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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낮예배
2021.09.25 22:19

내 마음 다스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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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한봉희목사
설교일 2021-9-26낮
본문말씀 잠언16:32


내 마음 다스리기 / 잠언16:32

 

16:32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

 

지난 주간 추석 명절을 지냈습니다.

혹이라도, 즐거운 명절이 되지 못하고, 마음이 불편하여 돌아오시지는 않았습니까?

 

사람의 마음은 쉽게 요동합니다.

혹 나는 마음을 잘 다스리고 있다고 자신하고 있지는 않은가요?


잠간 테스트 해보죠....나의 경우에는 어떠했는가? 잠시 돌아보면 됩니다.

기다리는 대중교통이 오랫동안 오지 않을 때, 아이가 계속 울 때개가 계속 짖을 때끼어들기 차가 있을 때단순한 일을 수없이 반복할 때나보다 친구가 하는 일이 더 잘 될 때앞에 걸어가는 행인이 담배를 피우며 갈 때누가 나에게 욕을 할 때..........”

오늘 우리는 <내 마음 다스리기> 되어야 한다는 말씀을 듣고자 합니다.

 

러시아 민화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운 좋게 마술램프를 발견한 농부가 있었습니다. 램프를 문지르자 램프 속에서 지니가 나타나 소원을 말하라고 합니다. 농부는 옆집에 젖소가 있는데 온 가족을 다 먹이고도 남아서 그들이 우유를 팔아 큰 부자가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농부의 얘길 듣던 지니옆집처럼 우유가 잘 나오는 젖소를 구해드릴까요?”"라고 물었습니다.

이에 농부가 대답했습니다. 아니, 옆집 젖소를 죽여줘!”

 

나보다 남이 잘 될 때, 마음에 있는 질투심이 발동한 것입니다.

 

미국의 소설가 고어 비달은 친구가 성공할 때마다 나는 조금씩 죽는다.”고 고백한 바 있습니다.

우리나라 속담에도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안타까운 말이 있습니다.

, 나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이 나보다 잘 될 때, 시기와 질투는 마음을 휘젓게 됩니다.

 

이것을 알고 계신 예수께서 말씀하십니다.

5:3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6:20 예수께서 눈을 들어 제자들을 보시고 이르시되

너희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것임이요

 

이 말씀은 그냥 듣기에 좋은 말씀만은 아닙니다.

실제로 내면의 마음을 다스리고, 나아가 외형적인 비교의식에 빠지지 않는 그리스도인에게 주시는 새사람의 영성입니다. 그런데도 육신을 가진 사람으로서 마음을 다스린다고 하는 것이 그렇게 만만치 않습니다.

 

어느 수도사가 오랫동안 모진 수련 생활 끝에, 드디어 온 천하가 우러러볼 성자가 되어갈 때가 되었습니다. 이쯤 마귀들이 회의를 열었습니다. 이 수도사를 타락시켜보자는 것이었습니다. 마귀의 졸개들이 수도사를 유혹하기 시작했습니다. 금덩어리를 보냈으나 눈도 깜짝하지 않았습니다. 여쁜 미녀를 보냈지만 돌을 보듯 무표정했습니다. 의심과 공포의 씨앗을 심으려 했지만 조금도 흔들림이 없었습니다. 모든 수법을 다 써 봤지만, 도무지 요지부동이었습니다.

그러자 보고 있던 노련한 대장 마귀가 나섰습니다.

그리고 수도사의 귀에 대고 뭐라고 속삭였습니다. 그러자 그 수도사의 얼굴은 시기심으로 붉어지며 화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이에 졸개 마귀가 대장 마귀에게 도대체 뭐라고 그러셨느냐고 물었습니다. 대장 마귀는 단지 이 한마디만 했을 뿐이라고 했습니다.

당신 친구가 알렉산드리아에서 방금 주교로 뽑힐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서 5장에서 육체의 일에 대하여 열거합니다.

이에는 음행으로부터 시작하여 술취함과 방탕함에 이르기까지 15가지 이상 열거하고 있습니다.

그중에서 시기와 분냄, 그리고 투기 곧 질투를 담고 있습니다.

 

누가 더 잘하고, 누가 더 못하고, 여기 시기와 질투에 빠지면 평생 마음을 다스릴 수 없습니다.

주께서 말씀하신 대로, 누구는 다섯 달란트, 누구는 두 달란트, 누구는 한 달란트의 능력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 삶의 결과는 같은 복을 누리게 하셨습니다. 그런데도 이미 한 달란트 받은 자는 비교의식과 질투 속에서 불행을 스스로 불러들이고 말았습니다. 그 한 달란트마저 잃은 자 되고 말았습니다.

 

오늘 본문 잠언 1632절을 함께 읽습니다.


16:32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

 

오늘 잠언 이 한 말씀은 마음의 평화를 얻고 복있는 자로 살아가는 매우 소중한 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 세상을 살면서, 분노 조절을 하나, , , , 다섯을 세면서 다스리는 자는, 용사의 손에서 쏜살같이 날아가는 화살보다도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또한  자신의 마음의 성을 다스려 평정하는 자는, 방어벽이 잘 세워진 높은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음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특히 살면서 가장 많이 일어나는 분쟁은 <>에서 비롯됩니다.

대화하다 보면, 그 누구를 막론하고 내 입에서 나가는 말이 상대방을 이기기를 원합니다.

하지만, 올바른 대화법에서는 대화 중 남을 이기려 하지 말라고 합니다. 이해하기 힘든 사람을 이겨보려는 대화법은 결국 지는 대화법이라는 겁니다. 상대방이 내 말뜻을 이해하지 못할 때는 내 생각은 이렇습니다.” 이렇게 말하면서 대화를 마무리하라고 합니다.

더욱이 두 번 말을 하면 그 말은 잔소리가 되고, 상대방은 이미 귀를 막아버리게 됩니다.

 

꿀벌은 꽃에서 꿀을 따가지만, 꽃에 상처를 남기지 않습니다. 오히려 열매를 남기게 됩니다.

결국 벌과 꽃은 상생을 하는 것입니다.

남을 죽게 하는 거미처럼 살지 않고, 열매를 낳는 꿀벌처럼 사는 것입니다.

 

미국의 3대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을 거듭 기억합니다.

누가 내 등잔의 심지에서 불을 붙여가도 불은 줄어들지 않는다.”

 

온 세상의 구원을 위해서 오신 예수님을 보세요.


실로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어디에 거하셨습니까?

만왕의 왕으로 왕궁에 거하셨습니까? 아닙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3:20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그러면 어떻게 주님이 내 마음에 거하실 수 있습니까?

3:17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시옵고

세상의 그 어떤 것으로도, 재물도 아니고, 권력도 아닌, 마음에 주신 믿음으로 말미암아 주께서 내 마음에 거하시는 겁니다. 내 마음의 집을 짓는데, 세상의 그 어떤 것으로도 대신할 수 있는 것이 없기에, 구주 예수님을 마음에 영접하는 믿음으로 하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주께서 내 마음에 거하심이 없이는 내 마음을 다스리는 데 성공할 수 없습니다.

2: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 누구라도 <아성>을 쌓으면, 마음의 성을 다스릴 수도 없고, 결국에는 무너지게 됩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아성을 쌓기 위해서 오시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머리이시면서도, 오히려 종으로 오셨습니다.

 

핍박자 사울에게 찾아오셔서 이방인의 사도로 세움을 받은 바울은 예수님을 이렇게 증언했습니다. 바로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입니다.

2: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2: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2: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그래요! 이 분, 예수께서 내 마음에 집을 짓지 않으시면,

그 어느 누구도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는 데 실패하고 말 것입니다.

 

하루는 가르침을 받기 위해 멀리서 찾아온 한 수련생에게 구도자가 물었습니다.

가시나무를 알고 있느냐?” 수련생은 구도자의 물음에 공손히 대답합니다. “. 알고 있습니다.” 그럼 가시나무는 어떤 나무들이 있느냐?” 탱자나무, 찔레나무, 장미꽃 나무, 아카시아 등이 있습니다.”

구도자는 수련생에게 다시 물었습니다. 그럼 가시 달린 나무로 너비가 한 아름 되는 나무를 보았느냐?” 수련생은 구도자의 물음에 잠시 생각하다가 이렇게 대답합니다. “못 보았습니다.”

 

구도자는 수련생의 눈을 바라보며 말합니다.

가시가 있는 나무는 한 아름 되는 큰 나무로 자랄 수 없느니라. 큰 나무라야 다용도로 쓸 수 있지만, 가시가 있는 나무로는 궁궐도, 집도 지을 수 없지. 사람도 마찬가지니라. 네 속에 가시가 있다면 그것을 먼저 제거해야 할 것이다.”

 

그렇습니다. 마음의 가시는 자기도 찌르고 남도 찔러서 아프게 합니다상처를 내서 피를 흘리게 합니다. 입을 통해 나온 말의 가시, 손발을 통해서 나온 육신의 가시, 욕심을 통해서 나온 마음의 가시, 나무가 가시가 없어야 다용도로 널리 쓰이듯, 사람도 마음의 가시가 없어야 유익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날마다 말씀과 기도로 마음을 살펴 가시를 제거해야 합니다.

 

여러분! 내가 남보다 손해보는 것 같아서, 뭔가 눌리는 것 같아서 마음을 다스리기가 어려운가요?

 

여기 반대되는 이야기를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남보다 못하다고 여길 때도, 마음을 다스리기가 쉽지 않았는데,

내가 하는 일이 잘 될 때도 마음을 다스리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에 사도 바울은 2:2절부터 이렇게 말씀합니다.

2:2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마음>을 품어

2:3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2:4 각각 자기 일을 돌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

 

남보다 낫다고, 남보다 위에 있다고 허영의 함정에 빠지지 말고, 오히려 겸손하라는 겁니다.

 

러시아의 민담 하나 더 들어보세요.

한 가난한 농부가 살았습니다. 그는 이른 새벽부터 밭에 나가 열심히 일했지요. 쟁기질이 끝나고 시장기가 돌 무렵이면 나무 밑에 놓아둔 빵 한 조각을 먹곤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빵이 감쪽같이 사라졌습니다. 그는 맹물로 달래며 말했습니다. “오늘 하루 굶는다고 죽지는 않겠지. 누구든 그 빵이 필요했으니 가져갔겠지. 그 사람이라도 잘 먹으면 좋겠군.”

 

근데 그 빵을 훔친 것은 악마였습니다. 악마는 농부가 죄를 짓게 만들려고 빵을 훔쳤던 것입니다. 하지만 농부는 빵 도둑에게 악담을 퍼붓기는커녕 오히려 축복했습니다. 그 악마는 대장 악마에게 야단을 맞았다. 악마다운 지혜가 부족했다는 것입니다.

 

악마는 이번에는 다른 술책을 꾸몄습니다.

농부의 빵을 훔치는 대신 농부의 빵을 늘려주기로 한 겁니다.

하인으로 변장한 악마의 도움으로 농부는 가뭄이 들거나 홍수가 들어도 많은 수확을 하게 되었습니다. 곡식이 남아돌자 악마는 그것으로 술을 만들라고 부추겼습니다. 마침내 허기를 달래주던 일용할 양식이 쾌락을 위한 도구로 바뀐 것입니다. 술이 생기자 농부는 친구들을 불러들여 먹고 마시며 놀았습니다. 술자리를 마칠 즈음이면, 너나 할 것 없이 인간의 모습은 간데없고 동물들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농부를 넘어뜨린 비책을 묻는 대장 악마에게 악마는 보고합니다.

자기가 한 일이라곤 농부에게 필요한 양보다 더 많은 수확을 준 것밖엔 없다고 했습니다.

남아도는 것이 생기자 농부는 하나님이 주신 선물을 자신의 쾌락을 위해 쓰기 시작했고, 그때부터 인간의 마음에 묶여 있던 여우와 늑대와 돼지의 피가 다 뛰쳐나오더라는 것이었습니다.

톨스토이의 단편 <작은 악마와 빵 한 조각>에 나오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렇습니다. 부족함보다는 풍요가 오히려 화가 되는 경우입니다. 모자람보다는 남는 것이 유혹이 됩니다. 모자람과 남음 사이에 적절한 긴장과 절제가 사람을 성숙으로 이끌어갑니다. 하나님은 인생으로 하여금 부하게도 하시고, 가난하게도 하시면서, 그 마음의 훈련을 하시는 겁니다.

 

또 다른 경우를 볼까요?

미국 후생국에 근무하는 한 여인이 어느 날, 장애로 절둑거리는 어린 아들을 직장으로 데리고 왔습니다. 그 소년이 똑똑하고 총명하게 보여서 그곳에 근무하는 한 의사가 큰 비용을 들여 수술을 해 주어 낫게 했습니다. 그때 그 여인은 축복받았다! 응답받았다!”고 하면서 좋아했습니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어느 날, 소년을 치료했던 의사와 그 여인이 우연히 만나게 되었습니다. 의사가 반갑게 물었습니다. “똑똑했던 그 아이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과학자? 의사? 사업가? 지금 잘 살고 있습니까? 어디에 살고 있죠?”

그러자 여인이 시무룩하게 대답합니다.

그 녀석은 사람을 죽인 죄로 지금 감옥에 살고 있습니다.”

 

20년 전에 소년은 육신으로는 걷는 복은 받았지만, 마음으로 걸어가는 길에 대해서는 배우지 못한 것입니다.

안락과 형통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먼저 배워야 할 것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하는 것입니다. 마음을 바르게 지키고 다스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내려주신 복이 세월이 지나도 변함없는 더욱 유익한 복이 되는 것입니다.

받은 복을 바르게 누리지 못하면 그 복이 오히려 화가 될 수도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자신에게 주어진 복을 누리지 못하고, 오히려 다른 복을 찾아다니고 있습니다.

 

이 때에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아담! 곧 인간은 마음을 둘 곳을 찾지 못했습니다.

당연히 내 마음을 다스려 주시는 주인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인간의 마음은 항상 전쟁터와 같았습니다.

 

그렇기에 우리에게 천국을 담을 수 있는 마음을 주신 주 예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그 마음을 치유하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입니다.

 

보세요! 예수께서 우리에게 보내주신 초청장입니다.


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11: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11:30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 내 마음 다스리기에 성공하십시오. 그러면 마음의 쉼을 얻습니다.

마음을 다스리시는 감독 주 예수님께 마음을 거실로 드리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밖에서 이래라저래라하시는 분이 아니라, 내 마음에 들어와 머무시는 분입니다.

내가 아파할 때 같이 아파하시고, 내가 슬퍼할 때 같이 슬퍼하시고, 내가 무거워할 때 함께 짐을 지시고 계신 분입니다.

 

평화의 가족 여러분!

마음은 종종 시기와 질투와 허영과 쾌락과 탐심과 염려 등으로 쉴 틈을 얻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늘 내 마음 다스리기에 주신 말씀을 다음 세 절의 말씀으로 담고 일어납니다.

 

16:32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


2: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11: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축도후 영상>

 

마음의 전쟁터를 보라!

16:32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


예수의 마음을 품으라!

2: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마음의 쉼을 얻으라!

11: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잠언 16:32

내 마음 다스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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