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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낮예배
2021.03.06 21:44

행복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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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한봉희목사
설교일 2021-3-7낮(사순절3)
본문말씀 요한일서4:7-12



행복하려면 / 요한일서 4:7-12

 

10년 전인 2011년 신년특집으로 모 언론사와 조사전문기관이 협력해서  '한국인의 행복'  대해 조사한 바 있습니다

이는 10개국 덴마크, 말레이시아, 미국, 베트남, 브라질, 인도네시아, 캐나다, 핀란드, 호주, 그리고 한국에서 각국 5백여 명씩 5천여 명을 대상으로, 3개 기관(조선일보, 한국갤럽, 글러벌마켓인사이트)이 공동으로 다국적인 여론조사를 한 것인데, 대한민국,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까?”에 설문조사의 목적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 더욱 관심이 될 만한 것 몇 가지는 이렇습니다. 10년 전의 응답이지만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겁니다.

 

나는 매우 행복하다브라질 57%, 베트남 49%, 그리고 한국은 불과 7%

가장 행복한 사람은 누구인가다른 나라 9개국은 나 자신’, 한국은 빌 케이츠

꼭 조국에서 아이 낳고 싶어한국 20%, 5명 중에 1명 꼴로 10개국에서 꼴찌

다른 나라에서 살고 싶다한국 37%, 3명중에 1명꼴로 10개국에서 꼴찌

 

이는 행복하다고 여기는 데 있어서는 한국이 거의 밑바닥에 있다는 것을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초고속으로 성장한 한국의 물질주의는 미국의 3, 일본의 2배나 되어, 돈에 대한 집착과 북한의 위협이 행복의 질을 빼앗아 가고 있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저출산, 아이를 낳지 않는 이유도 돈 때문이라고 대답한 사람이 52%나 되었습니다. 심지어 아이가 이 세상을 살면서 고생하는 것을 볼 수 없어서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돈과 행복은 무관하다고 대답한 국민을 보면, 인도네시아 33%, 베트남 21%로 비교적 높은 편인 데 비해, 한국은 7% 가장 낮은 수준에 머물고 말았습니다. 유독 한국인은 돈이 있어야 행복하다고 믿고 있다는 것입니다.

직업을 선택할 때에도, 한국은 돈과 안정성에 63%, 핀란드는 돈보다 일의 내용60%의 응답자가 선택한 것도 이를 반영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최근 “2020년 세계행복보고서에서 153개국 중에서 핀란드는 행복지수 1위를, 필리핀은 52, 태국은 54, 한국은 61, 그 바로 뒤 62위에 일본이 머물고 있음을 보았습니다.

 

결과적으로 한국은 빠른 경제성장을 일구기 위해, 남을 이기는 것이 행복해지는 길이라고 생각하며 달려왔기에, 친구 및 가족과 멀어졌고, 그 과정에서 사회적 관계와 심리적 만족에서 오는 행복을 희생했다고 평가했습니다.

한국의 역설 소득 증가세는 세계 최고였지만, 오히려 삶의 만족감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에서 최저를 나타냈습니다. 물질주의 가치관의 한계를 드러낸 것입니다. 자살률도 그중에 제일 높은 국가가 된 불명예를 안았습니다.

 

그리고 해외자문단 12명의 전문가들이 붙인 말입니다. 한국국민들은 이제 부의 증가가 행복과 직결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진정한 행복을 고민해볼 때가 됐다고 말했습니다. 10년전의 말입니다.

 

이쯤에서 주께서 이 시간 들려주시는 말씀에 귀를 기울이려고 합니다.

 

이에 오늘 행복하려면이라는 제목의 말씀을 듣겠습니다.

 

1. 행복하려면 자기라는 굴레에서 나와야 합니다.

 

자기라고 하는 굴레는 자기중심적 성향인 죄의 속성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자기도 자기가 굴속에 빠져있다는 것을 잘 감각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죄의 특성입니다.

 

한 동네 입구에는 빈 공터가 하나 있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이 이 공터에 쓰레기를 내다 버리기 시작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동네 쓰레기장이 되어버렸습니다. 동네 입구가 쓰레기장이 된 것에 크게 화가 난 동네 사람들 60명이 서명을 하여 구청에 탄원서를 냈습니다.

얼마 후 구청에서는 몰래카메라를 설치하고 사람을 배치해서 단속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일주일 후 1차로 단속에 걸린 사람들 20명의 명단을 공개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중에 13명이 탄원서에 서명을 한 동네 사람들이었습니다.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을 처벌해달라고 탄원서를 낸 60명 중에 13명이나 한 주간 동안 그곳에 쓰레기를 내다 버려서 단속에 걸린 사람들이었습니다. 이것이 죄성에 빠져있는 자기입니다.

 

그렇습니다.     

죄는 자신을 자기 안에 가두어 버립니다때때로 위선으로 그것을 가리기도 합니다.

이 문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먼저 만나야 합니다.

하나님과 화목하지 않고서는 나에게 엉켜있는 실타래를 풀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되지 않고는 행복이라는 본질을 찾아낼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이 일을 먼저 시작하셨습니다.

 

요일 4:10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요일 4:19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생각해보세요. 돈이 나를 사랑하면 수전노가 됩니다. 술이 나를 사랑하면 알콜중독자가 됩니다. 게임이 나를 사랑하면 게임중독자가 됩니다. 도둑이 나를 사랑하면 공범이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면 어떤 사람이 됩니까?

놀랍게도, 나를 지으신 이가 나를 사랑하겠다고 잊지 않고 다시 찾아오신 것입니다.

누가 나를 사랑하느냐에 따라 그 인생은 달라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이 먼저 나를 사랑하셨습니다.”

이 놀라운 은혜가 우리의 것입니다.

 

하나님은 죄에 빠져서 자기에게 꽁꽁 묶여서 나오지 못하는 세상에 대해서 정말 오래 참으셨습니다. 결국 죄와 그 사망의 권세를 깨뜨릴 유일한 길은 이 한 길밖에 없으셨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를 로마서 3장에서 이렇게 전하고 있습니다.

3:25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성부 하나님께서 성자 예수님을 화목제물로 세우신 것입니다.

이로써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다가 전에 지은 죄를 넘어가셨습니다.

여기 간과한다는 것은 넘어간다는 뜻입니다.

유월절 어린양의 피가 집에 들어오는 죽음의 사자를 넘어가게 PASS OVER 한 것입니다.

 

이어 바울은 로마서 5장에 들어서면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5:1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5:2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이로써 이기적인 자기로부터, 물질주의의 족쇄로부터, 남을 이겨야 행복하다고 하며 잘못 달려온 기울어진 경기장으로부터 건져냄을 받아서, 하나님과 화평함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믿음으로 서 있는 은혜의 삶으로 옮겨타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아무리 아름다운 꽃이라도 보아주고, 찾아주는 자가 있어야 행복한 꽃이 됩니다.

 

시인 김춘수의 대표적인 시 <>이 있습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실로 나에게로 와서 불러주신 분이 있습니다. 내 대신 피까지 흘려주신 주 예수님입니다.

죄와 사망과 슬픔과 허무와 고독과 자기감옥에서 깨어 일어나지 못했던 인생을 깨우신 주님께 감사해야 하겠습니다.

더욱이 아무도 찾아주지 않는 시들어 떨어져 버릴 인생을, 향기와 아름다움의 가치를 비로소 드러낼 인생으로 다시 주신 주님께 영광을 돌려야 하겠습니다.

 

2. 행복하려면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인간은 세상에서 서로 떠나 있을 수 없는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실로, 이 세상에 관계를 떠나서 존재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참으로 사랑하기에도 짧은 세월인데, 사람들은 상처가 아물기 전에 또 상처를 받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삶의 고통이 물질의 부족에 매여있을 수 없습니다.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하는 것이, 제육이 집에 가득하고도 다투는 것보다 낫다(17:1)고 했습니다. 참으로 고통스러운 것은 말할 대상도 없고, 자신을 인정해 주는 사람도 없고, 자신을 기억해주는 사람도 없을 때 오는 것입니다. 이는 생명이 사랑의 떡을 먹고 살기 때문입니다.

 

이에 행복하려면 사랑해야 합니다. 보세요! 78절입니다.

요일 4:7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요일 4:8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사랑은 가장 소중한 목숨까지도 바칠 정도로 헌신적입니다.

용사는 자신을 알아주는 군주를 위해 목숨을 바친다고 합니다.

어떻습니까?

내가 평생을 같이할 사람을 만나서 사랑하게 되면, 그에게 아낌없이 줄 수 있습니다. 나의 인생을 줄 수 있습니다. 나의 재물을 줄 수 있습니다. 나의 생명까지 말입니다. 거기에 행복이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하나님이 우리를 그렇게 사랑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늘 보좌를 비우시고 이 땅 낮은 곳으로 내려오실 수 있었습니다.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다 지시고 죽으실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교제가 끊어진 세상은 어떻습니까?

자기탐욕에 빠지게 하는 죄성으로 말미암아 어두워진 인간의 삶은 마치 블랙홀과 같이 되어서, 함께 살아가는 데 꼭 있어야 할 의로운 사랑을 송두리째 삼켜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하기에 이 세상에는 하나님이 본래 입혀주셨던 사랑을 찾아낼 길도 없었고, 힘도 능력도 잃었고, 할 수 있는 의인도 없었습니다. 희망을 잃은 세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멸망을 정해놓고 사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행복을 잃은 세상이었습니다. 죽지 못해 사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죽지 못해 사는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살려주기 위해 죽는 자가 필요했습니다.

바로 이 땅에 죽으러 오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아멘)

 

여러분! 바로 이겁니다.

돈 버는 데에는 목숨을 바칠 수 없지만, 사랑하는 데에는 목숨을 바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시험을 잘 봐서 1등 하는 데에는 목숨을 바칠 수 없지만, 사랑하는 일을 이루는 데는 목숨을 바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왜요

바로 사랑이 있는 그곳에 사랑의 하나님이 함께하셔서 하나님이 일하시기 때문입니다.

12절 보세요.

요일 4:12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어지느니라

 

그러기에 저는 그와 같은 사랑으로 구원받은 나를 사랑합니다.

그러기에 그와 같은 사랑으로 사랑할 수 있어서 행복합니다.

 

살다 보면 때로는~

아픔이 있을 때도 있고, 실망스러울 때도 있고, 속상할 때도 있고, 낙심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은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이 내게서 더욱 나타나게 하시는 하나님의 인생수업이라는 과목 안에 있습니다. 그 수업이 때로는 힘들어도, 긴 시간이 필요해도, 사랑의 졸업장을 받을 때면, 그 고난과 비교할 수 없는 영광이 있는 것입니다. 믿습니까?

 

그래서 우리는 바울의 이 확신에 함께하고 있습니다.

8:37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 거기에는 하나님의 용서가 함께합니다.

용서에는 두 가지 원리가 있습니다.


1)용서는 자신을 행복하게 하는 일입니다.

자신을 먼저 사랑해야 남을 사랑할 수 있듯이, 자신을 용서하는 자가 다른 사람을 용서할 수 있습니다. 곧 다른 사람을 용서하는 것과 나를 용서하는 것은 함께 일어나는 일입니다.

똑같이 예수님을 배반했지만, 유다는 주 안에서 자신을 용서하지 못해 자살했고,

베드로는 자신의 과거를 주 안에서 용서했기에 순교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2)용서의 유통기간은 짧을수록 좋다는 사실입니다.

분을 품어도 해를 넘기지 말라고 말씀했듯이, 용서의 유통기간은 길지 않아야 합니다.

죽음을 앞두고서야 용서해야 하겠다고 생각한다면 그동안 살아온 세월은 행복하지 못한 인생을 산 것입니다. 더욱이 하루 사이에 죽을지도 모릅니다용서도 못하고 죽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온전치 않습니다

그러므로 용서받아야 할 존재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 앞에 있는 모든 사람은 용서하며 사랑해야 할 사람입니다. 행복하게 사는 사람은 용서하는 사람입니다.

그렇습니다. 용서함이 없이 서로 사랑할 수 없습니다.

용서할 때,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가 또한 거기 역사되는 것입니다.

 

3. 행복하려면 섬기는 삶이어야 합니다.

 

섬김은 교과서에서는 배울 수 없었던 인생의 참된 진리를 알게 하는 숨겨진 과목입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보이신 마지막 본은 다름 아닌 섬김의 본, 종이 되는 본이었습니다.

섬김은 사랑의 구체적인 실천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제자들을 끝까지 사랑하신 예수께서는 십자가를 지려고 나가시기 전날 저녁, 제자들 발 앞에 대야에 물을 떠다가 놓고 몸을 낮추셨습니다. 제자들의 발을 하나하나 씻기시고 수건으로 닦아주시고 식탁으로 다시 돌아와 앉으시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13:14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

13:15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13:16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종이 주인보다 크지 못하고 보냄을 받은 자가 보낸 자보다 크지 못하나니

그 다음 이어진 말씀이 무엇입니까?

13:17 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

 

 

그렇습니다.

행복하려면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그 최후의 만찬 자리에서 보이신 것입니다.

한 남자가 두 마리의 당나귀의 등에 짐을 싣고 먼 길을 떠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평소에 이 정도의 짐과 이 정도 거리를 거뜬히 걸어가던 당나귀 중 한 마리가 금방 지쳐 헐떡거렸습니다. 지친 당나귀가 다른 당나귀에게 부탁합니다.

"내가 오늘 무언가를 잘못 먹은 것 같아서 배가 아프고 너무 힘들어서 도저히 짐을 지고 걸을 수가 없을 것 같은데 내 짐을 조금만 덜어가 줄 수 없을까?"

사실 다른 당나귀는 아픈 당나귀의 짐을 모두 지고 갈 수 있을 만큼 건강했지만 좀 더 귀찮아지고 힘들어지는 것이 싫어서 거절했습니다.

 

결국, 아픈 당나귀는 얼마 못 가서 눈에 띄게 휘청거리며 비틀거리기 시작했습니다.

그제야 당나귀 한 마리의 상태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은 남자는 난감해하며 아픈 당나귀의 짐을 모두 풀었습니다그리고 풀어낸 짐의 일부는 자신이 짊어지고 남은 짐은 전부 건강한 당나귀의 등에 실었습니다.

아픈 친구의 부탁을 매몰차게 거절한 당나귀는 울상이 된 채, 도착지까지 큰 고생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프리카 속담입니다.

혼자 가면 빨리 가지만, 함께 가면 멀리 간다.”

 

성도 여러분!

섬기는 삶에 행복이 담겨있습니다.

섬기는 것을 자존심 상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이가 있습니다.

섬기는 것을 불합리하게 생각하는 이가 있습니다. 정말 그래서 행복한가요?


이 사실을 알고 계신가요?

쓴 우물과 단 우물이 있다면, 단 우물이 먼저 마를 것입니다.

여기에 송곳이 다섯 개가 있다면, 이 중에 가장 뾰족한 것이 가장 먼저 무뎌질 겁니다.

여기에 칼이 다섯 자루 있다면, 이 중에 가장 날이 선 것이 가장 먼저 상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단 우물이 먼저 마르고, 날선 칼이 먼저 상하고, 좋은 나무가 먼저 베이는 것이 섬김의 실체입니다.

잘난 것은 섬기라고 잘난 것입니다. 가진 것도 섬기라고 가진 것입니다.

맞습니다. “행복합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거기에는 섬기는 삶에 있습니다.

 

평화의 가족 여러분!

오늘 우리는 행복하려면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담았습니다.

 

1. 행복하려면 자기라는 굴레에서 나와야 합니다.

죄성을 깨뜨리지 않으면 자기 굴레에서 나올 수 없습니다.

 

2. 행복하려면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서로 사랑하는 데에는 자신을 용서하고 남을 용서하는 일이 함께 따릅니다.

 

3. 행복하려면 섬기는 삶이어야 합니다.

섬김은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보여주신 가장 큰 복입니다.

 

행복하려면! 이 말보다, 더 좋은 말이 있습니다.

나는 행복합니다.

나는 행복하게 하는 그리스도인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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