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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낮예배
2022.09.17 18:42

애통! 위로의 통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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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한봉희목사
설교일 2022-9-18낮
본문말씀 마태복음5:4


애통! 위로의 통로 / 마태복음5:4 


5:4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또 한 주간을 보냈습니다.

한 주간 동안 지난 주일에 주신 말씀 긍휼히 여기는 자로서 살자는 말씀에 지극히 작은 부분이라도 마음과 행동으로 옮기셨는지요? 긍휼히 여기는 성품은 더욱이 하나님과 함께하는 성품이기에 놓치지 말아야 할 성품이었습니다.

 

오늘도 예수님의 산상설교 팔복의 말씀에서 이어지는 성품을 담고자 합니다.

바로 애통하는 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이 세상을 보세요!

 

애통보다는 급노가 많은 세상입니다.

애통보다는 원망이 많은 세상입니다.

애통보다는 비방이 많은 세상입니다.

그리고

남을 위해 애통하기보다는 자기가 속상해서 분통하는 세상입니다.

그래서

애통하기보다는 함께 좌절하는 세상입니다.

 

애통한다는 말, 헬라어 펜데오는 크게 슬퍼하는 것을 말합니다.

 

성경에서 애통하는 사람 몇 사람을 들여다보겠습니다.

 

 

시편에 담긴 애통입니다.

42:3 사람들이 종일 내게 하는 말이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뇨 하오니 (눈물)이 주야로 내 음식이 되었도다

나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합니다. 그런데, 주변의 사람들이 내가 처한 형편을 보고,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고 합니다. 이 말을 들으니 밤에도 낮에도 눈물이 마르지 않습니다.....

 

남 유다가 바벨론 포로로 잡혀가기까지 40여년간 예언한 선지자 예레미야의 애통입니다.

9:1 어찌하면 내 머리는 물이 되고 내 눈은 눈물 근원이 될꼬

죽임을 당한 딸 내 백성을 위하여 주야로 울리로다

14:17 너는 이 말로 그들에게 이르라 내 눈이 밤낮으로 그치지 아니하고 눈물을 흘리리니

이는 처녀 딸 내 백성이 큰 파멸, 중한 상처로 말미암아 망함이라

하나님이 온 세상의 구원을 위해서 택하신 나라가 하나님을 경히 여기고 우상을 섬기고 죄악을 행함으로 큰 파멸에 처함으로 망하게 된 것을 주야로 애통하는 예레미야의 눈물입니다.

 

사도 바울의 애통입니다.

3:18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바울은 사람들이 구원의 십자가의 은혜를 알지 못하고 주께로 돌아오지 않고 오히려 십자가를 경멸하는 것에 눈물을 흘리고 있습니다.

 

여기 주 예수님의 애통하심이 있습니다.

예수께서 사랑하는 나사로가 병들어 죽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으시고 이틀이 지난 후 그의 집에 이르렀을 때는 나사로가 죽어있었고, 그의 누이들 마리아와 마르다가 눈물을 흘리며 슬퍼하고 있었습니다. 요한복음 11장에서 이 장면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11:33 예수께서 그가 우는 것과 또 함께 온 유대인들이 우는 것을 보시고

심령에 비통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기사

11:34 이르시되 그를 어디 두었느냐 이르되 주여 와서 보옵소서 하니

11:35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


하나님이 지으신 사람들이 질병과 죽음에 처함에 대하여, 그 죽음으로 이별의 슬픔을 겪는 일에 대하여, 이 땅에 구주로 오신 예수께서 특히 주께서 사랑하는 자들의 아픔에 대하여 함께 애통하시는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예수께서는 죽은 지 나흘이나 된 나사로를 무덤에서 불러내시어 죽음을 이기고 일어나게 하셨습니다. 이는 장차 우리에게 있을 영원한 부활을 예표한 일이었습니다.

 

21: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주 예수님의 눈물은 이 세상이 질병과 죽음에 처한 모습을 보고 계시는 하나님의 눈물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애통은 결코 애통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여기에 애통보다 큰 위로가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애통함이 있는 곳에 위로자가 곁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애통은 하나님의 위로의 통로가 됩니다.

 

위로하다는 말, ()파라칼레오(parakalevw)옆에서 말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곧 곁에 함께 있어 주는 위로자가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보내실 성령을 보혜사라고 지칭하셨습니다.

15:26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언하실 것이요

여기서 보혜사라는 단어가 위로하다는 말 파라칼레오와 그 뿌리를 같이하고 있는 파라클레토스(paravklhto")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위로자, 대변자, 변호자의 뜻입니다. 곧 보혜사는 곁에 오셔서 위로하시는 성령입니다.

 

여러분! 세상이 우리를 위로할 수 없습니다.

세상으로부터의 위로가 세상으로부터의 죄와 사망을 이길 수 없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위로는 주님으로부터 옵니다.

 

51:12 이르시되 너희를 위로하는 자는 나 곧 나이니라...

 

위로부터의 위로를 기다린 사람이 있습니다.

2:25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 사람은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

 

성령께서 임하시는 곳에 위로가 함께합니다.

 

9:31 그리하여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지니라

 

바로 파라클레토스 보혜사 성령께서 함께하시는 위로입니다.

성령의 임재 안에 있는 성도는 세상이 줄 수 없는 위로의 권능 가운데 살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주님의 고난의 십자가에는 하나님의 위로가 넘쳐납니다.

 

고린도후서 서두의 찬송입니다.

고후 1:3 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고후 1:4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고후 1:5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 같이

우리가 받는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

 

구구절절 위로두 글자를 담고 있는 찬송입니다.

죄가 없으신 주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고통하며 죽음을 경험하신 것은 우리를 위로하실 수 있 자 되신 확증을 보이신 것입니다.

 

여러분!

애통하는 자이십니까?

 

애통의 눈물은 그 자체가 고유한 가치와 무게를 지니고 있습니다.

웃음이 아무리 매력적이라고 해도 웃음이 눈물을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햇빛만 쏟아지면 사막이 됩니다. 인생도 마찬가집니다. 눈물이 없는 인생은 사막과 같습니다. 신앙생활에서 애통과 눈물이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로 작지 않습니다. 눈물의 골짜기를 통과하지 아니한 신앙은 값싼 장식품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애통의 눈물은 우리의 신앙을 보다 숭고함으로 인도합니다.

눈물이 고인 눈에는 십자가의 주님이 보이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남을 위해서 희생하는 마음이 있는 곳입니다.

십자가는 남의 잘못을 지고가는 사랑이 있는 곳입니다.

 

애통하는 자는 십자가가 아래 머물 줄 압니다.

그러나 애통이 아닌, 비방과 원망과 판단이 앞서면 눈물이 마르고 지적하는 손가락만 길어지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것을 기억합니다. 남의 눈의 티는 보면서, 내 눈에 들보는 보지 못한다 하였습니다.

 

<길은 여기에>, <빙점> 등의 작품으로 널리 알려진 일본의 미우라 아야꼬는 반평생을 병으로 살았습니다. 폐결핵, 척추병, 습진, 파킨스병, 암 등 갖가지 질병 속에서 고통의 나날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고통 속에서 위대한 작품들을 만들었습니다.

고통 속에서 지은 아프지 않으면이라는 시의 내용입니다.

 

아프지 않으면 드리지 못할 기도가 있다.

아프지 않으면 듣지 못할 말씀이 있다.

아프지 않으면 접근하지 못할 성소가 있다.

아프지 않으면 우러러 뵙지 못할 거룩한 얼굴이 있다.

아아, 아프지 않으면 나는 인간일 수 없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신앙은 눈물을 먹고 자랍니다.

우리의 성품은 눈물의 골짜기를 통과하면서 성숙됩니다.

올곧게 뻗은 나무들보다는 휘어 자란 소나무가 더 멋있습니다. 똑바로 흘러가는 물줄기보다는 휘어가는 굽이진 강줄기가 더 정답습니다. 일직선으로 뚫린 빠른 길보다는 산 따라 물 따라 가는 길이 더 아름답습니다!

길이 끊어져 있다고 주저앉을 수 없습니다. 돌아설 수 없습니다. 눈은 뒤에 달려있지 않고 앞에 달려 있습니다. 그래요~ 눈물 흘리며 가는 길이 인생입니다. 우리가 살아 있다는 건 아직도 가야 할 길이 있다는 것입니다!

곧은 길만이 길이 아닙니다. 가로등이 있는 밝은 길만이 길이 아닙니다.

 

오히려

애통하는 자에게 주께서 여시는 길이 있습니다.

주께서 그의 곁에 다가와서 나와 함께 가자고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습니다.

위로를 받기 때문입니다.

위로자가 곁에 다가와 있기 때문입니다.

위로의 통로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애통하는 자는 홀로 가지 않습니다.

곁에서 같이 가! 하고 부르는 이가 있습니다.

바로 파라클레토스 보혜사 성령이십니다.

 

여러분!

주님으로부터의 위로는 영원합니다.

살후 2:16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를 사랑하시고 영원한 위로와 좋은 소망을 은혜로 주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께서

살후 2:17 너희 마음을 위로하시고 모든 선한 일과 말에 굳건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가장 많은 눈물이 있는 곳이 장례식장입니다.

 

그러나 여기에 그보다 큰 위로의 통로가 있습니다. 바로 천국으로 이끄는 위로입니다.

 

살전 4:17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살전 4:18 그러므로 이러한 말로 서로 위로하라

 

그렇습니다. 죽음 앞에서의 마지막 눈물, 이는 천국으로 인도하는 위로의 통로입니다.

 

우리는 지금 무엇 때문에 애통하고 있습니까?

 

옛날이야기 하나 담으면서 말씀을 맺으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세상 만물과 동식물을 지으실 때였습니다.

저녁 무렵이 되어서 깊은 생각에 잠기신 후 잿빛 털을 가진 조그만 새 한 마리를 만드셨습니다. 그리고는 그 이름을 진홍가슴 새라고 붙여 주셨습니다.

이 새가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저는 온통 잿빛 털을 가지고 있는데 어찌하여 진홍가슴 새라는 이름을 붙여 주셨습니까?” 그러자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참사랑을 베풀 수 있게 될 때, 그 이름에 합당한 깃털을 가지게 될 것이다.”

 

그 후 오랜 세월이 흘렀습니다.

어느 날 진홍가슴 새의 둥지 근처 언덕에 십자가가 세워졌습니다. 그리고는 어떤 사람이 그 십자가에 달렸습니다. 멀리서 이 광경을 보던 진홍가슴 새는 그 사람이 얼마나 불쌍하게 보이던지 그 십자가에 달린 사람에게로 날아갔습니다. 가까이 가서 보았더니 그 사람의 이마에 가시관이 씌워져 있는데 그 가시가 박힌 상처에서 검붉은 피가 솟아나고 있었습니다.

 

이 새는 그 가엾은 사람의 이마로 날아가서 자신의 자그마한 부리로 그 사람의 이마에서 가시를 하나씩 하나씩 뽑아내기 시작했습니다. 이 새는 지칠 때까지 그 가시들을 뽑다가 안타깝게 돌아오고 말았습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이 결국 숨을 거두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자기 몸에 묻은 피가 도무지 깨끗이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결국 목덜미와 가슴에는 핏자국이 남게 되었고, 더욱 이상한 것은 그 새가 낳는 새끼들마다 모두 목덜미와 가슴에 선명한 진홍빛을 가진 털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여성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받은 스웨덴의 라게를뢰프가 쓴 진홍가슴 새라는 동화입니다.

 

그렇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애통하기보다는

급노, 원망, 비방, 분통, 좌절이 가득한 세상에서

애통하는 주님의 십자가를 품고,

애통하는 마음을 담은

진홍가슴을 가지고 살고 있습니다.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습니다.

애통하는 자를

하나님께서 영원한 하늘로부터의

위로의 통로로 삼으십니다.

 

기도하겠습니다.

5:4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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