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잃어버린 은전의 비유
누가복음 15:8-10
지난주 기도 / 목자되신 주여! 여기 주님이 찾아내신 한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도 길 잃은 자를 찾아내는 한 사람이
되게 하소서. 그리고 하나님 아버지의 집,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함께 크게 즐거워하게 하소서. 아멘!
누가복음 15장에서는 예수께서 잃은 양 하나를 찾는 비유, 잃은 아들의 비유, 잃어버린 은전의 비유를 말씀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잃어버린 은전 한 개의 비유에는 독특한 것이 있다.
길 잃은 양은 목자와 관계없이 자기 스스로 다른 길로 가다가 길을 잃었다. 집을 나간 아들 곧 탕자 역시 자기의 생각대로 집을 떠나 살다가 계획대로 되지 못하고 돼지우리 곁에서 슬피 울고 있었다.
그러나 잃어버린 은전 한 개는 자기 스스로 생각할 수도 없는 이른바 자신의 의지로 잃은 돈이 되지 않았다. 주인이 어떻게 하다가 잃어버렸다. 때로는 주인이 모르는 사이에 분실하고 말았다.
이에 이 잃어버린 은전의 비유에서 가르치는 독특한 교훈을 듣기로 하자.
1. (내가) 잃어버린 은전이다!
눅 15:8 어떤 여자가 열 드라크마가 있는데 (하나)를 잃으면
등불을 켜고 집을 쓸며 찾아내기까지 부지런히 찾지 아니하겠느냐
누구나 물건을 잃어버리고 열이 오르도록 찾아보신 경험이 있지 않은가?
잃어버린 은전은 스스로 잃어버려진 것이 아니다. (내가) 잃어버린 은전이다.
잃어버려진 은전은 스스로 그 주인에게로 돌아갈 수 없다. 반드시 은전 주인이 찾아내야 한다.
(내가) 잃어버렸기 때문에 (내가) 찾아야 한다.
하나의 은전도 빠져서는 안 되는 이 은전 열 개의 의미는 중요하다.
당시 풍습에서 혼인한 여인의 표시로서 은사슬에 열 개의 은전을 꿰어서 머리 장식으로 삼는 풍습이 있었다. 남편이 준 사랑의 증표로서 결혼반지와 같은 성격으로 매우 소중한 것이었다. 많은 빚을 지고 갚아야 할 경우에도 이 은전 열 개의 머리 장식만은 차압할 수 없었다.
그 잃어버린 하나의 은전은 다른 것으로 대치될 수 없었다. 신랑이 준 (사랑)의 표시이기 때문이다. 이 잃은 은전의 비유에는 신부 교회의 신랑으로 주님의 깊은 마음이 담겨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떠난 인간들에 대하여 근본적으로 책임이 없으시다. 그런데도 먼저 하나님께서 우리를 찾으시려고,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셔서 대속의 죽음, 곧 십자가를 지셨다.
2. (빛)을 밝히고 찾으라! “등불을 켜고”(8절)
어두운 구석으로 굴러 들어간 은전은 (빛)이 없으면 찾아내기 어렵다. 잃어버린 은전은 스스로 빛을 낼 수 없다. 더욱이 주인의 손을 벗어나 어딘가에 처박혀 있을 은전은 쓰임받아야 할 귀한 목적을 상실한 것이다. 그렇기에 주님은 이같이 말씀하신다.
막 2:17 예수께서 들으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그러므로 생의 (목적)과 (가치)를 잃어버린 자를 찾는 자로서 우리는 등불을 켜야 한다. 내가 어둡거나 내가 잘못되어 있으면, 잃은 자를 찾아낼 수 없다.
그러므로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으로서 (말씀)과 (기도) 생활로 항상 깨어 있어 세상과 다른 구별된 빛을 밝혀야 하는 것이다(딤전4:5).
이 빛은 곧 그리스도의 빛, 말씀의 빛, 생명의 빛, 진리의 빛이다. 이 빛이 있어야만 내가 잃은 것을 다시 찾을 수 있다. 이 빛이 아니고서는 잃은 것을 찾을 수도, 가진 것을 볼 수도 없다.
결국 나 (자신) 속에서 잃어진 것이 무엇인가를 발견하고 나 (자신)에게서 먼저 찾아내야 한다.
이 세상에 빛이 없다고 불평할 수 없다. 불평하면 우리도 그들과 똑같이 불 꺼진 사람들이 되고 만다. 오히려 그들을 위해서 (사랑)의 빛을, (생명)의 빛을, (치유)의 빛을, 용서의 빛 등 예수 그리스도로부터의 빛을 비추어 주어야 한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마5:14)
3. (끝까지) 찾아내야 한다! “찾아내기까지 부지런히 찾지 아니하겠느냐”(8절)
우리는 있는 아홉 때문에 잃어버린 하나를 못 발견할 때가 많다. “이 정도면 됐지” 하는 ‘아홉’이다.
이 잃어버린 은전은 반드시 찾아내야 한다. 이 여자에게는 매우 소중한 은전이다.
잃은 은전을 찾기 위해서 빗자루를 들고 구석구석 쓸어내야만 했다. 바닥에는 갈대로 엮어 만든 돗자리 같은 것이 깔려있었다. 당시 서민 가정에는 흙마루로 되어있었다. 그래서 쓸면 먼지가 일어났다. 창문도 제대로 없는 어두운 방에 흙먼지가 날린다.
그래도 은전을 찾아야 했다. 찾아야만 할 은전이었기 때문이다.
☞ 잃은 은전을 찾기 위해서 빗질할 때 ‘먼지’가 일어나도 찾아야만 한다.
그 먼지는 무엇인가?
듣기 (싫은) 소리, (비방)하는 소리, (핍박)하는 소리, 비웃는 소리, 실망케 하는 소리, 불신의 소리 등 좋지 않은 여건이다. 그래도 언젠가는 그 빗질이 (사랑)의 수고였다는 것을 그들이 돌아와서 알게 된다. 내가 한 영혼을 긍휼히 여기고, 한 영혼을 소중히 여길 때, 어찌 하나님께서 그 찾는 자의 영혼과 삶을 존귀하게 하지 않으시겠는가!
4. 찾아낸즉 더 큰 (함께하는) 기쁨이 있다!
눅 15:9 또 찾아낸즉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잃은 드라크마를 찾아내었노라 하리라 *드라크마 : 로마 은화 데나리온과 같은 하루 품삯의 헬라 은화
눅 15:1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 기쁨이 되느니라
눅 15:7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구원에 이르는 (생명)을 찾아내는 즐거움보다 큰 것이 없다.
내가 받은 구원이 소중하고 복된 것이면, 내가 전도해서 돌아올 사람에게도 소중하고 복된 것이다. 한 생명을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일은 오직 복음의 일꾼인 내가 해야 할 일이다.
‘내가’ 잃어버린 은전을 찾듯이, ‘내가’ 잃어버린 영혼을 찾아내야 한다.
등불을 켜고 비를 들고 쓸어가면서 어두운 곳에서, 자신의 존재를 잃고 있는 곳에서 잃어버린 자를 찾아내야 한다. 주님은 다 알고 계시면서도, 우리를 통해서 (사랑)의 관계를 이루게 하시려고 우리를 보내신다. 내가 (받은) 전도, 남에게 (전하라). 찾을 때까지!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딤후4:2)
5. 이제 나의 삶에서 (잃은) 것이 없는가 살펴보라.
에베소교회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인내하며 수고를 많이 하였다. 거짓을 분별하고 주님을 위해 참고 견뎠다.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계2:4) 첫사랑을 잃었다.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계2:5) 사랑의 실천은 미루거나 다른 것으로 대치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나 자신을 돌아보자. 잃은 것이 있다는 것을 알고 이를 찾는 데 (지체)할 수 없다.
이 여인의 마음은 무척 조급했다. 오늘 밤에 잃어버린 것을 알고 내일 찾아도 되는데, 아침까지 기다릴 수가 없었다. “좀 더 있다 기도하지, 좀 더 있다 봉사하지, 좀 더 있다 전도하지, 좀 더 있다 불쌍한 이웃을 돌보지.” 하고, 시간은 흘러가는데 기다릴 것이 아니다.
이후의 시간은 나를 위해 보장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내일)이 없을 수도 있다는 종말적인 자세로 내가 잃은 영혼 혹은 그 영적 가치를 찾아내야 한다. 바로 (오늘)을 잃을 수 없다.
보라! 오늘 함께 예배하여야 할 그 사람이 이 자리에 없다면! 나와 함께 기도하여야 할 그 사람이 오늘 여기에 없다면! 진정으로 사랑해야 할 그 사람이 내게 없다면! 그 잃어버린 자를 기어이 찾아내라고 말씀하신다.
주께서 (나)를 그렇게 찾아주시기 위해서 죽음의 자리까지 오셨듯이!
기 도 / 주여! 내가 잃은 사람과 내가 잃은 것이 내 안에 있습니다. 말씀과 기도로 내 안을 밝혀주시고,
때를 놓치지 않고 그 빛으로 잃어버린 ‘그 은전 하나’를 찾아내게 하소서. 아멘!
///// 금요기도회 말씀 /////
심어야 거둔다 / 갈라디아 6:6-9
2025-4-11금 / 한봉희목사
갈 6:6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
갈 6:7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갈 6:8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갈 6:9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이 세상에 원인이 없이 존재하는 것은 없습니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면서 먹고, 사용하고, 겪고, 보는 것은 이미 과거에 그 원인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과거에 자신이 심은 것이든, 아니면 다른 사람들이 심은 것이든 원인이 없이 결과를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곧 씨앗을 심지 않고 열매를 거둘 수 없습니다.
이에 오늘 말씀을 담고 기도하고자 합니다.
1. 스스로 자신을 속이지 말라!
갈 6:7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무엇을 말씀하는 겁니까?
심지도 않았으면서 거둘 것을 기대하고 있는 것을 말합니다.
양심을 속이고 불량품을 쓰고서 겉만 치장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거짓을 심고 이득을 얻고자 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자신을 속이고 있습니다.
죽은 것을 심고 살아 있는 것을 거두려고 하고 있습니다.
희생이 없이 영광에 참여하고자 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거둘 것을 위해 무엇을 심었는가 돌아보게 됩니다.
2.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둡니다
갈 6:7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좋은 씨를 좋은 땅에 심어야 한다.
마 13:8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
무엇으로 심든지! 여기에는 심는 목적이 있습니다.
갈 6:8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여기에는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가 있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가 있습니다.
그 열매는 썩어짐과 영생으로 크게 갈라집니다.
시어머니 나오미를 좇아 온 모압 여인 룻과 다른 며느리들의 선택이 그것입니다.
다윗의 선택과 사울의 선택이 그것입니다.
베드로의 선택과 가롯 유다의 선택이 그것입니다.
바나바의 선택과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선택이 그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우리가 무엇을 심는가에 따라서 자칫 하나님을 업신여기는 일이 될 수 있습니다. 네가 하나님을 그 정도 밖에 알지 못하느냐 하시는 것이죠~
그러하기에 심는 일에는 믿음의 분량이 있어야 합니다.
3. 좋은 씨를 심고자 하면 심을 것을 준비하시는 하나님이 함께하십니다.
고후 9:10 심는 자에게 씨와 먹을 양식을 주시는 이가
너희 심을 것을 주사 풍성하게 하시고 너희 의의 열매를 더하게 하시리니
1)하나님은 씨와 먹을 양식을 구분하여 주셨습니다.
내가 먹을 양식과 다음 해를 위하여 심을 씨앗은 구분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허무하게 사는 인생을 보면, 자기 배를 위하여 다 써버리고, 이웃을 위해, 다음세대를 위해 씨앗을 남기지 못하는 어리석음이 있습니다. 씨앗은 미래이기 때문입니다.
2)하나님은 심을 것을 주시고 풍성하게 하시어 의로운 열매를 더하게 하십니다.
오병이어의 이적이나, 가루 한 움큼과 기름 조금 남은 사르밧 과부가 엘리야를 공궤하고는 가뭄의 때에 그 식구에게 음식이 떨어지지 아니한 이적이 그것을 증거합니다.(왕상17장)
4. 그렇다면 씨앗은 무엇입니까?
벧전 1:23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셔서 십자가에서 희생하신 예수님을 생각합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말씀이라는 씨앗으로 오셨습니다.
그러하기에 말씀을 가르치는 자를 여기서 거론한 것입니다.
갈 6:6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
그 말씀 안에 심어야 할 모든 좋은 것이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좋은 땅”에 씨를 뿌린다는 것은 말씀을 사모하고, 말씀에서 깨달음을 얻고, 말씀을 따라 사는 삶이 좋은 땅이 되어서 거기서 100배, 60배, 30배를 거두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5.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9절)
거두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급하다고 밥솥 뚜껑을 미리 열 수는 없습니다. 아이가 자라나지 않는다고 잡아서 늘릴 수는 없습니다. 농부가 씨를 뿌리고 기다리는 것은 비가 오는 때, 햇빛이 비치는 때, 거두는 때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에게는 썩지 않는 말씀의 씨앗이 있습니다.
우리의 삶으로 심어야 할 말씀입니다.
여기 누군가 예수님을 심어준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열매가 되었습니다.
동영상으로 잠간 함께 하겠습니다.
[방송실 ; 동영상 흑인의 한국어 찬양]....
그리고 오늘도 우리는 기도의 씨앗을 심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