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큰 잔치의 비유
누가복음 14:15-24
지난주 기도 / 주님께서 보이신 겸손의 은혜와 능력과 복을 알게 하시고, 남보다 나를
낮추는 자가 되어 주께서 높이는 자가 되어 주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소서. 아멘
모든 것이 준비된 큰 잔치에 초청하다
눅 14:16 이르시되 어떤 사람이 <큰 잔치>를 베풀고 많은 사람을 청하였더니
눅 14:17 잔치할 시각에 그 청하였던 자들에게 종을 보내어 이르되 오소서 모든 것이 (준비)되었나이다
큰 잔치는 호화롭고 비싼 음식이 많아서, 사람이 많아서 큰 잔치인가? 그렇지 않다.
큰 잔치는 하나님이 함께하시고, 영원한 구원이 있는 (하나님 나라) 잔치다.
이 큰 잔치를 열고 초청하신 주인은 바로 만인의 구주 예수 그리스도다.
구주 예수님은 인간의 모든 문제와 필요에 대한 분명한 (해답)이시다.
이 큰 잔치는 인생의 궁극적인 문제의 답을 찾을 수 있는 유일한 잔치다.
이러한 초청에 응하지 않은 사람들
눅 14:18 다 일치하게 사양하여 한 사람은 이르되 나는 밭을 샀으매 아무래도 나가 보아야 하겠으니 청컨대 나를 양해하도록 하라 하고
눅 14:19 또 한 사람은 이르되 나는 소 다섯 겨리를 샀으매 시험하러 가니 청컨대 나를 양해하도록 하라 하고 (새번역 : 겨릿소 다섯 쌍을 샀는데)
눅 14:20 또 한 사람은 이르되 나는 장가 들었으니 그러므로 가지 못하겠노라 하는지라
한 사람은 나는 밭을 샀으매 가보아야 하겠다고 한다. 내 사업이 바쁜데, 당신 잔치는 당신이나 기뻐할 것이고, 나는 내 사업이 먼저이기 때문에 당신의 잔치에는 못 가겠다는 것이다.
또 한 사람은 소 다섯 쌍을 샀으니 시험해봐야 하겠으니 못 참석하겠다고 한다. 지금은 잔치에 참석할 때가 아니다. 나를 위해서 써야 할 시간인데 당신을 위해서 시간을 쓸 수가 없다는 것이다.
또 한 사람은 나는 장가를 갔으니 못 가겠다고 한다. 지금 내 기쁨이 한창인데 남의 기쁨, 남의 잔치에는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세 사람의 이야기를 함께 모아보면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전부 (자기중심적)이라는 사실이다.
이들은 모든 것이 준비된 하나님 나라의 큰 잔치의 초대장을 거부했다.
여기 큰 잔치의 기쁨은 (소유)의 기쁨이 아니다. 이것은 다른 사람의 기쁨에 참여하는 기쁨, 곧 (존재)의 기쁨이다. 다시 말하면 그 잔치에 내가 청함받았다고 하는 그 사실에 대한 기쁨이다. 잔치란 본래 모여서 같이 즐기는 것이지 혼자 하는 잔치는 없다. 우리는 이 (공동체)적인 기쁨에 함께한다. 개인적이며 자기중심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은 이러한 기쁨을 맛볼 수가 없다.
자칭 성공을 이루었다고 하는 자에게 은혜보다 큰 (장벽)이 있다.
이 물질 우상이 넘치는 세상은 그 자체가 장벽이다. 오히려 그에게 안겨준 성공과 승리가 더욱 안타까운 장벽이 되곤 한다. 이러한 장벽을 만들고 있는 심각한 요소들이 있다.
☞ 내가 이루었다고 하는 (교만)이다.
☞ 내가 주인이 되는 (죄)의 함정이다.
☞ 만족에 이르지 못하는 세속적인 성공에 이끌리는 (탐심)이다.
인간은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한 채, 여전히 자기 힘으로 사는 줄로 알고 있다.
사들인 소가 전염병으로 죽고, 씨 뿌린 밭에 비가 내리지 않고 이삭이 나올 때 우박이 떨어지고, 새 가정에 불화가 다가오는 이것을 알지 못하는 어리석고 교만한 인간의 모습을 보라. 인간은 자기와 관계된 모든 일들을 정당화 내지는 합리화시키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벗어나 (인본주의)로, 자기중심주의로 가고 있다. 하나님의 은혜보다 인간의 고집이 세다!
가장 큰 장애물은 무엇보다도 바로 (나 자신)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최초로 에베레스트 산을 정복(1953년)한 에드먼드 힐러리 경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정복한 것은 산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다.”
이 세상은 죄와 사망이라는 넘을 수 없는 장벽이 있다.
이 장벽을 제거하고 길이 되어 오신 분이 바로 성육신하신 주 예수님이다.
이를 위해 한계를 초월하신 하나님이 육신에 (갇힌) 인간이 되셨고, 의로우신 본체 하나님이 (죄인)이 되셨고, 죽을 수 없는 영원한 생명이신 하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셔야) 했다.
여기 (은혜)를 받는 사람들을 보라!
눅 14:21 종이 돌아와 주인에게 그대로 고하니 이에 집 주인이 노하여 그 종에게 이르되 빨리 시내의 거리와 골목으로 나가서 가난한 자들과 몸 불편한 자들과 맹인들과 저는 자들을 데려오라
큰 잔치를 연 주인이 새로 초대한 사람들 ; 가난한 자, 병든 자, 장애를 지닌 사람들!
이들은 누구인가? 잘 관찰해보라.
-이들은 가난하기에 소를 살 수 없었다.
-이들은 병든 자들이기에 밭에 나가서 농사를 지을 수 없었다.
-이들은 장애를 갖고 있어서 남들처럼 쉽사리 시집 장가도 갈 수 없었다.
오히려 이들은 잔치에 초대받은 것이 너무 감사해서 즐겨 초청에 응했다. 바로 이들이 주인의 은혜를 입게 되었다. 곧 이들이 (은혜)를 알고 영원한 구원을 받는 자들이 되었다.
아직 잔칫집 문은 닫히지 않았다.
눅 14:22 종이 이르되 주인이여 명하신 대로 하였으되 (아직도) 자리가 있나이다
눅 14:23 주인이 종에게 이르되 길과 산울타리 가로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
강권할 만큼 중요한 초청이다!
“아직 (너)를 통해서 전도할 사람이 남아 있다.” “이것은 (포기)해서 될 일이 아니다.”
한 생명을 구원하는 일은 시급하고도 중요한 일로서, 세상에 이 생명과 바꿀 수 있는 것이 없다. 복음을 파는 일 곧 전도하는 일이 다른 상품을 파는 노력보다 못해서 되겠는가?
여기 '강권하여' 라는 말은 헬라어로 '아낭카조' 인데, '기어코 설득하여'라는 뜻이다.
고후 5:14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하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오라! 이것은 마지막 기회, 종말적 통첩이다.
눅 14:24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전에 청하였던 그 사람들은 하나도 내 잔치를 맛보지 못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
일찍이 선민이었던 유대 사람들은 맛보지 못하고 이방 사람들이 이 잔치에 참여하게 되었다. 먼저 초청받았던 유대 사람들은 자기중심의 이유로 모두 사양하고 오히려 이방 사람들이 먼저 예수님의 초청을 받아들여 구원에 이르고 이 큰 즐거움을 맛보게 될 것을 비유로 말씀하셨다.
주님의 마음을 대변하는 세 가지 말을 담고 나가자!
“빨리 데려오라!”, “강권하여 데려오라!”, “내 집을 채우라!”
기 도 / 나 같은 죄인을 모든 것이 준비된 하나님 나라 잔치에 초대해 주신 은혜를 감사합니다.
겸손히 믿음으로 주님의 뜻을 즐거워하게 하시며 마지막 그날의 잔치를 고대하게 하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