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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낮예배
2020.07.12 17:42

뒤바뀐 가치의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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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한봉희목사
설교일 2020-7-12낮
본문말씀 로마서8:5-11


뒤바뀐 가치의 세상 / 로마서8:5-11


8:5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8:6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8:7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8:8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8:9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8:10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말미암아 죽은 것이나 영은 의로 말미암아 살아 있는 것이니라

8:11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헬렌 켈러는 행복에 대하여 이렇게 말한 바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잘 모르고 있다. 행복은 자기만족에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가치) 있는 일에 (충실)할 때 얻어지는 것이다.”

 

오늘은 이 물음으로부터 말씀을 열겠습니다.

인간의 현주소는 어디입니까?

인간은 하나님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셨습니다.

인간은 성령께서 내주하심으로 하나님과 교통하는 삶이 될 때,

비로소 생명가치 있는 삶을 살 수 있도록 지음받았습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인간은 성령이 내주하시는 영을 좇아 살지 못하고,

육신을 따라 사는 어리석음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문제는 인간이 이 세상에 사는 동안 그 육신에게 져서 육신의 종이 되어 살다가

영원한 사망에 이르게 된다는 데 있습니다.

하지만, 성령의 사람으로 살면서 생명의 가치를 충만케 하고,

사랑과 진리에 이르는 생명 가치를 지닌 천국백성으로 살 때,

영생에 이르는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인간의 심령을 들여다보면;

육적인 자아와 영적인 자아가 끊임없는 끌고 당기는 긴장관계를 갖고 있습니다.

이에 대하여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8:5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8:6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이 엄연한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떠남으로

인간은 뒤바뀐 가치에 종이 되고 말았습니다.


곧 영을 따르지 않고 육을 우선하여 따르게 되었습니다.

가치가 뒤바뀐 세상입니다. 순리가 역리로 뒤집힌 세상입니다.

성소수자의 인권을 존중하려다가, 더 큰 가치인 하나님의 진리와 공익과 도의를 무너뜨리는 세상으로 추락하고 있는 것입니다.

원숭이가 병속에 든 먹이를 보고 손을 넣어 그 먹이를 잡고 그것을 놓지 않으려고 하다가, 원숭이 자신이 통째로 잡혀먹히는 사실을 알지 못합니다. 더 숭고한 가치, 더 근본의 가치, 더 영원한 가치를 보지 못하는 것이 다름아닌 뒤집힌 가치에 자신을 걸어버리는 어리석음인 것입니다.

예수께서 성전 뜰에서 장사하는 자들의 상을 뒤엎어버리신 일을 알고 있습니다.

성전이 존재하는 참가치를 살려주지 못하고 오히려 성전을 이용하여 사리사욕에 재물에 눈이 어두워서 가치를 뒤집어 놓은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그들의 상을 뒤엎어버린 것입니다.

 

영적 가치와 육적 가치의 핵심에는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영적인 가치의 핵심에는 희생적 사랑이 있습니다.

반대로 육적인 가치의 핵심에는 이기적 욕망이 있습니다.

영적인 사람은 내가 죽고자 하기에 오히려 살아나고,

육적인 사람은 내가 살고자 하기에 오히려 죽음에 이르는 것입니다.

 

이러한 영적인 가치를 육적인 가치 앞에 두도록 설계하신 분은 누구십니까?

=>여호와 하나님이 아니십니까?

그렇습니다. 인간의 가치를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하실 수 있는 분은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아셔야 합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우리를 영적인 가치에 따라 육신을 사용하도록 지으셨습니다.


사도 요한도 이 우선순위를 잘 알고 있습니다.

요한삼서 1:2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그렇게 될 때 인간은 영원한 생명의 가치를 지니고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다시 확인해보세요.

8:6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안타깝게도 창세기6:3에서 이 말씀을 봅니다.

6:3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나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신이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백이십 년이 되리라 하시니라

 

석 달 전인 4월 셋째 주일에 세 가지 핵심가치를 가진 사람에 대하여 말씀을 들으신 바 있습니다.

첫 번째 가치는 하나님이 있는 사람에게서 찾을 수 있었습니다.

두 번째 가치는 이웃이 있는 사람에게서 찾을 수 있었습니다.

세 번째 가치는 내가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 것을 아는 사람에게서 찾을 수가 있었습니다.

 

육신이 되어버린 사람의 문제는

스스로 뒤바뀐 가치의 세상에서 스스로 빠져나올 수 없다는 것입니다.


8:7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2:22 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그의 호흡은 코에 있나니 셈할 가치가 어디 있느냐

코까지 가려버린 코로나 바이러스가 물러갈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이 육신이 되어버린 심각한 문제를 하나님께서 해결하십니다.

 

8:3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말미암아 (1)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8:4 육신을 따르지 않고 (2)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여기에는 (1)하나님의 사랑과 (2)하나님의 의가 나타났습니다.

사랑이 없는 의도 안 되고, 의가 없는 사랑도 안 되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를 다 이루신 분이 육신의 모양을 입고 오신 하나님, 오직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다 이루었다는 선언을 남기신 주님의 십자가는 내가 죽지 않으면 다시 살 수 없다는 것을 이 세상에 보이신 가장 놀라운 역사입니다.

 

그렇습니다.

내 안에 주님이 들어오실 때 비로소!

육신이 되어버린 인간이 죽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다시 살아나는 것입니다.

 

8:9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8:10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말미암아 죽은 것이나 영은 의로 말미암아 살아 있는 것이니라

8:11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다시 이 말씀을 담으셔야 합니다. (함께)

8:6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하나님의 자녀된 여러분!

여기 바이러스와 바이러스를 이기는 항체가 있습니다.

 

바로 육신의 생각은 사망 바이러스입니다.

그러나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의 항체입니다.

이러한 사망과 고통의 바이러스를 깨뜨리고, 생명과 평안의 항체를 만드는 공장이 있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십자가와 성령님의 임재하심으로 세워진 <교회>입니다.

 

사도바울은 에베소교회에서 목회를 하고 있는 디모데에게 교회에 대하여 전합니다.

딤전 3:15 ...이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니라

 

그런데 어떻습니까?

가치가 뒤집힌 세상의 권세는 진리의 기둥과 터인 교회를 핍박합니다.

4:29 그러나 그 때에 육체를 따라 난 자

성령을 따라 난 자를 박해한 것 같이 이제도 그러하도다


그럼에도 오히려 교회는 고난 속에서 더욱 소중한 열매를 맺어왔습니다.




여기 1943년 경 순교한 이름 모를 어린 순교자의 기도문이 있습니다.


오 주여, 선한 마음을 가진 자뿐 아니라,

악한 마음을 가진 자도 기억하소서.

그러나 그들이 우리에게 준 고통은 기억하지 마소서.

대신, 그 고통으로 우리가 맺은 열매를 기억하소서.

우리의 친교, 서로에 대한 충성, 겸손과 용기와 관용,

그런 고난 가운데서 자라난 우리의 굳건한 마음을 거억하소서.

핍박자들이 주님께 심판 받을 때,

우리가 맺은 이 모든 열매들을 보시고 그들을 용서하소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자녀는 호적과 함께 현주소를 옮긴 사람입니다.


전 주소지?

2:2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2:3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그러나 옮긴 주소지는?

8:14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8:15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예수께서 우리를 세대주가 사탄으로 되어 있던 호적에서 파내셔서, 하나님을 세대주로 하는 호적으로 옮겨주셨습니다. 이로서 하나님의 양자가 되었습니다.

 

양자에 대해서 좀더 알아봅니다.

양자(υιοθεσια 휘오데시아) = 아들의(υιος 휘오스) + 위치에 두다(i{sthmi 히스테미)

그렇습니다. 양자라는 말은 아들의 위치에 두다는 뜻입니다.

로마법에서는 양자는 양부의 가산뿐 아니고 사회적 신분과 명예까지 상속받게 됩니다.

 

양자의 영을 받는 사람은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게 됩니다.

이 말에서 아빠아람어(abba) 그대로의 발음으로 우리말 아빠와 같습니다. ‘아버지헬라어 파테르’(pathvr)를 번역한 것입니다. 이렇게 두 나라말로 거듭한 것은 매우 강조한 표현입니다.

 

사탄은 사람들을 자신의 자식으로 끌어들여 얼마 동안 인간의 삶을 부유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권력을 줄 수도 있습니다. 건강을 줄 수도 있습니다. 세상의 영광을 줄 수도 있습니다.

이에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보다 눈에 보이는 세상의 영광이 더 좋게 보입니다. 결국 세상을 사랑하는 길로 갑니다. 그러나 거기에 거짓된 가치가 있습니다. 역리가 순리보다 더 땡깁니다.

 

요일 2:16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요일 2:17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주인이 왜 닭에게 정성껏 먹이를 주며 키웁니까? 예뻐서입니까

아닙니다.

알 빼먹고 알 낳지 못할 때, 잡아먹으려고 그러는 겁니다.

마찬가지로 마귀는 우리를 잡아먹으려고 좋아하는 것을 계속 주어서 세속인 만족에 중독자가 되게 합니다. 결국 내가 누군지 그 정체성마저 잃게 합니다. 결국은 사탄에게 잡아먹히고 맙니다. 그것이 멸망에 이르는 사망입니다. 살아 있으나 죽은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결코 이 말씀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늘 여러번 반복해서 읽은 말씀입니다.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8:6)

 

여러분! 자신을 돌아봅니다.

내가 늘 생각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육신의 생각입니까? 영의 생각입니까?

코로나는 우리를 시험하고 있습니다.

내가 지금 육신에 속한 사람인가? 아니면 영에 속한 사람인가?

 

고전 2:12 말씀 한 절 담고 말씀을 맺겠습니다.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성도 여러분!

성령의 임재 안에서 인생의 최고 가치를 찾아가며

하나님이 은혜로 주신 것이 무엇인지를 더욱 알아가는 인생여정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축도후 영상>


육신의 생각은 사망 <바이러스>입니다.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의 <항체>입니다.

 

지금도 <교회>

바이러스를 물리치는

항체를 전하고 있습니다.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8:6)

 

로마서8:5-11

뒤바뀐 가치의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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