기에 인간이 되신 예수께서 대신 죽으신 것입니다. 죽을 사람들에게 영생을 주신 것입니다. 멸할 수 없는 소망을 주신 것입니다.
예수께서 죽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살고자 하는 인생들에게 몸으로 보이신 최고의 가르침이셨습니다.
성육신 여기에는 충만한 은혜가 있습니다.
우리가 입은 것은 그 어떤 것과 비교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요 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은혜 한 글자로 표현할 수 없어서 "은혜 위에 은혜"라 하였습니다.
요 1:16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
여기서 「충만」이라 함은 ‘부족함이 없는 상태’를 말합니다.
부족함이 없으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가 입게 된 은혜가 얼마나 놀라운지를 알게 하기 위해 17절 말씀을 제시했습니다.
요 1:17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
모세로 말미암아 주신 율법과 주님으로 말미암은 은혜의 차이를 이렇게 다릅니다.
1) 율법이 내게 다가설 때 나를 옛 사람으로 대하지만, 은혜는 나를 새로운 피조물로 만듭니다.
2) 율법은 내가 다가설 때 내 죄를 드러내지만, 은혜는 하나님 안에 있는 사랑을 나타냅니다.
3) 율법은 죄를 알게 함으로 경계하게 하지만, 은혜는 죄를 물리침으로 자유함을 얻게 합니다.
4) 율법은 나에게 이룰 수 없는 의를 요구하지만, 은혜는 나에게 하나님의 의를 입히십니다.
5) 율법은 살아 있다고 여기는 나에게 죽음을 선고하지만, 은혜는 죽은 나에게 새 생명을 선언하십니다.
6) 율법은 내가 하나님을 위해서 해야 할 일들을 나열하고 있지만, 은혜는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서 행하신 일들을 말해줍니다.
7) 율법은 나에게 접근할 수 없는 하나님을 제시하고 있지만, 은혜는 나를 하나님께로 인도하십니다.
(참고: 아더 핑크/A. W. PINK)
이제는 우리가 성육신적인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첫 번째 성육신은 예수께서 이루셨습니다.
이제 두 번째 오늘의 성육신은 바로 <교회>가 할 일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라 하였습니다.
교회는 말씀이 육신이 되는 오늘의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엡 1:23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
골 1:18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시라
그리고 세 번째 오늘의 성육신은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로서 <나 자신>이 이루어야 할 일입니다.
고전 12:27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
사도 바울은 성육신적인 삶을 이렇게 고백하였습니다.
골 1:24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이제 들려드리는 이야기는 성육신적인 삶이 어떤 것인가를 깊이 생각하게 합니다.
개 한 마리가 달리는 구급차를 미친 듯이 좇아갑니다.
사이렌을 울리며 달리는 구급차는 매우 빨랐지만 개는 포기 하지 않고 병원까지 달리고 달렸습니다. 병원에 도착한 구급차에서 피투성이 가 된 남자가 수술실로 옮겨졌고, 개는 병원 입구에서 더는 들어가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저지당했습니다.
수술실에서 치료받는 남자는 브라질 상파울루주에서 그 개와 함께 지내던 노숙인이었는데, 그날 싸움에 휘말려 큰 상처를 입고 병원에 실려 온 것이었습니다. 안타깝게도 그 남자는 의료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만 치료 중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반려인의 죽음을 알지 못한 개는 병원 입구에서 두 달이 넘도록 주인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개의 처지를 안타깝게 여긴 병원 관계자들이 먹을 것과 쉴 곳을 마련해주었습니다. 동물 보호소에서도 적극적으로 나서 개를 길러줄 새 가족을 찾아 입양을 해주었습니다. 사람들은 개가 좋은 환경에서 행복한 삶을 살기를 빌었습니다.
그런데 병원 관계자들은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개는 새 주인의 집을 탈출해서 어느새 다시 병원 입구로 돌아와 있었던 것입니다. 이 개는 병원 앞에서 줄곧 죽은 주인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다시 나타날 주인을 끝까지 기다리는 개보다 못한 인간의 모습을 보게됩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주 예수께서는 온 세상을 구원하시려고 말씀이신 하나님이 육신이 되어 인간을 입으셨습니다.
그리고 <교회>는 오늘의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그리스도의 몸으로 보냄을 받은 제2의 성육신입니다.
또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로서 세상의 최전방으로 보냄을 받은 제3의 성육신입니다.
이제 우리는 주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그리고 그 지체로서 제 십자가 바로 지고 성육신적인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요 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
<축도후 영상>
주 <예수께서는> 온 세상을 구원하시려고
말씀이신 하나님이 육신이 되어 인간을 입으셨습니다.
그리고 <교회는> 오늘의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그리스도의 몸으로 보냄을 받은 제2의 성육신입니다.
또한 <나는>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로서
세상의 최전방으로 보냄을 받은 제3의 성육신입니다.
이제 우리는 제 십자가 바로 지고
성육신적인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요한복음1:14-16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예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