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외식하지 않는 믿음
누가복음 11:37-40, 12:1-7
지난주 기도
멸망으로 가는 사람의 길을 십자가로 막으신 주님! 주님 십자가의 대속의 은혜로 회개에 이르게 하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게 하신, 하나님 나라 백성의 삶을 충만케 하소서. 아멘!
주님은 바리새인의 누룩 곧 (외식)을 주의하라(눅12:1)고 말씀하신다.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긴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다(눅12:2)고 거듭 강조하여 말씀하신다.
이러한 외식 곧 위선은 겉으로는 선하게 보이지만, 속으로 들어가면, 뒤로 돌아가면 다르다.
그것이 위선이었음을 알게 될 때, 그 실망과 영향력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또한 자기 자신에 대해서 합리화하려고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이러한 외식은 (믿음)과 함께할 수 없다. 결국 하나님 앞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가 죽어서 어디로 가겠는가?
그렇다면 외식하는 자, 곧 위선자의 특징은 어떠한가?
1. 위선자는 (말)과 (행위)가 서로 다르다.
마 23:3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그들이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그들이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그들은 말만 하고 행하지 아니하며
그가 말하고 있는 것을 그의 행위가 반박하며 말한다. “너는 위선자다”
약 2:22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느니라
약 2:26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2. 위선자는 (보이기) 위한 신앙으로 살면서 보이기 위해 선을 행한다.
위선자는 명예와 존경받기를 좋아한다. 자신의 이름에 연연하여 그 이름이 높아지기를 구한다.
단지 사람들에게 명예를 얻기 위해 주님을 따르고, 신앙의 진실함과는 거리가 멀다면, 머지않아 성도들이 보는 앞에서 쓰고 있던 가면은 벗겨지고 외식하는 자의 정체가 드러나고 만다.
주께서 가르치심을 보라.
마 6:16 금식할 때에 너희는 외식하는 자들과 같이 슬픈 기색을 보이지 말라
그들은 금식하는 것을 사람에게 보이려고 얼굴을 흉하게 하느니라...
☞ 주님은 하나님을 어떻게 보이셨는가? 오히려 죽기 위해서 종으로 오셨다.
3. 위선자는 하루살이는 걸러내고 낙타는 삼킨다.
외식하는 자는 하루살이같이 작은 것은 붙잡고, 낙타같이 오히려 크고 중한 것은 놓치고 만다.
마 23:23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박하, 회향, 근채 이들 모두는 향료, 조미료, 약재료로 쓰이는 것으로 십일조 항목에 들지 않았다.
4. 위선자는 신앙의 모든 내적인 부분은 무시하고 단지 외적인 것에 치중한다.
겉으로는 그럴듯하지만, 실상은 껍데기에 불과하다.
눅 11:39 주께서 이르시되 너희 바리새인은 지금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나
너희 속에는 (탐욕)과 악독이 가득하도다
마 23:25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
내면을 살펴보라!
눅 11:40 어리석은 자들아 겉을 만드신 이가 (속)도 만들지 아니하셨느냐
창가에 진열해 놓은 것보다 더 좋은 상품을 파는 상인은 거의 없다.
외적인 것보다 내면에 더 집중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외적인 것에 무관심하라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러나 먼저 내면 자신을 살펴보라. 나는 주님과 가깝고 은밀하며 개인적인 교제와 연합을 누리며 살고 있는가?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아 헤매듯 주님을 갈급해 있는가?
5. 위선자의 신앙은 장소나 시간에 따라 변한다.
아침에는 성도였다가 직장에서는 “사업은 사업이야.” 하면서 더러운 속임수를 쓰지는 않는가! 저녁이 되면 다시 경건한 모습으로 저녁 식탁에 앉는다. 그러나 아내도 가족도 교회도 그를 볼 수 없는 곳에 가면 그는 곧 세상의 연락에 빠지지 않는가!
그러나 진실한 사람은 낮에도 밤에도 (언제나) 그리스도인이다. (어디서나) 그리스도인이다. 그를 아무리 유혹해도 하나님의 은혜로 인해 죄를 짓지 않을 것이다. 그는 사람들의 눈이 두려워서 죄를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위해 죄를 미워한다.
6. 위선자는 형제의 눈에 있는 티를 찾아내고, (자기) 눈 속에 있는 들보에 대하여 관대하다.
위선자는 대부분 사람에게 엄격하고 혹독하지만, 자신에게는 매우 관대하다.
눅 6:42 너는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를 보지 못하면서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형제여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할 수 있느냐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라 그 후에야 네가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빼리라
자신 안에 있는 악을 미덕으로 합리화시키는 사람들이 바로 위선자다.
위선자의 결말을 보라!
비바람이 치던 날 커다란 나뭇가지가 떨어졌다. 썩은 가지였다. 얼마나 붙어있었을까?
세상을 시험하는 시련이 닥쳤을 때, 얼마나 많은 위선자가 그 자리를 지키고 있을까?
사람의 눈을 피했을지라도, (하나님)은 위선자를 찾아내신다.
(자신)을 속이지 말라.
‘위선’이라는 죄는 가장 빠지기 쉬운 죄 중에 하나다. 자기중심적인 인간의 본성의 특징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결코 속일 수 없다. 하나님은 반드시 가면을 벗기신다.
모든 것을 보시는 하나님은 나의 영혼을 읽으신다.
모든 죽음 가운데서 가장 두려운 죽음이 위선자의 죽음일 것이다.
여기 멸망할 사탄을 보라!
고후 11:14 이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니라 사탄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고후 11:15 그러므로 사탄의 일꾼들도 자기를 의의 일꾼으로 (가장)하는 것이 또한 대단한 일이 아니니라 그들의 마지막은 그 (행위)대로 되리라
하지만,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진실한 믿음으로 사는 자에게는
모르는 것이 없으신 하나님의 세심한 (돌보심)이 있다.
눅 12:6 참새 다섯 마리가 두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하나님 앞에는 그 (하나)도 잊어버리시는 바 되지 아니하는도다
눅 12:7 너희에게는 심지어 머리털까지도 다 세신 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더 귀하니라
내 힘과 의지로 위선적인 자기를 바꿀 수 없다. 우리는 (기도)해야 한다.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주님, 저를 진실한 자 되게 하소서.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이 다르지 않게 하소서. 내 입이 내 영혼을 속이지 않게 하소서. 하나님 앞에서 나부터 보게 하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