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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6.04 20:46

다시 성령의 능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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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한봉희목사
설교일 2022-6-5낮/성령강림절
본문말씀 누가복음24:49


다시 성령의 능력으로! / 누가복음24:49

 

24:49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으로 입혀질 때까지 이 성에 머물라 하시니라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세 가지 큰 약속을 담고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구원하시려고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겠다는 약속과 그것을 이루신 것입니다.

둘째는 예수께서 승천하실 때, 성령을 이 세상에 보내시어 우리와 함께하시겠다는 약속과 그것을 이루신 것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는 새 하늘과 새 땅으로 구원받은 자들을 불러들이기 위해서, 마지막 대심판 날에 주 예수께서 이 세상에 다시 오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오늘 우리는 그 약속 중에 두 번째 약속에 함께하고 있습니다. 다같이 읽겠습니다.

24:49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으로 입혀질 때까지 이 성에 머물라 하시니라

 

이에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다시 성령의 능력으로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듣고자 합니다.

 

먼저는, ‘위로부터입니다.

 

위로부터 능력으로 입혀질 때까지

 

성경은 아담의 자손 인간의 전적인 타락과 그로 인한 인간의 타락한 능력을 알라고 합니다.

 

이에 반하여, 하나님의 능력, 위로부터의 능력이 있습니다.

이 능력은 이 땅에서 발굴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위로부터 임하는 것입니다.

곧 능력으로 임하시는 성령님의 임재를 말씀합니다.

이를 인간의 잠재능력에 하나님의 능력을 더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큰 오해입니다.

성령은 우리를 새 사람으로 거듭나게 합니다.

고전 12:3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고후 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생각해보세요~

자녀들이 강압에 못 이겨 공부를 하는 척 할 수 있습니다. 주사 한 대 맞으면 반짝 하듯이 일시적인 효과는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적이 지속적으로 오를 수 없습니다. “나는 할 수 있다고 아무리 책상 앞에 써붙여 놓아도 며칠 효과가 있을 뿐 도리어 그것이 자신을 실망시키고 억누르는 원수 같은 말이 되고 맙니다.

 

그러나 그 마음에 공부를 해야 하겠다고 해서 달려들면, 하지 말라고 해도 하게 됩니다. 바로 성령께서 하시는 일이 이 같은 본질적인 마음의 변화를 일으키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을 이제는 이끌고 다닐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여 그들 안에 임하신 새로운 능력으로 누가 보든 안 보든 땅끝까지 담대히 나갈 수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스승은 학생의 머리에 개념을 심어줌으로써 교육합니다.

그러나 성령께서는 인간의 영에 직접 작용함으로써 그분의 거룩하신 목적을 이루시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예배는 신앙생활의 핵심이죠.

누구는 분위기가 장엄하고 경건한 성당의 분위기를 좋아합니다. 누구는 청년들의 발랄함과 같은 활력이 넘치는 형식을 탈피한 자유스러운 분위기를 좋아합니다. 누구는 아주 짜임새 있게 잘 짜인 빈틈없는 예배를 좋아합니다.


그러나 결정적인 문제는 여기에 있습니다.

바로 성령님의 능력이 거기에 함께 하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거기에 영적인 감동이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거기에 주님을 닮아가는 변화가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위로부터의 힘이 없으면 변화를 가져올 수 없습니다.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없다면 그것은 공허하고 무의미한 것입니다.

혹 목사의 축도까지 마치고 일어나는 머리에, 이제 예배드렸으니 어디 가서 짠짠짠~ 재미있는 시간을 보낼까?” 하는 생각이 스쳐간 적은 없습니까? 과연 예배는 예배시간을 위한 예배였을까요? 예배 이후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가를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사람들이 잘못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능력을 과신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 안에 있는 삶이 본질이 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본질을 놓치고 액세서리에 치중하고 있는 것입니다. 보세요~

62:11 하나님이 한두 번 하신 말씀을 내가 들었나니 권능은 하나님께 속하였다 하셨도다

 

환자가 이미 죽은 상태에 있다면 아무리 좋은 인공호흡기로도 그를 살릴 수 없는 것입니다. 사후약처방은 아무런 힘도 쓸 수 없는 것입니다. 성령이 머물지 않는 인간은 그 어떤 것으로도 살려놓을 수 없습니다. 보세요~

 

6:63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


그러므로 <위로부터 임하는> 성령의 능력을 구해야 합니다.

아버지 하나님은 <위로부터 임하신> 아들 예수님을 보여주셨습니다.

독생자 예수님은 <위로부터 임하신> 성령님을 보여주셨습니다.

따라서 하십시오. 위로부터! 위로부터!

위로부터의 능력이 없이는 우리가 그 어떤 문제도 바르게 해결할 수 없고 바른 방향으로 갈 수도 없습니다.

 

다음으로는, “이 성에 머물라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성령이 임할 때까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이 성에 머물라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이 성은 어디입니까? 약 700미터 높이에 위치한 루살렘 성입니까?

여기에 예수께서는 의도하시는 바가 있습니다.

예수께서도 그동안 육체로 계셨고, 지역성을 넘어서 이스라엘 땅을 떠나신 적이 없으십니다.

이제는 지역성에 머물 수 없는 때가 되었습니다.

 

이에 지역적인 예루살렘에서 그 지역을 넘어서는 세계 어디에나 있게 될 교회로의 변화를 준비하신 것입니다.

육체로 계셨던 주 예수께서는 승천하시고, 세상 어디에서나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 위에 임하실 성령께서 일하셔야 했기 때문입니다.

 

이에 예루살렘에 거주지를 두었던 마가의 집 넓은 다락방에 제자들과 성도들이 모였습니다.

그들은 주님이 보내실 성령님의 임재를 기다리며 말씀을 붙잡고 기도에 힘썼습니다.

성령께서 능력으로 교회 위에 임하실 때까지 사사로운 삶을 접어두고 기도하며 기다린 그들 위에 성령께서 불같이 임했습니다.

 

우리는 오늘의 성령강림절에 함께 하고 있습니다.


이에 머물러야 할 자리가 있습니다

바로 예배의 자리로 함께한 교회입니다.


예배는 성령께서 임재하시는 요소를 대부분 갖추고 있습니다. 말씀이 있습니다. 기도가 있습니다. 찬송이 있습니다. 드림이 있습니다. 성도의 교제가 있습니다. 성령께서 충만하게 임재하시는 자리입니다.

 

주께서는 언제든지 성령으로 충만케 하실 만반의 준비를 하고 계십니다.

성도들이 받을 준비가 되면 부어주시는 것입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입혀주시기 위해서 부어주시는 것입니다.

 

이는 구약시대에도 고대하고 있던 성령의 강림입니다.

32:15 마침내 위에서부터 영을 우리에게 부어 주시리니

광야가 아름다운 밭이 되며 아름다운 밭을 숲으로 여기게 되리라

44:3 나는 목마른 자에게 물을 주며 마른 땅에 시내가 흐르게 하며

나의 영을 네 자손에게, 나의 복을 네 후손에게 부어 주리니

44:4 그들이 풀 가운데에서 솟아나기를 시냇가의 버들 같이 할 것이라

 

교회가 탄생하는 성령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는 사도행전에서 말씀합니다.

2:17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그리고 사도 바울은 디도서에서 말씀합니다.

3:6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그 성령을 풍성히 부어 주사

3:7 우리로 그의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 하심을 얻어 영생의 소망을 따라 상속자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그리고 에베소서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5:18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그렇습니다. 우리는 받으면 됩니다.


병들고 가난한 자들을 위해 사역을 한 A. B. 심슨 목사의 찬송가 몇 편은 우리가 즐겨부르는 찬송입니다. 그중에 은혜 구한 내게 은혜의 주님”, “어저께나 오늘이나”, “주와 같이 길 가는 것 즐거운 일 아닌가”, “내주 하나님 넓고 큰 은혜는 등의 은혜로운 찬송이 있습니다.

심슨 목사는 이런 말을 자주 했다고 합니다.

성령 충만을 받는 것은 숨을 쉬는 것만큼 쉽다. 숨을 내쉬고 들이쉬는 것이 어려운가?”

 

전에 함께 동역했던 부목사님께 지금 무슨 운동하고 있습니까?”하고 물은 적이 있습니다. 이렇게 자신있게 대답을 하더군요. “한 가지 운동을 하고 있는데, 숨쉬기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요 숨쉬기 운동만큼 쉬운 운동도 없습니다. 하지만, 막상 그 쉬운 숨도 멈추게 되면 죽음에 이르게 됩니다.

 

성령을 받는 것은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독생자까지 내어주신 하나님께서,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쉬운 길을 주신 것처럼,

당연히 약속하신 대로 우리에게 성령님을 보내셨고, 성령을 받는 것을 어렵게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이 성에 머물면 됩니다.

, 말씀과 기도와 찬송이 있고, 순종과 헌신이 있는 교회에 머물면 됩니다.

자동차가 주유소에 정기적으로 머물지 아니하면, 달릴 수 없습니다.

성도는 성령의 강림으로 비로소 출범한 교회에 머물러서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성령의 사람으로 항상 충전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성령으로 충만할 수 있습니까?

 

(1) 나 자신을 비워야 합니다.

 

내가 구원을 받을 때, 예수께서 나의 옛사람의 죄와 욕심을 깨뜨리시고 거듭나게 하셨습니다.

이미 그때에도 성령께서 일하셨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성령충만하다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처음에 회심할 때 받았던 성령보다 더욱 지속적으로 성령충만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첫 구원의 감동에 더하여, 계속해서 내가 비워지고 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로 가득 차야 합니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것을 봅니다.

바울이 갈라디아 성도들에게 말씀을 전합니다.

3:3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납니까?

신앙생활을 오래 할수록 나는 죽고 내 안에 예수님이 주인이 되어야 하는데, 내가 했다고 하는 일들이 쌓이면서 도리어 내가 많아지고 예수님은 작아지는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사두개인들과 바리새인들, 당시 종교인들이 그랬습니다.

 

성령께서 여러분 삶의 주인 되시기를 원하십니까?

성령께서 내 삶의 주인이 되시는 것이 성령충만입니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닌,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로 충만한 것이 성령충만입니다.

이에 나를 비우는 것입니다.

 

(2) 성령충만을 구해야 합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성령충만을 받는 자리에는 무엇이 있었습니까?

1:14 여자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과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

11:13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줄 것이 있어도 달라고 하지 않으면 주지 않는 것입니다. 왜요?

주어도 값진 것으로 여기지 않기 때문입니다.

한나가 자식이 없을 때, 자식을 눈물로 구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당시 최고의 인물인 사무엘을 낳게 하셨습니다.

결과적으로 볼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구하라고 하시는 것은, 보다 가치있는 것, 보다 영적인 것을 찾아가는 여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성령충만은 그 어떤 충만과도 바꿀 수 없는 최고의 선물입니다.

 

(3)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3:2 내가 너희에게서 다만 이것을 알려 하노니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이

율법의 행위로냐 혹은 듣고 믿음으로냐

 

이 악한 세상에서도 믿음을 부분적으로 사용합니다.

1979년 단군교를 만든 교주였고, 대통령과 고위 인사들의 입각을 점쳤던 그 유명한 박수무당 김해경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어려서 교회를 다녔다가, 귀신에게 이끌려 무당이 된 후, 오히려 기독교를 말살하려고 힘썼던 사람이었습니다.

벼락을 맞은 대추나무에 쓴 부적은 가장 비싼 값을 받는다고 합니다.

그가 누구에게 벼락 맞은 대추나무에 부적을 써주었는데, 당시 3000만 원 정도 되었다고 합니다. 부적을 받은 사람이 자랑을 하고 다니다가, 모 대학교수가 대추나무는 건조하기 때문에 다른 나무보다 벼락에 잘 맞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화가 치밀어 올라서 김해경 무당에게 따지러 왔습니다. 가짜 대추나무에 부적을 써주었을 것으로 여겼기 때문이죠.

그때 이 단군 교주 무당이 답변한 말이 무엇인지 아세요?

네가 믿는 대로 된다.”

 

믿는 대로 된다는 말을 한 무당 김해경씨가 다시 하나님의 부르심을 체험을 하게 됩니다. 입에서 하나님이 자꾸 나오는 것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 이에 귀신의 영이 아닌 성령의 사람이 되었고, 수많은 무당과 교도들을 거느린 단군교를 1993년 해산시켰던 것입니다. 그후 장신대를 졸업하고 목사가 되었습니다.

 

이 세상에서 믿는다고 하는 것은 사실 속는 것입니다.

목사가 된 김해경씨는 이렇게 말합니다. “귀신은 하나를 주고 아홉을 빼앗아 갑니다.”

속아 넘어가는 것이죠. 아담과 하와가 사탄에게 속은 바로 그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받은 믿음은 진실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받은 것입니다.

7:38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7:39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성도 여러분에게 이러한 믿음이 있는 줄로 압니다. 그렇습니다.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믿음을 주시고, 그 믿음과 함께 성령의 능력으로 역사하십니다.

 

(4) 주 예수님의 순종을 배워야 합니다.

 

5:32 ...하나님이 자기에게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

 

성령충만한 삶은 순종의 본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충만한 삶입니다.

예수께서는 어떻게 순종하셨습니까?

예수께서 이 세상에 보냄을 받으시고 승천하시기까지 묵상해보세요.

어떻게 그보다 좋을 수 없는 천상의 보좌를 내려놓으시고 낮고 천한 곳에 오셨는지...

어떻게 생명을 창조하신 분이 고통스런 죽음에 던져지기까지 당신을 내려놓으실 수 있었는지...

어떻게 부활의 영광을 입으신 분이 이 세상의 영광을 다 내려놓고 승천하실 수 있었는지...

 

완전한 순종은 나를 내려놓고 내가 죽어지는 것입니다.

이 같은 순종의 대가는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모든 하나님의 영광을 그와 함께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말씀을 마음에 다시 담고 일어나야 하겠습니다.

24:49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으로 입혀질 때까지 이 성에 머물라 하시니라

 

성도 여러분! 오늘 말씀을 정리합니다.

 

성령께서 나를 지배하지 않게 되면,

세상의 영이 나를 지배하게 됩니다.


이에 다시 성령의 능력으로 입기 위해

(1) 나 자신을 비워야 하겠습니다.

(2) 성령충만을 구해야 하겠습니다.

(3) 믿음으로 살아야 하겠습니다.

(4) 주 예수님의 순종을 배워야 하겠습니다.

 

"이 성에 머물라"

새로운 거룩한 성 말씀과 기도가 있는 교회!

예배의 자리에 함께 머물러 성령의 능력을 입은 자로서

세상으로 나가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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