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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0.22 23:00

사랑과 인내의 성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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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한봉희목사
설교일 2022-10-23낮
본문말씀 데살로니가후서3:5


사랑과 인내의 성품 / 데살로니가후서3:5

 

살후 3:5 주께서 너희 마음을 인도하여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인내에 들어가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우리는 지난 두 달 동안 예수님의 산상설교 팔복의 말씀을 통해서 주님의 성품을 배우고 담기를 힘썼습니다. 오늘은 팔복에 담기지 않은 성품 중에 빼놓을 수 없는 성품을 담음으로 성품에 대한 말씀을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초스피드시대를 넘어 IT 4차산업혁명시대 속에 살고 있습니다. 이에 모든 것이 초를 다투는 시간 속에 있습니다. 사랑의 하나님은 인간을 위해서 시간을 창조하시고, 그 시간에 담아주시는 삶을 누리게 하셨습니다. 하지만 인간은 그 시간 속에서 두려움과 불안, 그리고 염려와 근심에 사로잡혀 사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시간은 모든 것의 시작과 끝이 되시는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선물입니다.

흘러가는 시간 크로노스를 넘어 세상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시간으로서의 카이로스는 우리가 왜 사랑해야 하는지, 왜 인내해야 하는지를 알게 하는 이유입니다.

그리고 그 시간여행이 마무리될 때, 우리는 영원한 시간 속에서 진정한 자유와 쉼, 그리고 서로의 사랑을 누릴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듣고 담아야 할 성품은 <사랑과 인내>입니다.

 

사랑과 인내는 깊은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사랑이 변하는 것은 참 사랑이라 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자기가 좋아서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고 대한 것입니다. 이런 사랑은 오래가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사랑에 대하여 말씀할 때, 그 첫째가 사랑은 오래 참고라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사랑과 인내는 맞물려있는 주님의 성품입니다.

 

이에 먼저 <사랑>의 성품을 담아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가까이서 받은 사도 요한은 사랑을 이렇게 정의하고 있습니다.

요일4:10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기 전에, 아니 사랑할 자격도 없을 때,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다는 것입니다. 그 사랑의 깊이와 높이와 넓이와 길이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지신 십자가에서 모두 보이셨습니다.

 

우리가 즐겨 부르는 찬송 중에 369장 찬송이 있습니다.

죄짐 맡은 우리 구주 어찌 좋은 친군 지 걱정 근심 무거운 짐 우리 주께 맡기세

 

이 찬송시는 조셉 스크리븐이라는 사람에 의해서 탄생했습니다.

그는 영국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캐나다에 와서 교사가 되었고, 아름다운 여성과 약혼을 했습니다. 두 사람은 뜨겁게 사랑했고, 마침내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약혼녀가 결혼식에 오던 중 배가 침몰되면서 그만 생명을 잃고 말았습니다.

스크리븐은 너무나 큰 충격 속에 학교교사도 그만두고 식음을 전폐하고 자리에 누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교회에서 기도하던 중, 주께서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사랑하는 약혼녀를 호수에서 잃었으나, 나는 하나뿐인 독생자를 십자가에서 잃었다. 그것은 하나를 잃음으로 모두를 사랑하기 위함이다.”

 

그때 그는 주님의 깊으신 사랑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찬송시를 우리에게 선물로 남기게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함께 읽으며 마음에 담겠습니다.

살후 3:5 주께서 너희 마음을 인도하여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인내에 들어가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먼저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에 왜 들어가야 하는지 이야기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미국의 앤 그루델이라는 여인이 있었습니다. 그는 어린 시절 구순구개열 장애로 인해 학교 친구들과 거의 대화를 하지 않는 소녀였습니다. 지금은 병원에서 수술이 가능하지만, 앤이 자랄 때만 해도 구순구개열 수술은 힘든 일이었습니다.

 

간혹 친구들이 그녀의 입술에 관해 물으면 사고로 생긴 상처라고 거짓말했습니다.

삐뚤어진 입과 부정확한 발음을 타고났다는 것은 앤에게 끔찍하기만 했습니다.

그래서 늘 우울증에 시달리며 부모를 원망하고 친구를 기피하며 살았고, 이 세상 모든 사람이 자기를 싫어한다고 생각하며 자랐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앤이 다니던 학교에서 속삭임 검사(The Whisper Test)라는 것을 시행했습니다.

검사는 칸막이를 치거나 학생이 한쪽 귀를 막은 채, 선생님이 작게 말하는 소리를 따라 말하게 하는 것으로, 학생들의 집중력을 살피는 검사였습니다.

 

선생님은 하늘이 파랗다”, “바람이 시원하다등의 간단한 문장을 말했고, 학생 대부분은 정확하게 큰소리로 따라서 말했습니다. 앤은 이 간단한 검사에 그 누구보다 집중했습니다. 자신의 어눌한 발음 때문에 선생님이 뭐라고 했지?”라고 말하게 되는 것이 걱정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선생님은 다른 학생들에게 하던 말과 전혀 다른 말을 했습니다.

네가 내 딸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이 말에 충격을 받은 앤은 선생님의 말씀을 반복하는 대신 물었습니다.

선생님, 정말이셔요?”

 

그러자 선생님은 앤에게 인자한 목소리로 다시 대답했습니다.

그럼 그렇고 말고 나는 정말 네가 나의 딸이었으면 좋겠어!”

 

선생님의 말 한마디가 앤의 인생을 바꾸었습니다.

앤은 이후 자기의 장애로 마음에 상처받지 않으려고 노력했습니다. 결국 나중에는 미국의 저명한 심리학자가 되어 사람들의 마음을 살피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사랑은 사랑하는 이에게 어떻게 나타났습니까?

어느 나라의 왕자가 사냥을 나갔다 돌아오는 길에 시골길에서 한 처녀를 만났습니다. 얼마나 사랑이 가는지 궁으로 돌아와서도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나중엔 가슴에 상처가 생길 만큼 그 처녀에 대한 사랑이 깊어졌습니다. 드디어 그는 처녀를 궁으로 데려와 배필로 삼아야겠다는 결심을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에 궁리하다가 세 가지 방법을 생각해 냈습니다.


첫째는 왕자 자신의 권위로 다가가는 방법입니다.

왕자로 정장을 하고 부하들을 거느리고 다가가 청혼하는 방법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는 것은 그 처녀의 진정한 사랑을 얻기에 합당치 않다고 느꼈습니다.


둘째는 왕궁의 영광을 보여주는 방법입니다.

부하를 보내어 처녀를 왕궁으로 데려다가 왕궁의 영광스런 모습을 보여주고는 청혼하는 방법입니다. 그러나 이 방법도 마땅치 않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렇게 하면 그녀에게 사랑의 마음이 없어도 왕궁의 영광을 보고 결혼에 응할 수도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셋째는 왕자도 왕궁도 진정한 사랑을 보여 주기엔 합당치 않을 것이니 왕자 자신이 시골 목동의 모습을 하고는 그녀에게로 다가가 사랑을 고백하고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여 왕궁으로 데려와야겠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 이야기는 덴마크의 기독교 철학자 키에르케고르(1813-1855)가 남긴 이야기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사람을 사랑하시는 방법, 사람에게 나타나는 방법을 인간적인 모습으로 그린 글입니다. 이미 아셨겠지만, 왕자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시골처녀는 나 같은 사람입니다. 왕궁은 천국입니다. 왕자인 예수는 시골처녀인 사람들을 사랑하시는 방법으로 세 번째 방법을 택하신 것입니다.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의 권위로 왔다면 누가 믿지 않겠습니까? 천국을 구경시켜 준 후 믿으라 하면 누가 믿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거기에는 순수한 진리와 사랑에 대한 응답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시골 목동의 모습처럼 오신 것입니다.

그렇기에 마음이 가난한 자에게 들어오시려고 예수께서 비천한 마구간 구유에 나신 것입니다. 그리고 저와 여러분을 신랑예수께서 신부로 맞이하신 것입니다. 아멘! 또 아멘입니다.

 

하나밖에 없는 인생을 갖고 계신 여러분!

이해가 되지 않더라도 하나님의 사랑으로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나 같은 사람은 이해의 대상이 아니라 사랑의 대상이기 때문입니다.

이해가 되지 않더라도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나 같은 사람은 이해의 대상이 아니라 용서의 대상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이해할 수 없는 나를 그렇게 사랑하시고 그렇게 용서하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산상설교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5:44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7:12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그래요~ 자신을 향하여 다시 속삭입니다.

살아있는 동안 내가 해야 할 일은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것이야!

하나님이 내게 그렇게 하셨고, 그렇게 하시고 계시니까!

그리고 내가 사랑으로 하면, 그 다음의 모든 일은 하나님이 알아서 일하시는거야!

 

여러분! 하나님의 사랑에 들어가시기를 천번 만번이라도 하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이러한 사랑의 성품과 함께하는 성품이 바로 <인내>입니다.

 

오늘 본문말씀 다시 읽겠습니다.

살후 3:5 주께서 너희 마음을 인도하여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인내에 들어가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성경은 곳곳에서 인내를 매주 중요한 성품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10:36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하신 것을 받기 위함이라

21:19 너희의 인내로 너희 영혼을 얻으리라

1:4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여러분! 기적이 날마다 나에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기적은 은혜를 알지 못하는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인내입니다.

하나님의 맷돌이 천천히 돌아갈지라도 하나님은 곡식을 가루로 만들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인생에 대하여 쉽게 판단하거나 실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인내하시는 하나님은 우리들의 인생을 영원한 그릇에 담으려고 하실 뿐, 실망하거나 후회하지 않으십니다.

 

미 건국의 아버지 중에 한 사람인 벤자민 프랭클린(1706-1790)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인내하는 사람은 원하는 것을 손에 넣을 수 있다.”

 

이런 이야기가 있네요~ 어느 날 아브라함의 집에 100세 된 노인이 찾아와서 식사를 청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은 본래 손님을 잘 대접하는 사람이라 식사를 차려 드렸습니다. 그런데 이 노인은 우상을 섬기는 사람이라 식사 전에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노하여 노인을 당장 내쫓으려 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말렸습니다.

아브라함아, 참아라. 그 노인을 내쫓지 말라. 내가 그 노인이 회개하고 돌아오게 하려고 100년을 참았다.”

 

그렇습니다.

인내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법입니다.

 

어떤 버섯은 6시간이면 자랍니다. 호박은 6개월이면 자랍니다. 그러나 참나무는 6년이 걸리고, 건실한 참나무로 자태를 드러내려면 100년이 걸립니다.

 

18세기 철학자요 교육학자인 룻소는 말했습니다.

인내의 나무는 쓰나 그 열매는 달다

 

영국의 여류작가 레인 오스틴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진실로 성공하려면 당신의 마음의 뜰에 인내의 나무를 심어 두십시오.”

 

하버드대학교 수석 졸업자로 펜실베이니아 대학 심리학 교수인 앤절라 더크워스(Angela Duckworth, 1970~)는 그의 실험과 그 연구논문으로 전 세계의 창의적이고 미래의 잠재력을 지닌 사람 20명에게 주는 상, 맥아더 펠로우 상을 수상했습니다. 그 내용은 잠시 소개하려고 합니다.

 

그녀는 그의 책, 세계의 극찬을 받은 책 <그릿GRIT>에 하버드대학에서 진행했던 실험 하나를 소개 하고 있습니다. 바로 '러닝머신 실험'입니다.

 

학생 130명을 대상으로 최대속도의 러닝머신에서 5분 정도 달리게 한 실험입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끝나는 단순한 실험이었고, 실험을 끝마친 사람들은 일상으로 돌아갔습니다.

하지만, 진짜 실험은 그때부터 시작되었습니다.

하버드는 40년간 그들을 추적조사했습니다.

40년이 흐르고 당시 참가자들이 60세가 되자, 직업, 연봉, 만족도가 눈에 띄게 높은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재능 때문일 거야.” “남들보다 IQ가 높겠지.”

이처럼 그들의 공통점에 대해서 다양한 추측이 쏟아졌지만, 러닝머신 실험에서 그들의 공통점은 딱 하나였습니다. 바로 그릿(GRIT) 점수라는 겁니다. 심리학에서 어떤 한계에서 다다랐을 때, 끝까지 밀어붙이는 열정이나 목표 지향성을 그릿 ‘GRIT’이라고 표현합니다.

하버드에서는 체력에 한계가 왔음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고 몇 발자국이라도 더 뛰었는가를

바탕으로 그릿점수를 매겼는데, 결국, 한계라고 느끼면서도 한 발짝 더 내딛은 사람들이 40년 뒤 성공적인 삶을 살고 있던 것입니다.

 

이러한 실험 결과는 육군사관학교 실험, 초임교사 실험, 세일즈맨 실험, 이후 진행된 실험들에서도 똑같은 결과가 나왔습니다.

 

성공한 사람들이 가진 특별한 점은 재능이 아니라, “열정끈기였습니다.

, 재능보다는 인내가 성공에 더 많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실제로 재능의 한계에 부딪히기 보다 스스로 한계를 정해버리고 포기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사실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것은, 내 힘으로 할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나를 포기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 드러난 것입니다.

곧 그리스도의 인내에 들어간 사람입니다.

 

그렇습니다.

난 여기까지야!”라고 말하지 말아야 합니다.

내가 정한 시간 안에 나를 가두지 말아야 합니다.

내가 정한 목표에 나를 가두지 말아야 합니다.

내가 정한 계획표에 나를 가두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들 대부분은 자신이 갈 수 있는 한계를 넘어 가보지 못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의 인생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우리를 시간 속에 태어나게 하시고, 시간 속에서 우리 인생을 때로는 훈련소로, 때로는 경기장으로, 때로는 광야로, 때로는 하나님의 정원으로 인도하십니다.

그러므로 그 누구의 인생을 보더라도 한 부분으로 잘라서 볼 수 없습니다. 그 전체를 보실 수 있는 분은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전체를 보고 계신 사랑과 인내의 하나님을 제대로 만났습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말씀입니다.

 

살후 3:5 주께서

너희 마음을 인도하여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인내에

들어가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인내에 들어가도록 우리 마음을 인도하시는 분은 주님이십니다.

이 세상에서 우리 일생을 다하는 그날까지,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인내에 들어가

주님의 성품으로 가득한 삶을 이어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축도후 영상>

 

그 누구의 인생을 보더라도 한 부분으로 잘라서 볼 수 없습니다.

그 전체를 보실 수 있는 분은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들어가야 할 곳이 있습니다.

 

살후 3:5 주께서

너희 마음을 인도하여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인내에

들어가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우리의 일생 다하는 그날까지!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인내의 성품으로 살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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