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회원가입

온 세상의 소망 오직 예수로! 오직 복음으로!

주일낮예배
2022.08.13 21:28

느낌표 인생!

조회 수 199 추천 수 1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Extra Form
설교자 한봉희목사
설교일 2022-8-14낮
본문말씀 마태복음 15:21-28


느낌표 인생! / 마태복음 15:21-28

 

15:21 예수께서 거기서 나가사 두로와 시돈 지방으로 들어가시니

15:22 가나안 여자 하나가 그 지경에서 나와서 소리 질러 이르되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하게 귀신 들렸나이다 하되

15:23 예수는 한 말씀도 대답하지 아니하시니 제자들이 와서 청하여 말하되 그 여자가 우리 뒤에서 소리를 지르오니 그를 보내소서

15:2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하시니

15:25 여자가 와서 예수께 절하며 이르되 주여 저를 도우소서

15:26 대답하여 이르시되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15:27 여자가 이르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니

15:28 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 때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

 

지난 한 주간 별고 없으셨는지요~

여전히 삶의 자리에는 계속 물음표를 그려넣지는 않으셨는지요?

지난 주일 우리는 물음표 인생에 대하여 말씀을 들었습니다.

특히 모든 것을 잃고 큰 고난 중에 빠진 욥의 입을 통해서 하나님 앞에서 토한 인생의 물음이었습니다. 하나는 사람이 무엇이기에 그렇게 큰 존재로 만드셨습니까?” 하는 자기존재에 대한 물음이었습니다. 또 하나는 어찌하여 순간마다 침을 삼킬 동안도 나를 놓치않으시고 단련하십니까?” 하는 난에 대한 물음이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어찌하여 하필이면 나를 하나님의 과녁으로 삼으셨습니까?” 하는 하나님의 뜻에 대한 물음이었습니다.

이러한 물음표 인생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느낌표 인생으로 변화가 일어납니다.

 

오늘 우리가 듣게 되는 말씀의 제목은 느낌표 인생!”입니다.


느낌표(!)의 시작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주님은 나를 감동케 하신 분입니다.

수만 가지 지식과 경험과 재물과 권력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물음표를 주님은 십자가에서 다 이루셨습니다. 십자가에서 흘리신 핏방울로 느낌표를 만드셨습니다.

십자가에서 하신 여섯 번째 말씀입니다.

다 이루었다”(19:30)

 

하루는 십자가를 지시고 부활하신 예수께서, 성도들을 박해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대적한 청년 사울을 찾아오셨습니다.(9)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주여 누구시니이까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예수께서는 박해자 사울을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로 들어 세우셨습니다.

다른 제자들도 하지 못한 이방세계에 수많은 교회를 세웠습니다. 로마세계에 부활의 주님 예수 그리스도를 전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고 있는 성경 66권 중에 13권은 바울이 남겨준 말씀입니다.

 

율법주의와 철학과 자기행위로 똘똘 뭉쳐있던 사울이 어떻게 변화되었습니까?

여기에는 예수께서 어찌 자기를 사랑하실 수 있겠는가? 하는 물음표가 느낌표로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이에 바울은 고백합니다.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고전13:13)

6:14절의 고백입니다.

6:14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예수님을 나의 주님으로 믿는 성도 여러분!


예수께서는 우리에게 인생의 느낌표를 찾아주셨습니다.

 

내 마음에 느낌표가 있다는 것은 나를 움직이게 하는 힘이 내게 임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주 예수님의 아가페 사랑의 정점인 십자가가 있습니다. 이것은 죄인을 위하여 죽을 수 없는 목숨을 죽기까지 내어주시는 하나님의 희생하시는 사랑이 있습니다. 이 사랑보다 큰 힘은 세상에 없습니다.

 

또한 성령께서 마음을 감화감동하시는 역사가 있습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지 않고서는 육적인 소욕에 갇혀있던 인생을 영적인 존재로 자유케 할 그 어떠한 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성령의 임재 안에서 진정한 자유를 체험하게 됩니다.

특히 갇혔던 자기로부터의 자유를 얻게 됩니다.


성령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로부터 자유하라

 

하지만, 여러분!

그 누구도 스스로 자신을 자유롭게 할 수 없습니다.

예수께서 보실 때, 당시 제사장들, 사두개인들, 바리새인들, 장로들, 서기관들, 그리고 유대인들....이른바 자신이 옳다고 주장할 수 있었던 사람들은 모두 자신 안에 갇혀 살았습니다.

 

사도 바울도 예수님을 만나고서 비로소 자신으로부터 나와서 자유가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바울은 자신과 끊임없이 싸워야 했습니다.

 

7:22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7:23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7: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한 이야기를 통해서 이해를 돕도록 하겠습니다.

인도의 어느 왕국에 아주 젊고 아름다운 왕비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왕비는 왕과 결혼한 지 1년 만에 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왕은 너무 슬퍼서 어찌할 바를 알지 못했습니다. 궁리 끝에 왕은 아주 정성을 들여 왕비의 무덤을 만들었습니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난 후 왕은 무덤을 찾아가 보았습니다. 그때 왕의 눈에 비친 무덤은 너무 쓸쓸해 보였습니다. 그래서 신하들을 시켜 왕 자신을 상징하는 미남의 조각상을 만들어 무덤 동편에 세우도록 했습니다. 아마도 자기는 비록 무덤가에 있지 못할지라도 자기를 닮은 동상이라도 두어 왕비의 영혼을 위로하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또 다시 1년 뒤에는 무덤 앞에 재력을 상징하는 호화로운 궁전을 짓게 하였고, 그것만으로도 부족하여, 다시 1년 뒤에는 무덤 북편에 무덤이 있는 동산에 올라 아래를 내려다보니 참으로 근사하기 이를 데 없었습니다. 호화로운 궁전에 훌륭한 성곽까지 잘 조화되어 아름답기 그지없었고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해 보였습니다.

 

흡족한 마음으로 좀 더 살펴볼 양으로 자세히 보니 가운데 초라하게 서 있는 무덤이 눈에 거슬렸습니다. 그래서 왕은 이렇게 명하였습니다. 저 가운데 있는 무덤을 치워 버려라.”......(잠시 멈춤)

 

우리도 이런 과오에 빠질 수 있습니다.

처음엔 감격스럽게도 십자가를 지신 주님을 중심에 모셨는데, 점차 자기가 드러나고, 학벌이 드러나고, 재물, 명예, 권력이 드러나면서, 이로 말미암아 결국엔 하나님은 점점 구석으로 밀려나거나 자신의 이용물이 되어버리고, 유대인처럼 구원자로 오신 예수님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게 되는 것입니다.

문학평론가로서, 초대 문화부장관을 지내시고 160여 권의 책을 남기고 90세의 일기로 지난 (2022) 226일 별세하신 이어령 교수가 남긴 마지막 노트 [눈물 한방울](2022.6.27.김영사) 한 페이지에서 이런 글이 보게 되었습니다.


다이아몬드는 사막에서 길 잃은 자에게 한 방울의 물보다도 가치가 없다.

나무꾼이 당장 나무를 베는데 금도끼가 무슨 소용인가. 정직해서가 아니라

나무꾼이 필요로 하는 도끼는 금도끼도 은도끼도 아닌 쇠도끼이다.”

 

지금도 이 세상에서는 생명의 물이 필요한데, 다이아몬드를 찾고 있습니다.

지금도 일터에서는 쇠도끼가 필요한데 금도끼를 구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자기에 갇혀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성령의 사람이 되지 않으면 갇혀버린 자기로부터 해방될 수 없음을 깨달았습니다.

 

로마서 8장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8: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8:5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8:6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그렇습니다. 성경은 이 사실을 기억하라고 합니다.

육신적 자아로부터 자유할수록

더욱 놀라운 느낌표 인생을 경험한다!

그러하기에 바울은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 말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로써 바울 안에는 자유의 본체 예수 그리스도로 충만하게 된 것입니다.

 

이제 오늘 본문 말씀에서 느낌표 인생을 봅니다.

 

예수께서 하루는 이스라엘 땅 북서쪽에 있는 이방인 지역인 두로와 시돈 지방에 가셨습니다.

이 지역은 엘리야 선지자가 기근 때, 하나님이 사렙다 지역으로 인도하심으로 그곳 과부의 집에서 도움을 주고받게 된 일이 있는 곳입니다.

 

예수께서 이 지방에서 귀신 들린 딸의 어머니 가나안 여인의 간청을 듣게 됩니다.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하게 귀신 들렸나이다 (15:22)

그러나 예수께서는 한 말씀도 대답하지 않으셨습니다.

제자들이 와서 청합니다.

그 여자가 우리 뒤에서 소리를 지르오니 그를 보내소서

이에 다시금 예수께서 대답하십니다.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여자가 이제는 예수께 절하면서 간청합니다.

주여 저를 도우소서

예수님의 대답은 점점 냉정해졌습니다.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귀신들인 딸의 어머니의 마지막 말입니다.

15:27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여기서 예수님은 그의 소원에 응답하셨습니다.

15:28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그 때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

 

이 이적 사건에서 주 예수께서 의도하신 것 몇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제자들이 자기민족 밖에 모르는 선민사상으로부터 온 세상을 위한 복음임을 알게 하고, 그 갇힌 생각을 깨뜨려야 했습니다. 그래서 의도적으로 예수님은 역으로 강하게 이방여인을 내치시기까지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결국 의도하신 것은 이방사람에게 은혜의 복음이 임했다는 것을 체험하게 하신 것입니다.

 

또 하나는, 귀신들렸던 딸과 그의 어머니의 고통을 통해서 주님을 만나게 하시고, 그 만남에는 여인의 믿음이 있었다는 것을 지적하신 것입니다.

왜 하필이면 우리 집안에 이런 흉악한 일이 있어야 하는가 하는 물음표 인생이 믿음의 역사를 통해서, 느낌표 인생으로의 시작을 이루신 것입니다.

~ 오늘 나와 내 딸은 구주 예수님을 만났다! 이것은 우리 인생의 방향을 바꾸신 분이다.”

 

또 한 가지는, 귀신들린 딸이 고침을 받기까지 보인 행동과 그 마음에는 우리를 감동시키는 느낌표가 있습니다. 그 느낌표를 우리에게까지 전달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 느낌표 안에는~

-어머니의 조건 없는 사랑이 보입니다.

-주님께 대한 절대적인 믿음이 보입니다.

-자신이 모욕을 당할지라도 딸의 치유를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희생하는 각오가 보입니다.

이에 어머니와 딸은 비로소 참 자유를 얻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주 예수님은 자유의 본체이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인간에게 부여된 이 자유를 인간이 스스로 잃고 말았습니다.

이는 인간의 자기중심적인 탐욕이 <자기라는 새장>에 자기를 가두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거기서 죽지 않으면 나올 수 없는 것입니다.

 

한 조류학자가 깊은 산속에서 앵무새 둥지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조류학자는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는 앵무새 새끼를 가져와서 새장에 넣어 마당 한쪽의 나무에 매달아 놓았습니다. “이제는 매일 아침 앵무새의 아름다운 노래를 들으며 눈을 뜰 수 있겠군.” 하면서 크게 기뻐했습니다.

그런데 며칠 후부터 어미 앵무새가 나타났습니다. 어미 새가 새끼에게 부지런히 먹이를 날라다 주었습니다. 학자는 어미 새의 모정에 감동했습니다. 이제는 새끼에게 먹이를 주는 수고를 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며칠 후 새장의 새끼 앵무새가 죽은 채로 발견됐습니다.

조류학자는 그 사인(死因)을 분석하고 오싹 소름이 끼쳤습니다. 어미 새가 새끼에게 계속 독과일을 갖다 먹인 것입니다. 어미 새는 새장에 갇혀서 처량하게 울고 있는 자신의 새끼를 차마 눈을 뜨고 볼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독과일을 먹여 새끼를 그 새장에서 죽게 한 것입니다.

 

새는 하늘을 날 때 자유롭습니다.

사람은 어떻습니까?

영원한 진리 안에 거하는 사람이 참 자유를 누립니다.

 

진리는 추상 명사가 아닙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이며 그 본체이십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십니다.

 

8:32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14:6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진리 되신 예수께서 우리를 자유케 하십니다.

내일은 광복절 77주년입니다.

일본의 박해로부터 자유를 얻었지는 몰라도, 여전히 사람들은 옛자아로부터 자유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곧 자기라는 새장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온 세상의 기쁜 소식 복음인 것입니다.

그리고 나를 그리스도 안에서 나 되게 하신 느낌표 인생으로의 은혜입니다.

여기 한 자유인의 모습을 봅니다.

그리고 그에게서 느낌표를 보면서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어느 초등학생 소녀가 길에서 주워온 야생화를 담임선생님에게 보여주면서, 이 꽃 이름이 무엇인지 여쭈어보았습니다. 선생님은 꽃을 한참 보시더니 말했습니다.

미안해서 어떡하지 선생님도 잘 모르겠는데 내일 알아보고 알려줄게.”

 

선생님 말씀에 소녀는 깜짝 놀랐습니다.

선생님은 세상에 모르는 게 없을 거라 믿었기 때문입니다.

 

집으로 돌아온 소녀는 아빠에게 말했습니다.

아빠, 이 꽃 이름이 뭐예요? 우리 학교 담임선생님도 모른다고 해서 놀랐어요.”

 

그런데 믿었던 아빠도 꽃 이름을 모른다는 것이었습니다. 더욱 놀랐습니다.

왜냐하면, 소녀의 아빠는 식물학을 전공으로 대학에서 강의하시기 때문입니다.

 

다음 날 학교에 간 소녀를 담임선생님이 불렀습니다.

그리고는 어제 질문한 꽃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주셨습니다.

소녀는 아빠도 모르는 것을 잊어버리지 않으시고 알려주신 선생님이 역시 대단하다고 감탄했습니다.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사실은 어젯밤 소녀의 아빠가 담임선생님에게 전화를 해서 그 꽃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해주었던 것입니다. 아빠는 그 꽃이 무엇인지 당연히 알고 있었지만, 딸이 어린 마음에 선생님께 실망하고 살아가는 데 믿음을 잃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 소녀의 아빠가 취한 행동에는 십자가 사랑으로부터 나오는 진정한 자유가 있습니다.

그리고 오랫동안 지워지지 않는 느낌표가 있습니다.

또한 언젠가 딸이 아빠가 알고 있으면서도 선생님께 그 답을 넘겨주셨다는 것을 알게 될 때는 또 한 번, 아빠에 대한 더 큰 느낌표를 보게 될 것입니다.

 

평화의 가족 여러분!

우리의 삶에는 느낌표가 필요합니다.

주님으로부터 받은 느낌표가 삶 속에서 수많은 느낌표 열매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나에게 주신 삶의 자리로부터 이웃과 세상을 향하여, 명세서가 아니라, 느낌표를 전해줄 수 있는 삶으로 살아야 하겠습니다. 성공을 추구하는 삶이 아니라, 감동을 끼치는 삶으로 말입니다.

 

나는 스스로 나의 인생 그리고 다른 사람의 인생을 느낌표 인생으로 바꿀 수 있는 그 어떤 것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오직 주 예수님의 십자가가 아니면 느낌표 인생이 시작될 수 없습니다.


또한 성령의 감동하심이 없이는 결코 육신적 자아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항상 나라고 하는 새장 속에 갇혀 살 것입니다. 갇혀있는 것도 모르면서 말입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느낌표 인생을 가로막고 있는 너로부터 자유하라.”

 

<축도후 영상>

 

우리의 삶에는 느낌표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나에게 주신 삶의 자리로부터

이웃과 세상을 향하여,

명세서가 아니라, 느낌표(!)

전해줄 수 있는 삶으로 살아야 하겠습니다.

 

오직 주 예수님의 십자가가 아니면

느낌표 인생이 시작될 수 없습니다.

 

또한 성령의 감동하심이 없이는

결코 육신적 자아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항상 나라고 하는 새장속에 갇혀 살 것입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느낌표 인생을 가로막고 있는 너로부터 자유하라.”

 

느낌표 인생 / 마태복음 15:21-28 

?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337 주일낮예배 구덩이에 던져진 은혜 한봉희 2023.08.19 140
336 수요예배 [31] 에스겔 / (하단)금요기도회말씀(아낌없이 주는 나무 _ 예수 그리스도) 한봉희 2023.08.19 114
335 주일낮예배 하나님 나라가 임하소서 한봉희 2023.08.12 157
334 수요예배 [30] 다니엘 한봉희 2023.08.12 96
333 주일낮예배 자존심에서 자존감으로! 한봉희 2023.08.05 191
332 수요예배 [29] 요 나 / (하단) 금요기도회말씀(하나님의 도구와 남은 자) 한봉희 2023.08.05 81
331 주일낮예배 쉼을 창조하신 하나님 한봉희 2023.07.29 133
330 수요예배 [28] 예레미야 한봉희 2023.07.29 104
329 주일낮예배 다시 받은 인생 한봉희 2023.07.22 150
328 수요예배 [27] 이사야 / (하단)금요기도회말씀(이러한 닻을 내리고) 한봉희 2023.07.22 88
327 주일낮예배 하나님의 손 한봉희 2023.07.15 141
326 수요예배 [26] 히스기야 한봉희 2023.07.15 106
325 주일낮예배 하나님의 걸음 한봉희 2023.07.08 194
324 수요예배 [25] 엘리야와 엘리사 / 하단 (금요기도회) 일어나 세렛시내를 건너가라 한봉희 2023.07.08 133
323 주일낮예배 그 중에 제일은 사랑! 한봉희 2023.07.01 141
322 수요예배 [24] 솔로몬 한봉희 2023.07.01 98
321 주일낮예배 주여! 이 땅 새롭게 하소서 한봉희 2023.06.24 153
320 수요예배 [23] 다윗과 시편(3) 한봉희 2023.06.24 101
319 주일낮예배 그 샘 이름 '엔학고레' 한봉희 2023.06.17 229
318 수요예배 [22] 다윗과 요나단(2) 한봉희 2023.06.17 112
317 주일낮예배 헛된 수고를 하지 않게 하소서 한봉희 2023.06.10 221
316 수요예배 [21] 다 윗(1) 한봉희 2023.06.10 106
315 주일낮예배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자 한봉희 2023.06.03 188
314 수요예배 [20] 사울 왕 / (하단)금요기도회 말씀(무엇보다 마음을 지켜야, 잠4:23) 한봉희 2023.06.03 98
313 주일낮예배 이 뼈들이 능히 살 수 있겠느냐 한봉희 2023.05.27 176
312 수요예배 [19] 사무엘 / (하단) 금요기도회말씀_오직성령으로보이셨으니(고전2:9-14) 한봉희 2023.05.27 111
311 주일낮예배 하나님의 심폐소생술 한봉희 2023.05.20 152
310 수요예배 [18] 한 나 한봉희 2023.05.20 104
309 주일낮예배 하나님의 거실 한봉희 2023.05.13 132
308 수요예배 [17] 룻과 보아스 / (하단 )금요기도회말씀(섬김의 복과 은혜) 한봉희 2023.05.13 117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14 Next
/ 14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