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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0.15 20:37

화평케 하는 이 - 하나님의 아들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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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한봉희목사
설교일 2022-10-16낮
본문말씀 마태복음 5:9


화평케 하는 이 - 하나님의 아들이라 / 마태복음 5:9


5:9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그동안 예수께서 가르치신 팔복의 말씀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우리에게 표출되고 있는 성품에 대하여 말씀을 들었습니다. 오늘은 팔복의 말씀에서 남겨놓은 마지막 한 가지 성품을 담고자 합니다. 바로 우리 번동평화교회의 이름에 담고 있는 평화를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오늘의 세상은 심각할 정도로 평화를 잃어가고 있습니다.

 

보세요~

러시아의 푸틴은 작은 자를 삼키려고 전쟁을 일으켜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생명과 삶의 터전을 빼앗아 갔습니다.

중국의 시진핑은 집권의 철권통치를 위해서 인권을 유린하고, 자유를 빼앗고, 교회를 폐쇄하고, 선교사들을 추방하는 일을 일삼았습니다.

그리고 김정은은 백성에게 주어야 할 쌀을 핵폭탄과 미사일을 만드는데 쏟아붓고, 백성들을 굶주리게 하였고,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에 이어지는 공산주의 정권은 자신들을 우상으로 신격화하고 거짓을 진리로 바꾸어 백성들을 어리석은 백성 우민으로 만들어 영혼을 말살시키고, 기계보다 못한, 짐승보다 못한 사람으로 추락시키고 말았습니다.

 

거짓의 왕 사탄은 사악합니다. 자신이 만든 거짓과 욕심이라는 옷을 사람에게 입혀서 우상을 만들고, 그 우상을 섬기게 하여 하나님으로부터 떠나게 하는 일을 합니다. 그리고 사탄의 왕국을 이루는 것입니다.

당연히 거기에 평화가 있을 수 없습니다. 섬기는 사랑이 있을 수 없습니다. 진리와 생명이 있을 수 없습니다. 절망 중에 죽지 못해서 살다가, 결국 멸망에 이르는 것입니다.

 

평화의 뜻풀이를 하겠습니다.

평화는 다른 말로 화평, 평안, 평강 등으로 사용되고 있지만, 원어성경에서는 네 가지 모두 한 가지입니다. 구약에서는 샬롬’, 신약에서는 에이레네라는 말로 쓰입니다. 분쟁이나 전쟁이 없는 조화를 이루는 평화로운 상태와 함께, ‘온전함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곧 화평케 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온전하심과 같이 온전함에 이르는 사람이 된다는 것과 같습니다.

 

희망의 신학자 몰트만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관계성에서 진정한 평화공동체를 찾아냈습니다.

삼위일체 하나님! 그 관계성에는 희생적 사랑과 섬김으로 충만합니다.

 

강도가 와서 아들을 죽이려고 협박합니다. 그러면 어머니는 부르짖습니다. 차라리 나를 죽이고 아들을 살려주시오.” 여러분, 내가 죽는 것보다 내가 사랑하는 자식을 내어주는 것이 더 어려운 일입니다.

하나님은 친히 가장 사랑하시고 기뻐하시는 아들을 내어주셨습니다.

또한 성령께서는 자신의 이름을 내세우지 않고 하나님의 이름을, 예수님의 이름을 가지고 역사합니다. 그러므로 성령께서는 자신을 나타내지 않으시고 일하는 곳마다 하나님을, 예수님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바로 여기 삼위일체 하나님으로부터 평화를 이루게 하는 권능이 임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이러한 삼위일체 하나님의 역사로 구현된 거룩한 평화의 공동체입니다.

곧 교회는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으로 이룰 수 있습니다.

또한 교회는 이 평화를 세상에 이루기 위해, 화평케 하는 자로서의 중대한 사명을 감당해야 하는 것입니다.

혹자(Broadus)는 이르기를 세상에서 화평케 하는 일보다 더 하나님을 닮은 일은 없다고 하였습니다.

 

성도 여러분, 이사야서에서 하나님은 이같이 말씀합니다.

54:10 산들이 떠나며 언덕들은 옮겨질지라도 나의 자비는 네게서 떠나지 아니하며

나의 화평의 언약은 흔들리지 아니하리라 너를 긍휼히 여기시는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느니라

 

하나님은 이 화평의 언약을 이루시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 평화의 왕으로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평화의 왕 예수께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임하실 때, 천사들이 노래합니다.

2:14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그리고 우리에게 이 놀라운 찬송을 주셨습니다. (412)

내 영혼에 평화가 넘쳐남은 주의 큰 복을 받음이라

내가 주야로 주님과 함께 있어 내 영혼이 편히쉬네

평화 평화로다! 하늘 위에서 내려오네

그 사랑의 물결이 영원토록 내 영혼을 덮으소서

 

예수께서 화평케 하는 자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바로 오늘 말씀 본문입니다.

5:9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예수께서 온 세상의 구주로서 세상에 드러나게 되는 일로 세례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으실 때. 하늘로부터 말씀이 임했습니다.

3:17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평화를 이루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화평케 하는 자에게 똑같이 말씀합니다. 화평하게 하는 자여! “하나님의 아들이라로 불리리라.

 

하나님의 아들! 여기 아들에 담긴 의미는 매우 중요합니다.


물론 딸이 빠진 것은 아닙니다. ‘아들이 담고 있는 당시 개념이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1)아들! 이는 상속자입니다.


예수께서 두 아들의 비유에서 집에 있던 큰아들에게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15:31 아버지가 이르되 얘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되

 

네가 아들이냐? 그렇다면 이것을 알아야 하지 않겠느냐? 아버지의 것이 다 네 것이다

더욱이 나는 네 아버지로서 너의 전부를 받아들였거늘, 너는 네 동생의 잘못을 받아들이고 화평을 이루지 못하느냐고 큰아들에게 책망하는 아버지를 봅니다.

아들, 이는 하나님의 유업을 상속받는 자입니다.

 

(2)아들! 이는 신분이 보장된 자입니다.

 

역시 두 아들의 비유에서 볼 수 있습니다.

집을 나갔던 아들이 아버지 집에 돌아와서 하는 말입니다.

15:21 아들이 이르되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하나

15:22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아버지는 제일 좋은 옷을 입혀주고, 손에 가락지를 끼워주고, 종이 신을 수 없는 신을 신겨줍니다. 이는 품꾼도 아니고, 종도 아닌, 아들의 신분을 보증한 것입니다.

아들! 이는 세상이 뒤짚힌다 하여도 빼앗아 갈 수 없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신분입니다.

 

(3)아들! 이는 아버지 집에 거하는 자입니다.


집에 들어가지 못해서 아버지의 집을 담장 너머로 바라보면서 슬피 우는 자가 아닌, 아버지 집에 들어가 함께 거하며 아버지의 식탁에 함께 앉는 아들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화평케 하는 자는 하나님의 집에 영원히 거하는 하나님의 아들이요 딸입니다.

 

그만큼 화평을 이루는 자는 하나님의 아들로 놀랍게 일컬음을 받는 복있는 자입니다.

 

평화의 가족 여러분!


평화가 있는 곳에는 무한한 하나님의 자원이 함께 합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신 하나님으로 충만함이 그곳에 함께 합니다

평화의 왕으로 오신 예수께서 하나님 아버지의 모든 것을 가지고 오셨듯이, 이제도 화평케 하는 이가 있는 곳에는 하나님으로부터의 복이 있습니다. 여기에는 서로 사랑하며 세워주고 흥하게 하는 일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 평화를 잃고 분쟁하는 곳에는 무너지고 망하는 일이 있습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3:24 또 만일 나라가 스스로 분쟁하면 그 나라가 설 수 없고

3:25 만일 집이 스스로 분쟁하면 그 집이 설 수 없고

3:26 만일 사탄이 자기를 거슬러 일어나 분쟁하면 설 수 없고 망하느니라

 

평화는 모든 충만을 이루게 하고, 분쟁은 모든 것을 잃고 망하게 합니다.

 

평화를 이루게 하는 성품, 역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드러납니다.

 

평화가 있는 곳에는 내 것! 내 것!”하지 않고, 내어주고 죽기까지 희생하고 순종함이 있습니다.

우리가 받은 평화는 성자 하나님의 비우시고 낮아지시고 죽기까지 하심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평화를 위해 피와 땀과 눈물을 내어주셨습니다.

 

하지만 세상은 이 평화를 따르지 않고 자기 것 챙기기에 급급하고 있습니다.

<천로역정>을 쓴 존 번연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참 이상하다 마귀와 더불어 대적해야 할 성도들이 자기들끼리 싸우고 있다니!”(존 번연)

 

치명적인 독을 내는 방울뱀이라 할지라도 다른 방울뱀과 싸울 때는 결코 독을 내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인격을 지닌 사람들은 어찌 서로 헐뜯고 죽이는 일을 서슴지 않는지 생각할 문제가 아닙니까?

내 안에서 내가 죽고 예수께서 승리할 때, 비로소 참 평화가 임하는 것입니다. 나의 정과 욕심이 십자가에 못 박히고 오직 성령께서 나를 다스릴 때 화평케 하는 자가 될 수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12:14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12:18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

 

노벨상은 문학상, 의학상, 물리학상, 화학상 등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가운데 가장 영광스러운 것은 노벨 평화상입니다. 과학을 발전시키는 것도 중요하고, 경제를 발전시키는 일도 중요하지만 가정과 사회 그리고 온 세계가 절실하게 요구하는 것은 평화! ‘샬롬그리고 에이레네입니다.

 

실로 평화의 왕 주님 안에 온전히 머물기 전까지는 화평케 하는 자가 될 희망은 없습니다.

세상이 줄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보세요. 주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남기신 말씀입니다.

 

1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이 평안, 이 평화, 이 평강이 내 안에, 그리고 우리 안에 머물기 위해서는 이 같은 주님이 내 안에 머무시도록 죄로부터 거듭난 성도로서 주님의 성품을 본받아야 하겠습니다.

 

성도 여러분!

죄인은 평화, 평안, 평강, 화평을 얻을 수도 없고, 화평케 하는 자도 될 수 없습니다.

죄를 짓는 자의 마음은 이미 두 마음이 됩니다. 스스로 분열된 마음으로 평안의 기쁨을 누릴 수 없습니다. 죄에 빠지면 이미 분별력, 판단력을 잃게 됩니다. 죄는 심히 이기적입니다. 그 상태로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을 온전히 볼 수가 없습니다. 당연히 불화를 가져올 수밖에 없습니다. 모든 것을 분리케 하고 망가뜨립니다. 이러한 죄를 품고 화평을 바라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하기에, 예수께서 죄인을 위하여 십자가를 지시고, 평화의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이제 다시 부르고 싶은 평화의 기도를 담고 일어나고자 합니다.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 주소서.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상처가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의혹이 있는 곳에 믿음을 심게 하소서.

 

오류가 있는 곳에 진리를,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어둠이 있는 곳에 광명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심게 하소서

 

위로받기 보다는 위로하며, 이해받기 보다는 이해하며, 사랑받기 보다는 사랑하며,

자기를 온전히 줌으로써 영생을 얻기 때문이니,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 주소서.

 

오늘 말씀입니다.

 

5:9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축도후 영상>

 

5:9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하나님의 아들! 여기 아들에 담긴 의미는 매우 중요합니다.

(1)아들! 이는 상속자입니다.

(2)아들! 이는 신분이 보장된 자입니다.

(3)아들! 이는 아버지 집에 거하는 자입니다.

 

평화가 있는 곳에는 무한한 하나님의 자원이 함께 합니다.

 

평화를 이루게 하는 성품!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입니다.

 

예수께서는 죄인을 위하여 십자가를 지시고,

평화의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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