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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낮예배
2023.01.07 21:35

한 몸으로 영적 예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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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한봉희목사
설교일 2023-1-8낮
본문말씀 로마서12:1-5


한 몸으로 영적 예배를! / 로마서12:1-5


오늘 예배의 자리에 몸으로 함께하신 성도 여러분 위에 

성령충만, 말씀충만, 찬송충만, 기도충만, 나눔충만, 치유충만의 역사로 가득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말씀을 바르게 듣기 위해서는~

먼저 개인주의는 무엇이고, 전체주의는 무엇인지에 대한 설명이 필요합니다.

 

세상은 두 가지 위험한 상태로 빠져 있습니다.

바로 개인주의와 전체주의가 서로 부딪히는 것입니다.

 

그러면, 개인주의는 무엇입니까?


개인주의는 인간의 존엄, 개인의 독자성과 자율성, 창의성, 자기책임성 등을 핵심으로 하는 가치 체계입니다. 개인을 목적 자체로 보고 자신의 견해가 자신의 행동을 지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개인주의자는 자신의 목표와 욕망을 행사하는 것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기고, 개인의 이익이 국가나 사회집단보다 우선시 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들은 사회나 정부 기관 같은 외부 요소들이 개인의 행동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에 반대합니다. 개인주의는 전체주의, 집단주의, 권위주의, 공동체주의, 국가주의, 세계시민주의, 부족주의 등에 대조되는 것으로서 정의되기도 합니다.

 

현대의 수정된 개인주의는 공동체주의와 완전히 대립각을 세우지는 않습니다. 현대에 흔히 언급되는 개인주의는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도 개인의 자유와 개성을 누릴 수 있고 개인의 완성은 공동체를 떠나서는 성립할 수 없다는 인식을 바탕에 두고 있습니다.

 

개인주의에 대한 가장 일반적인 비판은 이기주의로 변질되기 쉽다는 것과 자본주의의 어두운 면이 나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집단 이기주의는 그 주체가 개인이 아니라 마을이나 사회 같은 집단으로 바뀐 것 뿐입니다. 거기에 이런 집단 이기주의는 개인 이기주의보다 영향력이 강해서 조직적 행동에 의해 국가의 위기를 초래하고 심지어 대학살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개인주의는 2010년대 이후 점점 확산되었습니다. 시대가 흐르면서 인간관계에 얽매이지 않고 개인의 자유를 추구하는 성향이 강해지고, 혼자 즐길 수 있는 취미(게임, 애니메이션, 인터넷 커뮤니티 등)가 발달했습니다. 그래서 나홀로족, 비연애, 비혼,혼 등의 표현이 등장했으며, 특히 2020년대 들어 코로나19의 유행으로 개인주의 성향이 더욱 강해졌습니다.

젊은층 청소년세대와 MZ세대 이에 상충하는 기성세대 간의 세대 차, 세대 갈등을 유발하는 가장 큰 원인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젊은층은 매우 외향적인 성격이 아닌 이상, 대부분 개인주의 성향을 가졌지만, 기성세대는 남을 의식하는 공동체주의 생활에 익숙하므로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충돌하는 것입니다. 특히 명절에 친척들이 모였을 때 친척 어르신들의 과도한 관심에 불편을 느끼는 젊은이들이 많은 것입니다.

 

이러한 개인주의의 성향은 생활 속에서 이렇게 나타나곤 합니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

최소한의 선을 지키며 눈치 보는 삶과 멀어지려고 한다.

남의 시선에 잘  신경쓰지 않는다. 

남들에게 예의를 지킨다.

사교활동을 즐기지 않고, 사적 모임을 최소화한다.

사람들과 깊은 관계를 맺는 것보다는 일정한 거리를 두는 것을 선호한다.

자신을 좀처럼 드러내지 않고, 타인에게 큰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나에게 주어진 일만 하되, 남한테 피해가 없도록 완벽하게 처리한다

대부분 내향적이다.

개인적 공간(퍼스널 스페이스)에 민감하다.

사생활 침해, 오지랖, 간섭을 매우 싫어한다.


이러한 개인주의에 어떻게 복음이 들어갈 것인가 물음을 잠시 뒤로 넘겨놓고요~

 

그렇다면, 전체주의는 무엇입니까?

 

전체주의는 1차세대전과 경제대공황으로 세상이 어지러운 상황 속에서 나타났습니다. 개인으로 해결되지 않는 상황을 보게 된 사람들이 국가에 모든 것을 하나로 통합시키고, 개인의 모든 활동에 대한 간섭과 경제, 사회, 정치적 통제를 통해 국가의 힘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개인의 이익보다 집단의 이익을 강조하여 집권자의 정치 권력이 국민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생활의 모든 영역에 걸쳐 전면적이고 실질적인 통제를 가하는 것을 말합니다. 전체 이외 것은 존재하지 않으므로 자유로운 개인이라는 개념 자체를 소거시켜 버립니다. 이러한 전체주의 사상은 개인의 자유와 목숨까지 억압하게 됩니다.


가장 큰 문제는 전체주의가 인간의 존엄성을 완전히 박탈시켜 인간을 명령만 내리면 듣고 생각은 하지 않는 도구로 만든다는 것입니다. 전체주의는 개인보다 사회를 강조하면서도 오히려 구성원들은 고독을 느끼게 됩니다. 모든 국민들이 의심 없이 국가를 따르는 게 목표인 전체주의에서는 다른 생각을 가진 이들은 처결해야 할 ''이며, 이들을 제거하기 위해 정치경찰을 만들고 감시하게 됩니다. 이러한 정치경찰은 국민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며 국민들에게 서로가 수상한 짓을 하는지 안 하는지 감시하도록 해 이웃, 가족까지 서로 의심하게 만듭니다. 이런 식으로 무력해진 개인은 정체성을 상실하고 국가의 명령을 따르는 충실한 노예가 되는 것입니다. 대표적인 예가 나치 치하의 독일인들이나, 굶어 죽어가면서도 저항할 수 없는 대다수 북한 주민들을 들 수 있습니다.


전체주의에서 인간은 아무런 가치가 없습니다. 그냥 하루하루 체제의 지도자가 명령하는 대로 '작동'하는 기계일 뿐입니다.

또한 국가 통합을 위해 모든 다양성과 사고력과 창의성을 말살했기 때문에 창의성이 필요한 모든 부문에 대해 다른 국가와의 경쟁에서 패하고 도태될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창의성이 없어졌기 때문에 싱크탱크 같은 첨단 기술기관이 인정을 못 받는 경우가 많고, 그 결과 나라에 필요한 인재를 밖으로 다 빼앗기게 됩니다. 정권유지를 위해 자국민 대상으로 지독한 통제정책들을 시행하는 중국이 자기 체급의 1/9밖에 안되는 한국에게조차 창의력이 필요한 문화적 영향력에서 밀리는 사례는 유명한 일이 되었습니다.

 

개인주의와 전체주의의 태동을 이렇게 표현한 것도 있습니다.

밀 농사 문화와 쌀 농사 문화가 개인주의와 전체주의의 차이를 낳았다는 연구가 있습니다. 미국 버지니아 대학교 사이언스 지의 발표에 따르면 쌀농사는 농경지에 물을 대주는 관개시설을 필요로 하는데 이는 대규모의 토목 공사가 이루어지고 이렇게 얻은 수자원을 공동으로 사용하는 과정에서 사회적 협조가 필요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관개시설을 구축하기 위해 공동의 노동력이 필요하고, 관개시설 주변에 많은 인구가 모여 살게 되기 때문에 자연스레 공동체 문화로 발전했다는 겁니다. 반면 밀은 맨땅에서 자라는 작물로 그런 관개 시설이 필요 없으므로 공동체 형성이 더뎠고 개인주의적인 생활 양식이 자리 잡게 되었다는 겁니다.

 

이탈리아의 전체주의 통치자 무솔리니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모든 것은 국가에 있으며, 국가 외에는 어떤 것도 없으며, 국가에 반대하는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수많은 유태인을 학살한 아돌프 히틀러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삶이란 뭐요? 삶이란 곧 국가요. 개인은 국가를 위해 어떻게든 희생해야 하지 않겠소?”

 

이에 반하여 1933년 미국의 대통령이었던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말했습니다.

몇몇 개별 통치자로 하여금 모든 인간의 획일화에 기반을 둔 정부체계를 만들려는 사람들은 이것을 '새 질서'라고 부른다. (허나) 이것은 새롭지 않고, '질서'도 아니다.”

 

또한 아인슈타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국가가 사람을 위해 만들어졌지, 사람이 국가를 위해 만들어지지 않았다.”

 

, 개인은 전체를 떠날 수 없고, 전체는 개인이 없이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 두 가지, 개인과 전체의 서로 다른 가치는 이 세상의 사상이나 가치관이나 정치력으로 인간이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위한 이상적인 답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개인의 자유와 사고력과 창의성을 존중하는 개인주의와 국가의 힘, 강력한 경찰력과 군사력, 단체행동 등을 통해 힘을 유지하려고 하는 전체주의가 부딪히는 이 세상의 고통과 갈등 속에서 하나님의 구원은 어떻게 나타났습니까?

 

오늘 말씀을 듣고자 하는 목적입니다.

 

2023년 교회표어를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복음의 사람! 그리스도의 몸으로 예배하게 하소서.”

 

바로 여기서 개인주의도 전체주의도 아닌, 그리스도의 몸으로 이루어가는 예배 공동체 속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구원의 마스터키를 받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에, 오늘 성경 본문에서 주시는 말씀을 듣겠습니다.

 

1. 인간은 권력자가 아닌 창조주 하나님께 <예배하는 존재>입니다.

이는 우리 인간 존재의 원인과 목적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12:1절입니다.

12:1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거룩한 산 제물

인간은 내 것으로 살지 않고 하나님이 지으신 존재임을 알 때 비로소 정체성을 발견합니다.


너희 몸을.....드리라

특히 몸으로 드리는 예배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즘 온라인으로 구매하고, 카톡 같은 네트워크가 일반화되면서 몸으로 함께하는 것이 많이 축소되고 있습니다. 인간에게 몸이 필요없었다면, 천사와 같은 영적인 존재로만 창조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을 영과 육이 함께함으로 인간이 되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영원한 하늘나라를 가도 마찬가지입니다. 시공간을 넘어선 영화로운 몸을 가진 존재로 영생하게 됩니다.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실 때에도 몸을 입고 오셨습니다.

기독교 신앙의 핵심에는 몸이 있습니다. 몸 이야기는 뒷부분에서 전하겠습니다.

 

2. 지금은 지구촌의 위기와 함께 교회의 위기에 놓여있습니다.

이는 이 위기가 <새로운 변화>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 위기는 지금이 변화의 시기를 말할 때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문명은 놀라운 발전을 가져왔습니다. 하지만, 이로 인한 인간의 위기도 함께 증폭되었습니다. 자연파괴와 기후재앙의 문제, 전세계 일일생활권이 되면서 오는 전염병의 급속한 확산의 문제, 로봇과 AI지능에 빼앗긴 인간성의 고갈과 신성한 노동가치의 몰락, 그리고 인간의 교만과 자만과 불신앙의 문제가 그것입니다.

 

이에 오늘 본문말씀에 귀를 기울입니다.

12: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인간의 위기는 하나님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기회입니다.

가장 큰 위기는 마음의 위기입니다.

하나님의 거실이 되어야 할 마음에 인간의 온갖 탐심과 유혹과 불만과 악한 마음으로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다시금 하나님께 거실을 내어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으로, 하나님의 기뻐하심으로,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으로 인생항로를 재수정해야 합니다.

 

코로나나 끝나면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가는 것이 회복이 아닙니다.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이 회복입니다. 아멘!!

 

3. 다시금 이 고백이 필요합니다.

모든 것이 사랑의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혜와 믿음으로 되는 삶이다.”

 

3절입니다.

12:3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우리가 꼭 새겨 담고 있어야 할 최소한 두 절의 말씀이 있지 않나요?

고전 15:10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사랑의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내어주신,

이 은혜와 믿음은 인간을 하나님이 뜻하시고 지으신 인간으로 변화시키는 영적인 요소입니다.

이 은혜와 믿음을 개인주의나 전체주의로 대신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제 비로소 여기!


4. 개인주의도 아니고, 전체주의도 아닌 해답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는 것입니다.

 

45절 말씀입니다.

12:4 우리가 한 몸에 많은 지체를 가졌으나 모든 지체가 같은 기능을 가진 것이 아니니

12:5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

 

여기에는 각 지체가 서로 연결되어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이른바 <교회>라고 불리는 새로운 공동체가 있음을 주께서 세상에 보이셨습니다.

 

성경에는 교회라는 단어가 무려 116번이나 나오고 있습니다.

 

1:23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

고전 12:27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

1:18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시라....
5:32 이 비밀이 크도다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그렇습니다. 그냥 건물이 서 있는 교회가 아닙니다.

바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고, 하나님의 백성을 훈련하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자신을 넘어 남을 섬기며 서로가 지체가 되는 삶을 살게하기 위해서 그리스도의 몸으로 부름받은 공동체입니다. 이것은 온라인예배로서 이루어질 수 없는 서로 지체가 되는 공동체의 삶을 구현하는 것입니다.

 

한 몸에 서로 지체가 된다는 것은?

1)홀로 존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몸의 어떤 기관이라도 홀로 있을 수 없습니다.

2)서로를 위해 몸으로 섬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3)서로 연결되어서 형제와 자매로서 교제를 한다는 것입니다.

4)그 어느 것 하나도 소홀히 여길 수 없는 지체입니다.

콧구멍 하나가 막히면 얼마나 답답한 줄 아시죠. 콧구멍 두 개가 서로 3~4시간 간격으로 임무 교대를 하면서 번갈아 일하고 번갈아 쉽니다.

 

한 몸 공동체, 교회로 함께하시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으로 세우셨습니다.

 

금년 표어 다시금 새겨 담으시기 바랍니다.

복음의 사람! 그리스도의 몸으로 예배하게 하소서.

금년에는 몸 공동체로서 예배하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정리합니다

 

1. 인간은 권력자가 아닌 창조주 하나님께 <예배하는 존재>입니다.

이는 우리 인간 존재의 원인과 목적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2. 지금은 지구촌의 위기와 함께 교회의 위기에 놓여있습니다.

이는 이 위기가 <새로운 변화>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3. 다시금 이 고백이 필요합니다.

모든 것이 사랑의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혜와 믿음>으로 되는 삶이다.”

 

4. 개인주의도 아니고, 전체주의도 아닌 해답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는 것>입니다.

 

<교회>라고 불리는 새로운 몸 공동체가 있음을 주께서 세상에 보이셨습니다.

몸 공동체로서 예배하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거듭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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