샬롬!
오늘 수요예배(8/26)는 각 가정에서 예배하며 오늘 말씀으로 교제합니다.
찬송 : 415장
성경 : 신명기 32:9-12
제목 : 보금자리가 흔들릴 때
누구나 이 땅에 살면서 안정을 바라고 환난과 두려움으로부터 해방되기를 바랍니다. 더욱이 누구나 자신이 삶의 보금자리에 안식과 평안함이 지속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살다가 보면 생각지도 않은 어렵고 고통스런 일에 봉착하곤 합니다. 그 보금자리가 위협을 받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모세가 가나안을 목전에 두고 그의 사명의 끝자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신앙을 고취시키기 위해 지은 찬양입니다. 그중에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인도하셨는가를 증거해주는 말씀입니다.
11절 말씀에서 주시는 말씀입니다.
“마치 독수리가 자기의 보금자리를 어지럽게 하며 자기의 새끼 위에 너풀거리며
그의 날개를 펴서 새끼를 받으며 그의 날개 위에 그것을 업는 것 같이”
1. 보금자리가 흔들릴 때는 은혜받을 때입니다.
물질적인 면, 정신적인 면, 사회적인 면, 육체적인 면 등 어떠한 보금자리가 흔들리든 그것은 삶의 위기와 새로운 도전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물질적인 환난이 없는 사람에게는 그에 상응하는 정신적인 환란이 있습니다. 그 모든 것에 안정된 보금자리를 누린다 하여도 육체의 질병으로 오는 보금자리의 요동함을 무시할 수 없는 것입니다.
땅의 보금자리에 만족하는 삶에는 결코 날개가 없는 것입니다.
독수리가 자기 새끼를 보금자리에서 흔들어서 그 보금자리에서 강제로 내어쫓는 것은 그 새끼로 하여금 날개를 사용하도록 하는 계획이 있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보금자리가 흔들리고 있을 때, 이것이 하나님께서 흔들고 있다고 하는 것을 인식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태풍이 불고 간 자리에는 자취가 남듯이 새로운 날개가 돋아나는 것을 체험하게 됩니다.
바울이 지금까지의 보금자리였던 율법주의에서 깨어난 것은 그가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 그 보금자리가 흔들리고 깨졌기 때문입니다. 그는 새로운 복음의 날개를 달고 날기 시작한 것입니다.
모세가 바로의 궁전에서 보금자리를 틀고 다가오는 부귀영화의 가시적인 보금자리를 꿈꾸어 볼 때, 도리어 하나님은 그의 그러한 보금자리를 깨뜨리시고 그를 광야로 내보셨습니다.
나아만 장군이 나병에 들어 육신의 보금자리가 깨져 나갈 때, 권세의 날개가 아닌 신앙의 날개를 새로 받는 복된 기회가 된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이 땅에 오실 때부터 부활 승천하실 때까지 머리 둘 곳이 없으셨습니다.
그 이유는 이 땅에 가시적인 보금자리는 없기 때문입니다. 도리어 주님은 자신을 사랑하고 영접하는 심령을 보금자리로 삼아 그 안에 거하신 것입니다.
2. 우리가 작은 날개를 퍼득이기 시작할 때, 주님은 크신 날개를 펴고 계십니다.
어미 독수리가 새끼 독수리의 날개를 펴개 하기 위해서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모세가 40년 전 홍해를 건너고 시내산에 올랐을 때, 하나님은 모세에게 이미 이 말씀을 주셨습니다.
출 19:4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
3. 주 예수님의 십자가는 우리의 구원을 위해 펴신 주님의 날개입니다.
세상에서 병들고 지친 삶이 이곳에서 다시 힘을 얻습니다. 세상에서 방황하던 심령이 이 십자가 아래서 새로운 삶을 찾습니다. 시기와 질투와 욕심에 사로잡혀살던 죄인이 이 십자가 아래서 새로운 생명의 날개를 폅니다.
불구의 몸으로 39세의 짧은 생애를 살면서도 가난하고 병든 자들을 돌보면서 살다가 간 클레페인(Clephane)은 우리가 즐겨 부르는 찬송 “십자가 그늘 아래 나 쉬기 원하네”(415장)를 작시하여 많은 사람에게 큰 위로를 끼쳤습니다.
평화의 가족 여러분! 보금자리가 흔들릴 때, 나를 낭떨어지 아래로 떨어뜨릴 때,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펴야 할 신앙의 날개가 있습니다. 거기에 이미 펴신 주님의 십자가 날개가 있습니다. 아멘!
기도 : 이 고난의 때에 성도들과 이 땅의 사람들이 믿음의 날개를 펴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