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롱에 담긴 계시 / 마가복음 15:16-20, 31-32
막 15:16 군인들이 예수를 끌고 브라이도리온이라는 뜰 안으로 들어가서 온 군대를 모으고
막 15:17 예수에게 자색 옷을 입히고 가시관을 엮어 씌우고
막 15:18 경례하여 이르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고
막 15:19 갈대로 그의 머리를 치며 침을 뱉으며 꿇어 절하더라
막 15:20 희롱을 다 한 후 자색 옷을 벗기고 도로 그의 옷을 입히고 십자가에 못 박으려고 끌고 나가니라
막 15:31 그와 같이 대제사장들도 서기관들과 함께 희롱하며 서로 말하되 그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막 15:32 이스라엘의 왕 그리스도가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와 우리가 보고 믿게 할지어다 하며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자들도 예수를 욕하더라
닭이 두 번째 울어대는 새벽,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시는 이른 아침이었습니다.
대제사장들과 장로들과 서기관들이 공회와 더불어 입을 맞추고 예수님을 결박하여 끌고 가서 빌라도에게 넘겨주었습니다. 빌라도는 유월절에 죄수 한 사람을 놓아주는 전례가 있음을 알고, 무리에게 물었습니다. “내가 유대인의 왕을 너희에게 놓아주기를 원하느냐?” 사람들의 소리가 높아졌습니다.
“그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빌라도는 무리에게 만족을 주려고 강도 바라바는 놓아주고 예수님은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주었습니다. 본문 바로 앞선 15절까지의 내용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다음 21절부터는 구레네 사람 시몬이 예수님께서 지고 가던 십자가를 억지로 지게 된 내용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어서 제 삼시 곧 오전 9시에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았습니다.
바로 여기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바로 전에 군인들이 예수님을 희롱하는 장면이 오늘 본문인 16~20절과 같이 끼어들었습니다.
그리고 31-32절에서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운명하시기 전에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함께 예수님을 희롱하는 장면이 다시 부각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에는 굳이 넣지 않아도 될
예수께서 희롱당하시는 치욕적인 이야기들까지 성경에서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마가복음 15장 오늘 말씀은 바로 그 희롱하는 사람들의 입에
오히려 하나님의 의도하시는 계시가 담기게 되었다는 데 핵심이 있습니다.
‘희롱하다’는 말은 헬라어 ‘엠파이죠’라는 단어로, ‘비웃다, 조롱하다, 놀리다, 속이다’는 뜻으로 오만, 반감, 적대감을 담고 있는 감정에서 나오는 말입니다.
저들의 희롱하는 말에는 오히려 하나님이 나타내시고자 하시는 진리가 드러나고 있다는 역설을 오늘 말씀에서 증언하고 있습니다.
여기 조롱하는 말 중에 오히려 하나님이 의도하시는 계시가 담겨있습니다.
이들의 조롱의 말을 통해서 역설적으로 예수께서 메시야 됨을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조롱자들은 그 조롱에 계시가 담겨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무의식 중에 예수님의 참된 정체를 증언하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16절 이하의 말씀을 보세요.
막 15:16 군인들이 예수를 끌고 브라이도리온이라는 뜰 안으로 들어가서 온 군대를 모으고
막 15:17 예수에게 자색 옷을 입히고 가시관을 엮어 씌우고
막 15:18 경례하여 이르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고
막 15:19 갈대로 그의 머리를 치며 침을 뱉으며 꿇어 절하더라
막 15:20 희롱을 다 한 후 자색 옷을 벗기고 도로 그의 옷을 입히고 십자가에 못 박으려고 끌고 나가니라
로마 군병들이 예수께 자색옷을 입힌 것은 자색이 바로 왕이 입는 옷의 색깔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비록 가시로 만들기는 했지만, 면류관을 그 머리에 씌웠다는 것도 결국 왕을 상징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갈대로 머리를 치며 침을 뱉고 꿇어 절했습니다. 갈대는 손에 들려 있는 통치자의 홀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저들은 희롱하기 위하여 이와 같은 행동을 했지만, 사실상 그들은 그들이 알지 못하는 가운데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진리를 증언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또한 여기에서도 진리는 드러나고 있습니다.
31~32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막 15:31 그와 같이 대제사장들도 서기관들과 함께 희롱하며 서로 말하되 그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막 15:32 이스라엘의 왕 그리스도가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와 우리가 보고 믿게 할지어다 하며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자들도 예수를 욕하더라
그들이 말한 바와 같이 예수님은 실제로 “남을 구원하는 자”, 즉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고” 오신 구원자입니다.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말하는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맞아요. 그렇게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어야 남을 구원할 수 있습니다.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이 조롱하는 사람들의 말이 오히려 복음의 계시가 되었습니다.
지난 주일에 담은 이 말씀을 기억하시나요?
왕이신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우리를 대신해서 죽으신 후에야 십자가에서 내려오실 수 있었습니다.
또 32절에서 다시금 예수님을 향해 뭐라고 합니까?
“이스라엘의 왕 그리스도”라고 하면서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와서 우리로 믿게 하라고 하지 않습니까? 참으로 안다고 하는 사람들이 더 모르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려고 오신 것을 말입니다.
이보다 앞서서 14장에서 보면 대제사장이 공회에서 예수님을 심문하였을 때 물었던 질문이 있습니다.
“네가 찬송 받을 이의 아들 그리스도냐?”(막14:61) 예수께서 대답하십니다. “내가 그니라”(62)
조롱하는 자들은 자기가 알지도 못하고 믿지도 못하는 가운데 예수님의 참된 정체를 계시하는 증언자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한편, 가룟 유다의 배반을 통하여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게 하시며, 가로세로 십자형 십자가가 하나님과 인간, 인간과 인간과의 화해의 상징이 되게 하신 하나님의 빈틈없는 역사하심 앞에 우리는 감사와 영광을 돌릴 뿐입니다.
실로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는
이를 거부하거나 응답하거나 모든 인간을 통하여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조롱하는 자들의 말을 사실로 바꾸시는 하나님은, 결국 이 세상 모든 역사의 한 마당에서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역사를 위해 역사의 수레바퀴를 움직이시는 분이라는 것을 알게 하십니다.
인간이 심히 교만하여 하나님을 떠나서 조롱하는 사람의 대열에 선다 하여도 그것마저도 바로 하나님의 구원으로 가는 길을 계시하게 된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이 세상에 펼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그 오묘한 지혜와 그 역사하시는 방법에 겸허하게 찬양 드리며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더욱이, 사탄은 자기를 멸하려고 온 예수 그리스도를 죽이면 자기가 이기는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놀랍게도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구원을 완성하는 길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사탄은 절규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무리 악이 성하여도 결국은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으로 귀결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사탄이 아무리 간교하게 하나님의 역사를 깨트리려고 해도 그 자체가 오히려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는 일을 더욱 견고하게 할 뿐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거슬려 조롱하며 나가는 모든 인간의 역사를 역전시켜 그 뜻을 이루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왜 그런가요? 하나님은 하나님을 떠난 사람들을 찾아오셔서 거기서 구원하시는 것이 궁극적인 목적이며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선한 세상에 오신 것이 아니라 악한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조롱하는 자들 앞에서 죽으려고 오신 것입니다.
처음에는 박해자였으나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을 보고 참된 신앙고백을 한 사람도 있습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책임자인 로마 백부장이 바로 그런 사람들입니다. 로마의 백부장은 빌라도 총독과 마찬가지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처형한 로마 행정부의 대표자입니다. 그런 그가 십자가에서 운명하시는 예수님을 보고 뭐라고 증언했습니까?
막 15:39 예수를 향하여 섰던 백부장이 그렇게 숨지심을 보고 이르되 이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하더라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다”라는 신앙고백은 초대 기독교 신앙고백 가운데 중심적인 고백입니다. 특히 마가복음에서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말은 가장 중요한 명칭입니다. 그것은 바로 이 명칭이 마가복음의 제목이 된, 막1:1절에 명시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여러분!
이 세상에는 피조물 인간이 창조주 하나님을 조롱하는 말들로 넘쳐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큰 수레바퀴! 진리와 구원의 바퀴는 세상의 모든 소리 가운데에서 변함없이 돌고 있습니다. 조롱하는 세상에 종으로 오신 만왕의 왕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변함없이 우리의 신앙고백 한가운데 분명하게 서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믿음의 수레바퀴는 변함없이 돌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진리보다 넓은 세계는 없습니다.
세상의 그 어떤 조롱에도 십자가가 서 있기 때문입니다.
인도의 마하트마 간디의 말입니다.
“나는 인간의 행동들에 관해 조롱하거나, 슬퍼하거나, 경멸하지 않고, 오직 이해하고자 하였다.”
간디가 영국에서 대학을 다니던 때의 일화입니다.
자신에게 고개를 숙이지를 않는 식민지 인도 출신인 학생 간디를 아니꼽게 여기던 피터스라는 교수가 있었습니다. 하루는 간디가 대학 식당에서 피터스 교수 옆자리에 점심을 먹으려고 앉았습니다.
피터스 교수는 거드름을 피우며 말했습니다.
“이보게, 아직 모르는 모양인데, 돼지와 새가 같이 식사하는 일은 없다네.”
간디는 재치 있게 응답하였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교수님! 제가 다른 곳으로 날아가겠습니다.”
복수심에 약이 오른 교수는 다음 시험 때에 간디를 애먹이려고 했으나, 간디가 만점에 가까운 점수를 받자 간디에게 질문을 던졌습니다.
“길을 걷다 돈 자루와 지혜가 든 자루를 발견했다네. 자네라면 어떤 자루를 택하겠나?”
간디는 대수롭지 않게 대답을 했습니다 “그야 당연히 돈 자루죠.”
교수가 혀를 차면서 빈정댔습니다. “쯧쯧, 만일 나라면 돈이 아니라, 지혜를 택했을 것이네.”
간디가 간단히 대꾸했습니다. “뭐, 각자 부족한 것을 택하는 것 아니겠어요.”
교수가 지혜가 부족해서 지혜를 택했다는 말을 담은 것이죠.
이 말에 히스테리 상태에 빠진 교수는 간디의 시험지에 ‘멍청이’라고 써서 돌려주었습니다.
간디가 교수에게 말했습니다. “교수님 제 시험지에는 점수는 없고, 교수님 서명만 있는데요.”
교수님의 서명이 ‘멍청이’라는 말로 써 있다는 것으로 되받아 친 것입니다.
어떤 조롱에 대해서도 간디의 재치와 당당한 마음 상태를 보여 준 것입니다.
우리는 누가 내게 욕을 하거나 비난을 하거나 조롱을 하면 상심하고 낙담하지요.
오히려 상대방의 표현의 자유를 인정하고, 상대의 어리석음을 불쌍히 여기면 될 뿐입니다.
간디처럼 누군가의 조롱이나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운 영혼이 될 수 있는 것은 그 한 가운데 주님의 십자가 진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요8:32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성도 여러분!
조롱하는 소리가 있고 세상의 유혹이 찾아온다 할지라도,
세상에서 십자가를 지신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는 결코 중단될 수 없습니다.
그 조롱하는 입에서 토해낸 말들이 진리였다는 것을 그날에 그들도 알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죄악으로 가득한 세상은 온전할 수가 없습니다. 갖가지 조롱소리와 유혹이 넘실거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슬퍼할 수 없습니다. 낙심할 수 없습니다. 유혹으로 흔들릴 수 없습니다. 이 세상에 대하여 우리는 믿음으로 담대하게 삽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순간순간의 자리에 주님의 십자가가 있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주님의 십자가와 함께하는 우리 각자의 십자가는 죄악을 이기고 자랑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삶에 주님 흔적으로 가득하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우리가 즐겨 부르는 복음찬송이 있습니다.
-십자가의 길, 순교자의 삶-
내 마음에 주를 향한 사랑이
나의 말엔 주가 주신 진리로
나의 눈에 주의 눈물 채워주소서
내 입술에 찬양의 향기가
두 손에는 주를 닮은 섬김이
나의 삶에 주의 흔적 남게 하소서
하나님의 사랑이 영원히 함께하리
십자가의 길을 걷는 자에게
순교자의 삶을 사는 이에게
조롱하는 소리와 세상 유혹 속에서
주의 순결한 신부가 되리라
내 생명 주님께 드리리
함께 부르고 기도하겠습니다. ♬
<축도후 영상>
마가복음 15장 16~20, 31-32절 말씀은 바로 그 희롱하는 사람들의 입을 통해서
오히려 하나님의 의도하시는 계시가 담기게 되었다는 데 핵심이 있습니다.
실로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는
이를 거부하거나 응답하거나 모든 인간을 통하여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이 세상에 펼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그 오묘한 지혜와 그 역사하시는 방법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조롱하는 세상에 오셔서 거기서 구원을 이루시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과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선한 세상에 오신 것이 아니라 악한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조롱하는 자들 앞에서 죽으려고 오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큰 수레바퀴! 진리와 구원의 바퀴는
세상의 모든 소리 가운데서 변함없이 돌고 있습니다.
우리가 즐겨 부르는 복음찬송입니다.
♪ 조롱하는 소리와 세상 유혹 속에서
주의 순결한 신부가 되리라
내 생명 주님께 드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