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회원가입

온 세상의 소망 오직 예수로! 오직 복음으로!

주일낮예배
2021.10.16 21:33

두 사람의 가치

조회 수 214 추천 수 1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Extra Form
설교자 한봉희목사
설교일 2021-10-17낮
본문말씀 전도서4:9-12


두 사람의  가치 / 전도서4:9-12                            


4:9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그들이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

4:10 혹시 그들이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킬 자가 없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라

4:11 또 두 사람이 함께 누우면 따뜻하거니와 한 사람이면 어찌 따뜻하랴

4:12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맞설 수 있나니 세 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

 

세상은 점점 홀로 사는 세상이 되고 있습니다.

혼밥’,  ‘1인 세대’, ‘독신남’, ‘독신녀’, ‘한 자녀등의 말이 점점 익숙해지고 있습니다.

이에 홀로 있다 넘어져도 일으켜줄 사람이 옆에 없는 세상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더욱이 가족의 개념, 형제, 자매의 개념조차 그 자리를 잃어가고 있습니다.  

 

인간의 역사에 바벨탑의 역사가 있습니다.

바벨탑은 인간이 높아지고자 하는 탐욕, 인간의 이름을 내고자 하는 명예욕과 과시욕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상징이 아닙니다. 지금도 누가 더 높은 빌딩을 가지느냐, 누가 더 센 권력을 가지느냐, 어떤 나라가 세계를 손에 쥐고 흔들 수 있는 강력한 국가가 되느냐, 누가 신과 같이 되느냐... 여전히 바벨탑을 쌓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세상의 결국은 바벨이라는 단어의 뜻처럼, 혼돈, 혼란, 떠들썩한 소리들로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고대의 바벨론제국 역시 이 이름을 가지고 왔습니다.

하나님의 진노를 산 이 같은 인간의 세계는 결국 언어가 갈라져서 서로 소통하지 못하게 되었고, 흩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함께의 은혜와 축복을 크게 손상시키고 말았습니다. 결국은 홀로 남고, 자신도 잃게 되는 불행을 초래하게 된 것입니다.

 

성경에는 어떠한 경우로 쓰였든, ‘함께라는 단어가 무려 1500회 가까이 사용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에 비하여 홀로라는 단어는 50여 회 사용되어 크게 비교가 됩니다. 그만큼 함께라는 의미와 역할이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공장에서 한 사람이 철사를 가지고 바늘을 만들면, 하루종일 25개를 만들 수 있는데, 두 사람이 함께 만들면, 두 배인 50개를 만들면 되는데, 실재는 그것의 열 배도 넘는 625개를 만들 수 있다고 합니다.

말 한 마리가 마차를 끌면 1t의 무게를 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두 마리 말이 같이 끌면, 2t이 아닌 그 이상 5t을 끌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이 100리를 갈 수 있다면, 두 사람이 같이 가면 1000길도 갈 수 있습니다.

함께가 있는 곳에 이러한 시너지 효과가 있습니다.

, ‘1+1=2’가 아니라, ‘1+1=무한이라는 가치를 갖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 세상에 하나님의 뜻을 펼치고자 하실 때, 한 사람으로는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더욱이 한 사람으로서는 하나님의 본성이신 사랑을 계시할 방도가 없으셨고, 자녀를 낳음으로 세상에 하나님의 사람으로 충만케 할 수도 없으셨습니다.

 

이에 아담을 재우시고는 아담의 갈빗대를 취하여 동반자인 아내를 지으셔서 아담 앞에 세우셨습니다. 비로소 두 사람이 하나됨으로 이룰 수 있는 세계를 펼치시기 시작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처음부터 우리와 함께하심으로하나님의 뜻을 행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애굽에서 고난을 겪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케 하실 때, 모세에게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3:12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 네가 그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

모세를 그냥 애굽에 보내시지 않았다는 말씀입니다. 나 여호와가 함께한다는 말씀입니다.

 

모세를 이어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는 여호수아에게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1:9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모세의 하나님이 이제는 여호수아의 하나님이 되신다는 말씀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일수록 기억하고 있는 은혜로운 말씀이 있습니다.

41:10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하나님께서 내 손을 놓아버린 적이 없으시다는 말씀입니다.

 

이제 함께를 온전히 회복하신 분이 있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이 땅에 오실 때도, 함께요, 승천하실 때에도 함께입니다.

     

1:23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28: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예수께서는 이 <함께>를 회복하시고자 <홀로> 십자가를 지셔야 했습니다.

 

내게로 내려오셔서 함께 하시는 주님을, 그리고 옆에는 또 한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게 하심으로, 함께하는 은혜의 삶을,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복된 삶을 회복하라는 것입니다.

 

지난주일 말씀에서 이루는 삶의 모토라는 제목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야곱이 돌베개를 하고 노숙하던 자리에서 사닥다리의 꿈에서 깨어나 하나님께 서원기도를 올린 말씀을 들었습니다.

나와 함께 하시는 나의 하나님을 고백하고 믿음의 삶으로 이루고, 예배자의 삶으로 이루고,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는 삶을 보았습니다.

 

오늘 하나님은 우리에게 두 사람이 함께함으로 이루는 인생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에 몇 가지 담아야 할 말씀이 있습니다.

 

1. 두 사람은 <기도의 역사>를 이루게 합니다.

 

18:19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들을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한 사람의 기도는 자칫 이기적인 기도에 빠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두 사람이 합심하는 기도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이 땅에 이루게 합니다. 두 사람의 기도에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믿음과 사랑과 소망을 채우십니다. 두 사람이 함께하는 기도의 자리를 찾으시기 바랍니다.

 

그곳에 주님이 함께하심을 기뻐하십니다.

18:20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여기에는 그 어느 누구도 주인이 되지 않습니다. 권력자도 되지 않습니다. 오직 섬김의 주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에 주께서 그들의 기도를 이루시는 것입니다.    

 

2. 두 사람은 <사랑의 역사>를 이루게 합니다.

 

사랑의 하나님은 이 세상을 한 사람이 만들 수 없어서 두 사람이 필요했습니다.

둘은 <사랑의 수>입니다.

 

2:18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2:24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사랑의 하나님이 세우시는 가정은 두 사람이 하나되는 함께하는 원리에 두셨습니다.

 

하나님은 둘이 하나 될 때 비로소 이룰 수 있게 하셨습니다.

 

정철의 [한글자]라는 책에서, ‘이라는 짧은 시를 보게 됩니다.


   앞도 하나,

   뒤도 하나,

   하지만 옆은 좌우 둘.

 

많은 사람이 앞만 보며 달립니다. 옆에 함께 한 사람들이 왜 있어야 하는지를 알지 못한 채 앞으로만 달려갔습니다. 때로는 지난 세월 뒤를 바라보면서 탓하기도 하고 후회하기도 하였습니다. 참으로 옆에 있는 사람을 보지 못하고 말입니다. 아니 하나님이 보내주신 사람을 보지 못한 채 말입니다. 또한 내가 그 사람 곁에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을 잊은 채 말입니다.

 

실로 앞에도 하나, 뒤에도 하나이지만, 옆에는 좌우 둘이 있습니다.

두 사람의 은혜는 항상 옆에 있습니다.

 

오프라 윈프리는 홀로 버림받다시피 한 삶에서 일어나 많은 사람에게 유익을 끼치는 리더로서의 여성이 되지 않았습니까? 그가 한 말 중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모든 일을 혼자서 할 수는 없다.  목표를 이루기 위해 남의 도움 받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한 그루의 나무로는 숲이 되지 않습니다. 한 올의 실로는 줄을 만들 수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실로 하나님은 이 세상을 한 사람이 만들 수 없어서 두 사람으로부터 시작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평화의 가족 여러분!


3. 두 사람은 서로 기대어 삽니다.

비로소 <쉼과 평안>을 이루게 합니다.

 

두 개의 막대기가 서로를 기대어서 사람 자가 되지 않습니까!

홀로 설 수 없다는 말이죠.

일상생활에서 우리는 수많은 사람에 기대어 살아갑니다.

사람이 사람에게 비스듬히 기댄다는 것은 그의 마음에 내 맘이 스며드는 일입니다.

그가 슬프면  내 마음에도 슬픔이 번지고 그가 웃으면 내 마음에도 기쁨이 퍼집니다.

 

여기 기대며 살 수 없었던 사람이 있습니다.

 

사진 한 장을 보시겠습니다.

[방송실 : 제임스 보웬과 밥 고양이 사진 송출]

 

마약과 노숙 생활을 하던 한 남자가 있었습니다.

그의 인생이 한 고양이를 만나며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바로 '제임스 보웬'''이라는 이름의 고양이입니다.

보웬은 부모님의 이혼을 겪은 후, 잦은 이사로 친구를 사귀지 못했습니다. 학교에서는 따돌림을 당했습니다. 결국 고등학교 2학년 때 학교를 그만두며 거리 생활을 하게 됐습니다. 거리에서 잠을 자거나 대피소에 머무르곤 하였습니다. 구걸하거나 종종 연주하며 얻은 돈으로 생활했는데, 노숙 생활의 고통을 회피하기 위해 마약에 손을 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길거리에서 상처 입은 고양이 한 마리를 우연히 발견했습니다.

자신과 같은 처지라는 생각에 자신에게 있는 모든 돈으로 고양이를 치료했습니다.

그의 마음이 고양이에게 전달됐는지 고양이는 보웬의 옆을 떠나려 하지 않았고 어디든 그를 따라다녔습니다.

 

결국 보웬은 고양이와 함께 공연했는데, 보웬이 공연할 때면 그의 어깨 위에 올라왔고, 이런 모습에 사람들은 따뜻한 환호와  관심을 보였습니다. 평생 한 번도 받아보지 못했던 사람들의 따뜻한 관심에 '' 고양이를 보살피기 위해 보웬은 마약도 끊게 되었습니다.

 

그와 고양이는 '사연 있는 거리의 악사'로 불렸습니다.

내 어깨 위의 고양이 밥(Bob)”으로 발간한 책은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영화로도 제작되어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렇게 보웬과 행복한 삶을 살던 고양이 ''202014살의 나이로 떠났습니다.

인생의 동반자였던 ''이 떠난 뒤 보웬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고양이 밥(Bob)은 제게 친구 그 이상으로 소중했어요. 밥을 만난 뒤 제가 놓치고 있던 인생의 방향과 목적을 찾았습니다.”

 

인간과 동물은 서로를 이해하는 언어가 달랐지만, 기댈 수 있는 사랑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비로소 쉼과 평안을 이루었습니다.

 

헨렌 톰슨이란 분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고양이는 세상 모두가 자기를 사랑해주길 원하지 않는다.

다만 자기가 선택한 사람이 자기를 사랑해주길 바랄 뿐이다.”

 

사람들 주변에는 반려견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어쩌면,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 어렵고 두려워서, 또한 두 사람의 삶의 가치를 회복하지 못해서 그 자리를 반려견이 조금이나마 대신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두 사람의 만남, 여기에는 복되고 놀라운 가치가 있습니다.

이 두 사람이 함께하는 세계는 넓습니다. 그 안에 하나님의 나라가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둘씩 둘씩 세상으로 보내시는 겁니다. 그리고 그곳에 주님이 함께하십니다.

 

오늘 우리는 두 사람의 가치에 대한 말씀을 들었습니다.

 

세상은 점점 홀로 사는 세상이 되고 있습니다.

 

함께를 온전히 회복하신 분이 있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예수께서는 이 <함께>를 회복하시고자

<홀로> 십자가를 지셔야 했습니다.

 

이로써 두 사람이 함께하는 가치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1. 두 사람은 <기도의 역사>를 이루게 합니다.

 

2. 두 사람은 <사랑의 역사>를 이루게 합니다.

 

3. 두 사람은 서로 기대어 삽니다.

비로소 <쉼과 평안>을 이루게 합니다. 아멘!


?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64 수요예배 [7] 공격의 명령 김목 2021.11.20 119
163 수요예배 [6] 아간의 죄와 처벌 김목 2021.11.20 157
162 수요예배 [5] 약함이 아니라 악함 김목 2021.11.20 141
161 수요예배 [4]어리석은 순종의 승리 김목 2021.11.20 125
160 주일낮예배 두려워말고 담대하라! 한봉희 2021.11.13 505
159 수요예배 [5]다시 찾은 하박국의 기도 한봉희 2021.11.13 178
158 수요예배 [3] 하나님의 거룩한 전쟁 김목 2021.11.11 144
157 수요예배 [2] 할례와 유월절 김목 2021.11.11 125
156 수요예배 [1] 돌을 보듯 하라 김목 2021.11.11 140
155 주일낮예배 감사하기에 행복합니다(2) 한봉희 2021.11.06 227
154 주일낮예배 역설의 시대, 다시 말씀으로! 한봉희 2021.10.30 262
153 수요예배 [4]술과 우상에 빠진 세상 한봉희 2021.10.30 197
152 주일낮예배 감사하기에 행복합니다 한봉희 2021.10.23 288
» 주일낮예배 두 사람의 가치 한봉희 2021.10.16 214
150 주일낮예배 “이루는 인생”의 모토(motto) 한봉희 2021.10.09 602
149 수요예배 [3]높이 올라가는 세상 한봉희 2021.10.09 121
148 주일낮예배 자기를 넘어가는 사람 한봉희 2021.10.02 203
147 주일낮예배 내 마음 다스리기 한봉희 2021.09.25 320
146 수요예배 위로하시는 하나님 한봉희 2021.09.25 248
145 주일낮예배 내게 소망이 있는 것은! 한봉희 2021.09.18 312
144 수요예배 [2]물음에 답하시는 하나님 한봉희 2021.09.18 159
143 주일낮예배 제자리를 찾으라! 한봉희 2021.09.11 253
142 주일낮예배 너 하나님의 사람아! 한봉희 2021.09.04 512
141 수요예배 [1]하박국서를 열라! 한봉희 2021.09.04 122
140 주일낮예배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한봉희 2021.08.28 440
139 주일낮예배 피난처 있으니! 한봉희 2021.08.21 309
138 수요예배 [50,마지막회] 말씀대로 살아나신 예수님 한봉희 2021.08.21 115
137 주일낮예배 평등인가? 사랑인가? 한봉희 2021.08.14 153
136 주일낮예배 이것을 네가 믿느냐? 한봉희 2021.08.07 395
135 주일낮예배 우리에게 있는 것은! 한봉희 2021.07.31 286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4 5 6 7 8 9 10 11 12 13 14 Next
/ 14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