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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낮예배
2022.10.01 19:45

땅을 기업으로 받는 성품_온유와 겸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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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한봉희목사
설교일 2022-10-2낮
본문말씀 마태복음 5:5


땅을 기업으로 받는 성품_온유와 겸손 / 마태복음 5:5


5:5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인생을 살아가면서 보면, 자신의 기도가 바뀌고 있는 것을 스스로 알게 됩니다.

젊은 청년의 때는 이렇게 기도했지요. “주여, 내가 사는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을 주소서.”

중년이 되었을 때는 이랬지요. “주여,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을 변화되는 것을 보게 하소서.”

그리고 나이가 들어서는 이렇게 기도합니다.

주여, 여전히 부족한 나를 주님을 닮아가는 성품으로 고쳐 주소서.”

 

나이가 들어 인생을 돌아볼 때쯤이면,

내가 어떤 일을 했는가에 대하여 돌아보는 것이 아니라, 나는 평생에 어떤 사람으로 변화되었는가를 보게 됩니다.

 

우리는 지난 몇 주에 걸쳐서 주께서 보이신 성품이 내게 임하게 하자는 말씀을 듣고 있습니다. 지난 주일은 의에 주린 자의 성품에 대하여 담았습니다. 의에 주린 자의 성품의 정상에는 주님의 십자가가 있음을 보았습니다.

 

오늘은 주님의 성품, 온유와 겸손을 배우고 우리 안에 담아야 하겠습니다.

 

온유함이란? ()아나우 자기를 낮춤, 괴롭힘을 당함, 겸손함을 뜻합니다. ()프라우스 온순함, 겸손함을 뜻합니다. 온유와 겸손은 같은 성품의 뿌리를 갖고 있습니다. 이에 온유함과 겸손함은 한 배에서 나온 쌍둥이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겸손은 스스로 낮추는 마음이고, 온유는 스스로 높이지 않는 마음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에는 여유로운 순종함이 함께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이 세상의 모든 존재를 명하여 지으신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죄와 사망에서 건져내신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뿐만 아니라, 온 세상을 다스리시는 최고 주권자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여기 놀랍고도 은혜로운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은 온유하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온유한 자신의 성품을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감당할 사람에게 넣어주십니다.

온유한 성품은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고백하고 성령께서 내 안에 내주하심으로 나타나는 성령의 열매로서 이른바 후천적인 성품입니다.

 

양치기 목동 다윗이 어떻게 이스라엘의 가장 존경받는 왕으로 칭송받게 되었는가 하는 데에는 이러한 비밀이 있습니다. 바로 다윗이 체험하고 고백한 그의 노래에 담겨 있습니다.

그 노래는 하나님이 모든 원수의 손과 사울의 손에서 다윗을 구원하신 그날에, 다윗이 부른 찬송으로 사무엘하 23장과 시편 18에 똑같이 담겨 있습니다. 그중에 핵심이 되는 구절은 이겁니다.

 

삼하 22:36 주께서 또 주의 구원의 방패를 내게 주시며 주의 온유함이 나를 크게 하셨나이다

삼하 22:37 내 걸음을 넓게 하셨고 내 발이 미끄러지지 아니하게 하셨나이다

 

18:35 또 주께서 주의 구원하는 방패를 내게 주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들고 주의 온유함이 나를 크게 하셨나이다

18:36 내 걸음을 넓게 하셨고 나를 실족하지 않게 하셨나이다

 

더하여 다윗은 시편 25:9에서 이렇게 기도합니다.

25:9 온유한 자를 정의로 지도하심이여 온유한 자에게 그의 도를 가르치시리로다

온유한 자가 하나님의 의로 인도받고, 하나님의 뜻하신 대로 가르침을 받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실제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셔서 은혜와 진리로 인생을 구원하신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큰 구원을 온유와 겸손이라는 성품에 담아 가지고 오셨습니다.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11: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성도 여러분~ 이 사실을 알고 계십니다.

칼을 든 나폴레옹은 한 시대의 그늘 속으로 사라졌지만, 온유와 겸손의 본으로 오신 예수님은 세상 땅끝까지, 그리고 세상 끝날까지 그 복음의 권세를 변함없이 끼치고 계십니다.

보세요.  죽음까지 받아들인 십자가는 칼을 이기고 세상을 구원합니다. 칼을 쓰는 자는 망하고 십자가를 지는 자는 땅을 정복합니다.

십자가는 온전히 순종하신 주님의 온유와 겸손함으로 만들어졌습니다. 그리고 그 머리에 쓰신 가시관은 온 세상을 생명의 복음으로 다스리시는 왕관이 되셨습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십니다.

5:5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그렇습니다.


온유하고 겸손한 자에게

하나님의 의와 구원을 이루어야 할 땅을 맡겨주시는 것입니다.

 

다윗이 먼저 이를 찬송했습니다.

37:11 그러나 온유한 자들은 땅을 차지하며 풍성한 화평으로 즐거워하리로다

37:18 여호와께서 온전한 자의 날을 아시나니 그들의 기업은 영원하리로다

 

다윗은 온유한 자를 놀랍게도 온전한 자로 표현했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맡겨주신 기업, 곧 하나님으로부터 상속받은 것을 영원히 지키신다 하였습니다.

 

여기서 땅을 차지한다는 것은 무엇을 뜻합니까?


내가 소유하는 땅이 아닙니다.

나를 통해서 하나님의 기업이 되어야 할 땅을 말합니다.

부동산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그 뜻이 실현되는 세계를 의미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임해야 하는 땅인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바로 이 온유함으로 세상을 정복하셨습니다.

온유는 세계를 정복하는 원리입니다. 세상의 역사가 실제로 이를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 땅에 살고있는 짐승들을 보세요. 유순한 동물들은 많이 살아남았지만, 힘있고 포악한 동물들은 너무나 많이 사라졌습니다. 호랑이가 토끼를 보는 대로 잡아 먹지만 이상하게 토끼는 많아도 호랑이는 점점 멸종되고 있습니다. 원래 이리와 개는 한 종류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개는 사람에게 길들여져서 유순한 짐승이 되었습니다. 포악한 이리는 숨어다녀야 했고, 유순한 개는 온 세상 사람 곁에 함께 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온유한 자는 복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 온유함을 잃은 세상은 안타깝게도 인간의 욕심과 거짓과 불의함으로 인하여 복을 잃고 저주받은 땅이 되고 있습니다. 희망은 절망이 되고, 기쁨은 슬픔이 되고, 평화는 분열이 되고, 사랑은 증오가 되고 말았습니다.

러시아 푸틴은 전쟁을 일으켜 땅을 넓히고 자신의 통치권이 닿는 입지를 구축하려고 하지만, 결국은 자기 발등에 도끼를 찍고 수많은 사람을 사지로 몰아넣고, 온 세상에 고통을 주고 있습니다.

 

조신영씨가 출간했던 책 경청에서 한 노인이 던지는 말이 있습니다.

이보시게, 내가 주는 물맛을 보려면 먼저 자기 잔을 비워야 하지 않겠나? 이미 가지고 있는 고정된 생각을 버리시게나. 이 잔이 쓸모가 있는 이유는 뭔가? 그것은 잔이 비워져 있기 때문일 걸세. 기억하시게. 남의 말을 들으려면 먼저 자신의 마음을 비워야 한다는 것을. 그것이 세상의 도리요, 자연의 이치라네.”(126)

 

그렇습니다.

예수께서는 천상의 보좌를 비우시고, 비우신 자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와 함께하실 수가 있으셨습니다.

 

주님의 성품은 하나같이 모든 것을 담을 수 있는 넓고 큰 그릇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예수께서 보이신 온유와 겸손의 성품은 이 세상의 모든 죄인과 그 무거운 짐을 다 감당하실 만큼의 큰 그릇입니다.

 

오래전에 어느 선교사가 인도에서 경험할 수 있었던 일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그들로부터 박해를 받았을 때, 선교사들은 종종 그들의 사정을 법에 호소하였습니다. 이렇게 해서 그리스도인들이 소송에서 이기고 나면, 더 이상 말썽 없이 이웃과 지낼 수 있었습니다. 잘된 일이었을까요? 그 이후로 그 마을에 살고 있는 힌두교도들은 한 사람도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승리는 그 후로 60년 동안 아무도 넘을 수 없는 장벽을 만들어 놓았던 것입니다. 이긴 것 같았지만, 오히려 그들이 그리스도께로 돌아오게 할 수 있는 기회를 함께 잃어버린 것이었습니다. 곧 선교사들이 왜 그곳에 갔는가? 그 목적까지 상실하게 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 땅을 잃은 것입니다.

 

평화의 가족 여러분!

 

온유한 아내는 남편을 땅으로 얻습니다. 온유한 남편은 아내를 땅으로 얻습니다. 온유한 부모는 자녀를 땅으로, 온유한 자녀는 부모를 땅으로 얻습니다. 온유한 가정은 하나님으로부터의 복과 사명을 기업으로 얻습니다.

 

그렇습니다.

온유한 성품, 이는 자신보다 휠씬 더 크고 위대한 존재 앞에,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순전히 내려놓고 잠잠히 그분의 뜻을 따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온유함은 결코 약함이 아니라, 진정 하나님의 능력이 내 안에 임재하는 것입니다. 온유함은 하나님의 나라의 놀라운 구원을 이루는 큰 그릇인 것입니다.

 

이에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이렇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고전 13:4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4:2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그리고 사도 베드로는 이 온유함의 가치를 이렇게 전하고 있습니다.

벧전 3:4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

 

하나님의 자녀 여러분!

하나님은 새 하늘과 새 땅의 예표하고 할 수 있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가나안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을 들이고자 하실 때, 어떤 사람을 들어 쓰셨습니까?

바로 온유한 사람 모세입니다.

12:3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더라

 

처음부터 모세가 온유한 자로서 칭찬을 듣는 자는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연단을 통해서 그를 온유한 자로 만드셨습니다. 본래 모세는 왕궁의 권세를 가진 자였습니다. 하나님의 일도 그 힘으로 다 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를 왕궁에서 떠나게 하시고, 광야에서 먼저 40년간 그의 겉옷을 벗겨내셨습니다. 그리고 그의 나이 80세에 그를 부르셨습니다.

 

여러분~ 산을 덮고 있는 꽃은 장미꽃입니까? 아니면 들꽃입니까?

 

유안진 씨의 들꽃 언덕에서라는 시 한 편입니다.

 

들꽃 언덕에서 알았다

값비싼 화초는 사람이 키우고

값없는 들꽃은 하나님이 키우시는 것을

 

그래서 들꽃 향기는 하늘의 향기인 것을

 

그래서 하늘의 눈금과 땅의 눈금은

언제나 다르고 달라야 한다는 것도

들꽃 언덕에서 알았다

 

그러네요~ 겸손하게 피어나는 들꽃이 산야를 차지합니다.

큰 산이 들꽃을 품어주듯이, 하나님은 온유하고 겸손한 자를 큰 은혜의 방패로 지켜주십니다.

 

여기 스바냐서에서 전하는 말씀이 큰 은혜가 됩니다.

2:3 여호와의 규례를 지키는 세상의 모든 겸손한 자들아

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며 공의와 겸손을 구하라

너희가 혹시 여호와의 분노의 날에 숨김을 얻으리라

 

온유와 겸손은 세상의 심판을 이기고 주님의 은혜를 자랑합니다.

하지만 교만한 자는 더 교만한 공중권세잡은 자, 사탄에게 그의 생명과 모든 것을 빼앗깁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온유와 겸손은

예수께서 친히 보이신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예수께서는 바로 이 온유함으로 세상을 정복하셨습니다.

온유와 겸손은 칼을 이기고 세계를 정복합니다.

온유와 겸손은 하나님의 나라의 놀라운 구원을 이루는 큰 그릇입니다.

 

산을 덮고 있는 꽃은 장미꽃이 아니라, 들꽃입니다.

큰 산이 들꽃을 품어주듯이,

하나님은 온유하고 겸손한 자를 큰 은혜의 방패로 지켜주십니다.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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