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회원가입

온 세상의 소망 오직 예수로! 오직 복음으로!

주일낮예배
2023.04.01 23:07

그것 때문에 십자가를 졌다!

조회 수 170 추천 수 1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Extra Form
설교자 한봉희목사
설교일 2023-4-2낮(사순절6)종려주일
본문말씀 요한계시록3:14-22



그것 때문에 십자가를 졌다! 요한계시록3:14-22


4월 새달을 맞이하면서 주께서 마지막주간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종려주일을 맞이했습니다. 세상의 권세와 능력은 하늘에 닿을 정도로 치닫고 있는데, 만왕의 왕 주 예수께서는 겸손하셔서 나귀새끼를 타시고 예루살렘성에 입성하셨네요! 그리고는 이 세상 모든 죄와 사망을 지고가신 십자가의 길을 가셨습니다.

 

지난 주일 빌라델비아교회는 작은 능력을 갖고도 오히려 말씀을 지키며 살아있는 교회가 되어 주님으로부터 가장 놀라운 칭찬을 받았습니다. 그리스도인의 능력은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통로가 되는 것임을 거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오늘 이런 빌라델비아교회와는 정반대의 모습을 보인 라오디게아교회가 있습니다.

 

라오디게아는 로마의 정치인이며 작가인 키케로(BC106~43)가 재산을 예치하고 현금거래를 한 일이 있을 정도로 큰 은행이 설치되어 금융사업에 두각을 나타냈습니다. 주후 60년경 지진으로 폐허가 된 도시를 자력으로 재건할 정도로 대단한 재력을 보유한 도시였습니다. 검은 양모로 의복을 만드는 양모산업으로 부를 축적했습니다. 앞서서 주전 4세기 아리스토텔레스 시대부터 알려진 유명한 의과대학도 있었습니다. 이곳에서 생산된 부르기아 안약은 세계적으로 각광을 받는 의약품에 속하기도 했습니다.

 

바로 가질 만한 것 다 가진 라오디게아에 있는 라오디게아교회입니다.

결국 하나님보다 그것을 의지하는 교회로 신앙심은 바닥에 떨어졌습니다.

 

주님의 이 교회에 대한 진단서가 이렇습니다.

 

3:15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3:16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

17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3:17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그렇습니다. 이는~

미지근한 신앙과 오만과 착각으로 범벅이 된 생명력을 잃어가는 마지막 때의 교회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냥 놔두면 그야말로 사탄의 먹이감이 되고 마는 이들이었습니다. 주님의 입맛에도 맞지 않아서 토하여 버릴 정도가 되었습니다.

 

여러분! 세상을 보면, 어떤 이는 가난과 싸우고 있고, 어떤 이는 재물과 싸우고 있습니다.

그런데, 가난과 싸워 이기는 사람은 많으나, 재물과 싸워 이기는 사람은 적습니다. 그만큼 물질의 부요함이 오히려 더 소중한 것을 잃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먹이가 있는 곳엔 적이 있고, 영광이 있는 곳엔 상처가 있다.”

 

이제 주께서 처방전을 주셨습니다.

 

3:18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주님은 교만으로 채색된 믿음이 아니라, 불순물이 제거되는 연단된 순전한 믿음을 요구하셨습니다. 불로 연단된 금을 내게서 사라고 주께서 말씀하십니다.

또한 검은 양모로 부유함을 얻었지만 반면에 영적으로는 빈곤한 상태에 이르렀기에 다시금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속죄로 흰옷을 입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흰옷을 준비하시기 위해서 예수 계서 피 뿌린 옷을 입으셨습니다.

19:13 또 그가 피 뿌린 옷을 입었는데 그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라 칭하더라

 

또한 그들은 고급 안약을 팔면서 돈을 모았지만, 영적인 안목의 시력을 잃었습니다. 이에 주 예수 그리스도께 초점을 맞추고, 다시 눈을 영적인 눈으로 뜨는 치유함을 받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도 바울이 에베소교회에 보낸 말씀입니다.

1:18 너희 마음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이며

 

여기 마음의 눈을 따라간 사람이 있습니다.

유대인으로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난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신경정신과 의사이며 심리학자인 빅터 프랭클(1905-1997)입니다. 그에게 1941년 어느 날, 미 대사관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가 걸려옵니다.

"빅터 프랭클씨, 이민 비자가 발급되었습니다. 찾으러 오세요.“

미국으로 이민 갈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입니다. 때는 많은 유대인이 강제수용소로 끌려가던 시기였기에 유대인이었던 그에게는 생명을 보장하는 생명의 전화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했습니다. 비자는 자신과 아내에게만 허락되었기 때문에 결국 노부모를 남기고 떠나야 하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숙고 끝에 그는 미국행을 포기하기로 했습니다.

3년후 그와 아내, 부모님은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끌려가고 맙니다. 머리는 빡빡 깎이고 죄수복에, 목숨을 연명할 정도의 음식만 먹으며 매일 극심한 노동에 시달렸습니다. 점점 몸이 망가져 서 있는 것도 신기할 정도였지만, 어딘가 살아 있을 아내와 부모님만 생각하면 알 수 없는 힘이 솟아났습니다. 오직 가족을 보겠다는 일념으로 하루하루를 버티던 그는 결국 살아남아 자유를 얻게 됩니다.그러나 안타깝게도 그의 아내와 부모는 모두 세상을 떠나고 없었습니다.

미군에 의해 1945년 해방을 얻은 후 죽음의 수용소에서라는 책을 출판하여 존재의 의미의 중요성과 살아갈 의미 찾아가는 소중한 책을 세상에 남겼습니다.

 

그렇습니다. 삶의 의미를 끊임없이 되묻는 사람들은 삶의 의욕을 절대 잃지 않습니다. 어떤 고통과 시련도 견뎌낼 수 있습니다.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고 말한,

세상에 젖어버린 라오디게아교회 문밖에 서 계신 분이 있습니다.

바로 나 때문에 십자가 지신 주 예수입니다.

 

주님은 여전히 그들을 사랑하고 계십니다. 그들에게 온전히 들어가시고 싶으신 겁니다. 보세요~

3:19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3:20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여러분! 20절 말씀을 잘 보세요.

십자가 지신 예수께서 문밖에와 계십니다.

문안에 있는 그 어떤 이가 예수님을 초청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그의 문밖에 서서 계십니다. 이는 예수님의 전적인 은혜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십자가 지신 예수께서 문밖에 서서계십니다.

서서 έστηκα’(헤스테카) -이 단어는 현재완료 시제로, 곧 서서 계심이 오래되었고 지금도 계속 서 계신 상태를 표시합니다. 주님은 우발적으로 우리에게 찾아오신 것이 아닙니다. 인내를 가지시고 서서 계신 것입니다.

 

십자가 지신 예수께서 문을 두드리고계십니다.

두드리노니 κρούω’(크류오) - 이는 현재 시제로, 지금 현재 상태를 표현합니다.

주님은 이제는 문이 열려야 할 것으로 알고 지금 두드리고 계십니다.

굳게 닫혀 있는 문 안에서 내가 문을 열 수 있는 비결은 단 한 가지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말씀이 내게 임할 때 주신 믿음이라는 것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문을 여는 방법이 왜 믿음이어야 합니까?

돈이 있는 자는 돈의 힘으로 열고, 권력이 있는 자는 권력의 힘으로 열고, 공로가 있는 사람은 공로로 열게 된다면 어찌 예수께서 구원의 비밀을 가지고 오셨겠습니까?

돈으로 문을 열고, 권력으로 문을 열고, 자기 공로로 문을 연다면 천국에 모이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이겠습니까? 하나님은 그런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믿음이란 모든 사람에게 열려져 있는 은혜로운 선택의 기회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문밖에 서서 떠나실 줄 모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끊임없는 사랑 때문입니다.

 

혹이라도 이 세상에서 문이 안 열린다고 원망하고 계시지는 않으신가요?

내게 주시는 믿음의 문이 열리면 나의 인생을 바꾸시는 분은 나의 주님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오랫동안 마음의 빗장을 질러놓은 것을 뺄 수 있는 결단은 바로 나 자신에게 있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말입니다.!

 

여러분!

라오디게아교회는 물질우상이 가득한 현대교회를 매우 닮은 예고편과 같습니다.


부유한 국가일수록 교회당이 비어있습니다. 신앙의 열심을 낼 필요성을 상실하고 하나님의 책망에 대한 긴장을 잃고 있습니다. 배가 부르면 밥맛이 없습니다. 배부르다고 느껴질 때는 배부름을 비워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더 중요한 것을 잃게 됩니다. 바로 영적인 부요를 잃게 됩니다.

 

이야기 하나 들어보세요~

호주 시드니에 사는 교민이 고국을 다녀가는 길에 개나리 가지를 꺾어다가 자기 집 앞마당에 옮겨 심었습니다. 이듬해 봄이 되었습니다. 맑은 공기와 좋은 햇볕 덕에 가지와 잎은 한국에서 보다 무성하게 자랐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꽃은 피지 않았습니다. 첫해라 그런가보다 여겼지만 2년째에도, 3년째에도 꽃은 피지 않았습니다.

원인을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한국처럼 혹한의 겨울이 없는 호주에서는 개나리꽃이 아예 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사시사철 온화한 날씨가 아닌 혹독한 추위를 거쳐야만 꽃이 피는 것을 전문용어로 '춘화현상'이라 합니다. 이에는 튤립, 히아신스, 백합, 라일락, 철쭉, 진달래 등이 모두 여기에 속합니다.

인생은 마치 춘화현상과 같습니다. 화려한 인생의 꽃들도 고통과 역경을 거친 뒤에야 피는 법입니다. 봄에 파종하는 봄보리에 비해 가을에 파종하여 겨울을 나는 가을보리의 수확이 훨씬 더 많고 맛도 좋습니다. 인생의 열매는 마치 가을보리와 같아, 추운 겨울을 거치면서 더욱 풍성하고 견실해집니다. 영어로 열정‘passion’이지만 또 다른 의미로 고난이라는 뜻도 함께 갖고 있습니다. 고난을 겪음으로 진정한 열정이 탄생하는 것입니다.

겨울을 견디는 소나무는 프롤린, 베타인 같은 아미노산과 수크로우스 같은 당분을 세포에 저장한다고 합니다. 된서리 맞은 늦가을 배추가 달고 고소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노지에서 혹한을 견딘 봄동 배추겉절이가 더욱 달콤합니다.

 

부유하여 부족함이 없다고 말한 라오디게아교회는

오히려 주님으로부터 벌거벗었음을 책망받았습니다.


그렇습니다.

한 번도 아픈 적이 없고 아무런 고통과 어려움도 겪지 않았다면 굉장히 무의미한 삶, 매우 피상적인 삶으로 일생을 마칠 가능성이 높습니다. 무엇이 행복인지 무엇이 고통인지 삶의 진정한 맛을 모르며 무감각하게 세상에 취해서 살아갈 가능성이 높습니다.

아픔을 겪어야 인간다운 인간이 됩니다. 깨지고, 넘어지고, 버림받는 피눈물을 흘리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공감할 수 있는 능력과 감사하는 마음도 그만큼 성장하게 됩니다. 세상에 걱정도 없고, 아픔도 없고, 역경도 없는 행운 속에는 오히려 예상치 못한 절망과 무의미의 싹이 소리 없이 자라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리더십 저술가이며 목사인 존 맥스웰(1947~)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생각을 제대로 변화시킬 때만 다른 것들이 제대로 나타나기 시작한다.”

그렇습니다. 내가 변화받을 때, 내가 보지 못했던 것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18절 말씀 함께 다시 담겠습니다.

3:18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성도 여러분!

이렇게 세상의 금이 아닌, 연단된 믿음의 금을 사고,

세상의 옷으로 위장된 삶이 아닌, 주님의 은혜와 속죄의 흰옷을 입고,

세상에 치우쳤던 육적인 안목을 영적인 안목으로 고침을 받기 위하여

십자가 지신 주 예수께서 제조하신 말씀의 안약을 사서 바르고,

세상을 이기는 자에게 주신 초청장이 있습니다.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며,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주님이 주신 초청장입니다.

 

3:21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이 놀라운 초청장에 주님의 은혜와 사랑에 감격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주님의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시는 초청장입니다. 더 이상의 초청장이 없을 것입니다.

 

다같이 고백하며 말씀을 닫겠습니다.

주께서 세상에 젖었던 나를 이렇게 초청해주셨습니다!

 

<축도후 영상>

 

세상의 금이 아닌,

연단된 <믿음의 금>을 사고,

세상의 옷으로 위장된 삶이 아닌,

주님의 은혜와 <속죄의 흰옷>을 입고,

세상에 젖었던 육적인 안목을 <영적인 안목>으로 고침을 받기 위하여

십자가 지신 주 예수께서 제조하신 <말씀의 안약>을 바르고,

세상을 이기는 자에게 주신

주님의 보좌에 함께 앉는 <놀라운 초청장>을 받았습니다.

 

내가 그것 때문에 십자가를! 요한계시록3:14-22  

?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397 수요예배 [28]네 가지 밭의 비유 한봉희 2020.08.02 3285
396 주일낮예배 게르솜과 엘리에셀 한봉희 2020.11.22 1460
395 주일낮예배 앞서가시는 하나님/온라인예배 한봉희 2020.12.19 1197
394 수요예배 [35]부자 청년의 근심 한봉희 2020.11.22 1087
393 주일낮예배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온라인예배) 한봉희 2020.08.22 921
392 절기예배 (송구영신예배)마침내 네게 복을! 한봉희 2020.01.01 901
391 주일낮예배 대속의 시작 (온라인주일예배) 2 한봉희 2020.02.29 851
390 주일낮예배 희망의 노크 소리(예배당 및 온라인예배) 한봉희 2020.04.12 820
389 주일낮예배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법 한봉희 2021.04.17 763
388 주일낮예배 다니엘의 기도(온라인주일예배) 한봉희 2020.04.04 712
387 주일낮예배 하나님께 잡힌 사람_삼갈 한봉희 2020.06.28 707
386 주일낮예배 누구의 지팡이인가? (온라인예배) 1 한봉희 2020.08.29 700
385 주일낮예배 지금은 깨달음의 시기(온라인주일예배) 1 한봉희 2020.03.07 697
384 절기예배 (성탄절)궁전이 된 마굿간! 한봉희 2020.12.24 696
383 주일낮예배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한봉희 2020.07.19 682
382 주일낮예배 세상에 속지 맙시다!(온라인예배) 한봉희 2020.09.12 652
381 주일낮예배 제사장 나라_거룩한 백성 한봉희 2020.11.29 633
380 주일낮예배 주여! 어찌하여~(온라인예배) 1 한봉희 2020.09.05 627
379 주일낮예배 그리스도의 인내로! 한봉희 2020.02.23 620
378 주일낮예배 우리에게 구하시는 하나님(온라인주일예배) 1 한봉희 2020.03.21 615
377 주일낮예배 다시 죽어야 삽니다(온라인주일예배) 1 한봉희 2020.03.14 611
376 주일낮예배 하나님의 구원과 출애굽기 한봉희 2020.08.09 610
375 주일낮예배 하나님이 설계하신 가정 한봉희 2020.05.10 604
374 주일낮예배 “이루는 인생”의 모토(motto) 한봉희 2021.10.09 597
373 주일낮예배 하나님의 길목 - 고난! 한봉희 2020.08.16 593
372 주일낮예배 하나님께 인도받는 사람(온라인예배) 한봉희 2020.10.03 569
371 주일낮예배 하나님이 시작하십니다(온라인예배) 한봉희 2020.09.26 569
370 주일낮예배 너의 존재원인을 물으라(온라인예배) 한봉희 2020.09.19 559
369 주일낮예배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 한봉희 2021.11.27 545
368 절기예배 (송구영신예배)정체성을 찾아가는 여정 한봉희 2021.01.01 538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14 Next
/ 14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