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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2.03 23:15

살아야 할 이유 = 죽어야 할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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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한봉희목사
설교일 2022-12-4낮
본문말씀 로마서14:8


살아야 할 이유 = 죽어야 할 이유 / 로마서14:8


14:8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한 주간에 세 가정의 장례식을 다녀오면서, 죽음 앞에 서 있는 살아있는 자를 거듭하여 보게 되었습니다. 나는 죽음 앞에 설 준비가 되어있는가를 거듭 생각하게 하는 자리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갑자기 오늘이 마지막 날이 된다면!

내 인생은 지금 이대로 좋은가를 묻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오늘 말씀 제목입니다.

살아야 할 이유 = 죽어야 할 이유

 

무슨 제목이 이렇습니까?

살아야 할 이유와 죽어야 할 이유가 같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이해가 잘 안 되실 것 같아요~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하면, 아 그렇구나! 하실 겁니다.

 

예수께서는 죽기 위해 세상에 오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살아야 할 이유와 죽어야 할 이유가 동일하셨습니다.

 

그러하기에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은 삶의 끝이 아니라 완성이었습니다.

사는 것이 죽는 것이고~ 죽는 것이 사는 것이었습니다.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12:2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

12: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12:25 자기의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의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전하리라

 

인간은 태어나면서 세상이라고 부르는 학교에 등록해서 다양한 과목을 배웁니다.

내가 잘하는 과목도 있지만 못하는 과목도 있습니다. 필수과목도 있지만 선택과목도 있습니다.

이처럼 기쁨과 행복을 주는 좋아하는 인생과목도 있지만, 슬픔과 불행과 같이 싫어하는 과목도 있습니다.

인생수업이 진행되는 동안 각 과목의 중요성을 깨닫지 못하고 의미도 없는 어쩔 수 없는 시간으로 보낼 때가 많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인생학교를 졸업할 시간이 되었을 때, 자신이 얼마나 공부를 게을리했는가를 깨닫고 후회합니다.

 

사람은 죽음을 선고받는 그 순간에 진정한 삶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애플의 공동 창립자 스티브 잡스(1955~2011)가 췌장암으로 향년 56세를 산 그가 병실에서 한 이야기입니다. 인간적이고 윤리적인 면에선 많은 아쉬움과 실망감으로 비평을 받고 있으나, 그가 죽음이 다가오는 것을 알 때 남긴 말은 삶과 죽음 앞에 있는 사람들에게 귀를 기울이게 합니다.

 

나는 비즈니스계에서 성공의 끝을 보았다. 타인의 눈에 내 인생은 성공의 상징이었다.

하지만 지금 병들어 누워 과거의 삶을 회상하는 이 순간 나는 깨닫는다.

자부심에 빛나던 사회적 인정과 부는 결국 죽음 앞에서는 희미해지고 무의미해진다는 것을.

나는 어둠 속에서 생명 연장 장치의 녹색 빛과 기계음을 보고 들으며 죽음의 숨결을 느낄 수 있었다.

이제야 깨달았다. 삶을 이어나갈 적당한 부를 쌓았다면 그 이후 우리는 부와 무관한 것을 추구해야 한다는 사실을. 당신은 차를 운전해줄 사람을 고용할 수 있고, 돈을 벌어줄 사람을 구할 수도 있다. 하지만 대신 아파해 줄 사람을 구할 수는 없을 것이다.

잃어버린 물건은 되찾을 수 있지만 은 한번 잃어버리면 절대 되찾을 수 없는 유일한 것이다.

우리가 현재 삶의 어느 순간에 있던, 결국 시간이 지나면 삶이라는 연극의 커튼이 내려오는 마지막 순간을 맞이할 것이다.

가족 간의 사랑을 소중히 여겨라. 배우자를 사랑하고 친구들을 사랑하라. 타인과 더불어 너 자신을 배려하라,”

 

그리고 언젠가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매일 인생의 마지막 날처럼 산다면 언젠가는 의인이 되어 있을 것이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살아야 할 이유와 죽어야 할 이유가 동일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을 때, 죽음 앞에서 돌이킬 수 없는 후회를 하게 됩니다.

그의 죽음이 그의 삶에 대하여 묻고 있습니다.

너의 삶이 만족스럽지 않아서 지금 이 죽음도 만족에 이를 수가 없게 되었다고 말입니다.

살아야 할 이유와 죽어야 할 이유가 같아질수록 주님으로부터 인정받는 사람이 됩니다.

 

살아야 하는 이유가 죽어야 하는 이유와 같아지려면

소중한 생명의 가치를 만족해야 합니다.

 

오늘 사도 바울이 전하는 말씀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로마서 14:7-8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14:7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14:8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자기를 위해서 사는 자가 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자기를 위해서 죽는 자가 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더욱이

주를 위해 사는 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주를 위해 죽는 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왜요?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짐승과 달리 삶과 죽음 사이에서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존재입니다.

나는 현재 오늘의 의미를 알고 살고 있는가?

나는 나에게 삶에 대하여 끊임없이 묻고 있는가?

나는 하나님이 창조하는 삶을 살고 있는가?

 

오늘날의 시대를 일컬어 ‘big me’의 시대라고 말하는 학자들이 있습니다. 개인의 자유, 개인의 이상이 가장 중요한 시대라는 겁니다. 그런데, 이런 시대에도 나의 꿈, 나의 열망을 찾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분명히 신분과 계층, 사회적 관습이 개인을 강제하는 낡은 시대는 지나갔다고 말하고 있는데 말입니다.

내가 커지는 big me 시대 속에서, 오히려 많은 사람이 작아지는 ‘small me’를 느끼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공동체성이 약화된 개인주의의 시대일수록 결과적으로는 자기를 더욱 찾지 못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개인 대 개인 여기에서 서로 소유냐 존재냐 하는 갈등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것입니다. 더 많은 것을 얻더라도 더욱 많은 것을 가진 사람과 비교되는 물질적 대상밖에 되지 않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나보다 더 잘 살고, 더 힘을 가진 사람은 늘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라면 대체적으로 이기주의와 이타주의 사이에 살고 있습니다.

부모가 자식을 위하여 모든 것을 아끼지 않는 것은 이타주의입니다.

반면에 자기의 삶을 누리기 위해서 자식을 낳지 않는다면 그것은 이기주의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는 어떻습니까?

힘들게 자식을 키운 사람의 노후는 오히려 더 큰 행복을 체험하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겁니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있다가 말라 죽게 되지만,

오히려 죽고자 하면 많은 열매를 맺게 된다는 것입니다.

 

세속사회를 살아가는 인간은 살면 살수록 점점 더 기준이 자기중심으로 옮겨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미 솔로몬이 깨달은 것입니다.

16:25 어떤 길은 사람의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나는 내 것이 아닙니다.

 

오늘 말씀입니다.

14:8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나는 내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잃을 것이 없습니다. 나에 대한 소유권이 주님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주님은 나를 주심의 피값으로 사셨습니다.

 

그래요. 거듭난 사람 안에는 주님의 생명이 숨쉬고 있습니다. 주님의 피가 흐르고 있습니다.

나는 내 것이 아니다! 이 고백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다같이! 나는 내 것이 아니다!”

 

 

나는 내 것이 아니기 때문에 사는 것도 죽는 것도 나를 위하여 하지 않고, 나의 주님을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사실 내가 살고자 하면 살기가 더 힘이 듭니다. 내 안에서 주님이 숨을 쉴 수 없기 때문입니다. 나를 부인하고 주님을 따르면 주님이 내 안에서 살아계십니다. 주님이 나를 통해서 일하실 뿐만 아니라, 나를 위해서 일하십니다. 그래서 살기 힘들고 지친 세상에서도, 주님 안에서 쉼을 얻게 됩니다.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는 말씀 그대로입니다.

 

바울의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됩니다.

1:21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그렇습니다.

주님의 십자가는 사랑의 정상입니다.

제물은 살아 있는 것이 죽어야 제물이 됩니다.

성도 여러분!

 

살아야 하는 이유도 사랑이고, 죽어야 할 이유도 사랑입니다.

 

바울이 죽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서 비로소 신앙의 눈을 떴습니다.

 

고전 13:2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것도 아니요

 

이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유일하게 받은 존재는 오직 인간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이 공식이 이루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살아야 할 이유 = 죽어야 할 이유

 

기도합니다.


<축도후 영상>

 

예수께서는

살아야 할 이유와 죽어야 할 이유가 동일하셨습니다.

 

우리는

살아야 할 이유와 죽어야 할 이유가 동일해야 합니다.

 

살아야 하는 이유가 죽어야 하는 이유와 같아지려면

소중한 가치를 만족해야 합니다.

나는 내 것이 아닙니다.

 

살아야 하는 이유도 사랑이고,

죽어야 할 이유도 사랑입니다.

 

살아야 할 이유 = 죽어야 할 이유

로마서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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