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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6.19 22:28

세상의 소금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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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한봉희목사
설교일 2021-6-20낮
본문말씀 마태복음5:13


세상의 소금으로 ! / 마태복음5:13     


5:13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금주 금요일 맞이하는 6.251950년 전쟁후 71년이 되는 날입니다.

당시 남한을 도와 참여한 참전국만 해도 16개국이나 되었고, 40개국이 넘는 나라에서 의료, 구호지원을 했습니다. 여기에는 수많은 희생자가 있었습니다.

한국군 사망자만 해도 약 14만 명, 부상자 45만 명, 실종자까지 모두 포함하면 60만 명이 넘습니다. 민간인 희생자만도 100만 명에 이릅니다.

이들의 희생이 없었다면, 우리에게는 오늘의 대한민국이 없을 수도 있었을 겁니다.

이들의 희생은 없어서는 안 될 소금과 같은 존재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약15만 명의 병사를 참전시키고, 800명 이상의 희생자를 낸 터키가 있습니다.

터키는 성경의 역사로 볼 때, 사도 바울이 전도여행을 통해서 초대교회들이 많이 세워진 곳입니다. 요한계시록 서두에서도 보면 소아시아 일곱교회에 보내는 편지를 볼 수 있는데, 바로 지금의 터키 땅에 있는 교회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무슬림이 99%를 차지하고 있는 사실상의 이슬람국가입니다. 이에 소수의 기독교는 핍박의 대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하나의 예를 들어보면, 콘스탄티노플의 본산이었던 그 유명한 이스탐블의 소피아 대성당은 1935년 박물관으로 개조되었다가 현재는 이슬람교 사원인 모스크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지금은 터키에 있는 교회당을 모두 모스크로 개조하고 있습니다.

현재 이러한 터키 땅에 0.7%의 기독교인이 있습니다. 극히 소수의 사람들입니다.

전에는 6.25전쟁에서 희생을 치루었고, 지금은 핍박 속에서도 신앙을 지키는 소금과 같은 존재 0.7%의 성도를 위해서 기도로 도우시기 바랍니다. 다시금 터어키에 무너진 교회들이 다시 서는 날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지금 우리는 우리나라에 기독교인 많고 적음을 계산할 때가 아닙니다.

기독교인 인구가 20%라고 하는 것에 마음을 둘 때가 아닙니다.

그러면 무엇입니까?

그것은 점점 생명을 잃어가는 세상에 참된 그리스도인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소금과 같은 기독교인이 있느냐 없느냐를 말할 때입니다.

바닷물 1kg에는 평균적으로 소금이 35g 들어있습니다. 3.5%의 염도입니다. 그러나 이 적은 양으로도 바닷물은 엄청 짠맛을 냅니다. 바닷물이 민물이 되려면 맹물을 넣어 100배로 희석해야 한다고 합니다. 3.5%의 미미한 양이지만 바닷물을 짠맛으로 바꾸고 있습니다.

역설적으로, 기독교 인구가 3.5%로 내려가면 비로소 세상에서 소금과 같은 존재가 될까요?

 

옛날에는 소금처럼 귀하게 여김받는 것이 없었습니다.

봉급을 영어로 샐러리(salary)라고 합니다. 이는 라틴어 살라리움(salarium)에서 온 말입니다. 그 첫음절인 (sal)소금을 뜻합니다. 로마 제국에서는 관리나 군인에게 봉급을 소금으로 지불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후에도 그 소금값으로 주던 급여를 살라리움이라고 부르게 된 것입니다. 이에 오늘날도 봉급을 받는 사람을 샐러리맨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봉급을 전달할 때, 이렇게 불러도 될 듯합니다. “당신은 소금과 같은 사람입니다.” 봉급을 받을 때는 나는 소금과 같은 사람입니다.”라고 말입니다.

 

소금은 아시다시피 자신을 녹이고 자신의 형체를 잃고서 그 안에 들어갈 때, 비로소 맛을 내며 그 역할을 다하게 됩니다. 곧 희생과 화합의 결실입니다.

 

생각해보세요.

녹아서 맛을 내는 소금은 소금 자신의 맛을 내지 않고, 소금이 들어간 음식의 맛을 냅니다.

 

뒤랑 팔로라는 사람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당신의 행복은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의 행복 속에서 발견할 수 있다.”

그래요! 소금은 전적으로 자기중심적이지 않습니다. 타자중심적 존재입니다.

 

구약성경에서도 소금에 대하여 중요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2:13 모든 소제물에 소금을 치라

네 하나님의 언약의 소금을 네 소제에 빼지 못할지니 네 모든 예물에 소금을 드릴지니라

이스라엘 사람들은 소금이 넣지 않은 곡식을 하나님께 드릴 수 없었습니다.

언약의 소금은 변할 수 없는 하나님의 영원한 언약을 의미합니다.

대하 13:5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서 소금 언약으로 이스라엘 나라를

영원히 다윗과 그의 자손에게 주신 것을 너희가 알 것 아니냐

 

그렇습니다.

소금은 이처럼 하나님과의 언약관계를 알게 하며, 음식의 부패를 막고, 맛을 내고, 생명을 지속시키고, 그것을 함께 먹음으로 서로 간의 유대를 강화하게 합니다.

 

이러한 소금이 버려져서 땅에서 밟히게 하지 않는 한 소금의 역할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소금이 음식물의 부패를 어떻게 방지하게 되는지 그 원인을 찾았습니다. 미생물학자 로버트 뷰캐년의해서 밝혀진 것입니다.

“....소금은 박테리아로 하여금 소금의 맛을 제거하기 위해 너무나 많은 에너지를 사용케 함으로써, 박테리아가 먹고 생식하는데 사용할 기운을 다 빼버려 결국은 죽게 만든다.” 하였습니다. 사실 소금의 맛을 제거하지 못하고 박테리아가 죽게 되는 것입니다. 소금은 자신을 희생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실상은 그것으로 소금의 존재를 비로소 드러내게 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우리 신체에는 0.9%의 소금이 있습니다. 

이것은 다른 어떤 것으로도 대치될 수 없는 생명과 같은 소중한 것입니다. 소금은 신체 내에서 신진대사, 해열작용, 지혈작용, 심장과 신장의 기능강화, 파괴된 세포의 급속한 회복, 비만 및 변비의 치료 등 수많은 작용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이 좋은 소금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9:50 소금은 좋은 것이로되 만일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이를 짜게 하리요

너희 속에 소금을 두고 서로 화목하라

 

여러분!

행복과 성공을 바라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무엇이 참 행복일까? 무엇이 참 성공일까? 하는 것은 이보다 중요한 문제입니다.

 

실제로 한 가정에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18세기에 캐리Carrey라고 하는 영국의 한 부유한 귀족 가정에 두 아들이 태어났습니다.

한 명은 조지George, 또 한 명은 윌리암William(1761-1834)입니다.

두 아들은 모두 옥스퍼드 대학을 우수하게 졸업한 수재들이었습니다.

그중 큰아들 조지George 돈을 많이 벌어서, 당대 최고의 부자로 떵떵거리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둘째 아들 윌리암William 인도에 대한 책을 읽고 인도를 사랑하는 마음이 생겨서, 그들에게 복음과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겠다는 결심을 하고 인도 선교사로 떠났습니다.

윌리엄의 행동을 본 온 집안사람들은  무척 놀라고 실망했습니다. 친구들도 그를 가리켜 어리석고 미쳤다고 했습니다.

(방송실 : 윌리암 캐리 사진송출)

인도에 들어간 윌리엄은 그곳에서 복음을 전파하면서 학교와 병원을 세우고 또한 성경도 편찬했습니다. 그는 비록 몸은 힘들었지만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며 사는 시간이 너무 행복했습니다.

윌리엄 캐리의 일생은 세계선교의 기초가 되었고 모두 그를 '현대선교의 아버지'라 칭했습니다.


그는 이 유명한 말을 우리에게 남겨주었습니다.

바로 이 사진영상 밑에 쓰인 영문입니다.

“Expect great things from God. Attempt great things for God.”

하나님으로부터 위대한 일을 기대하십시오. 하나님을 위하여 위대한 일을 시도하십시오.”


그러나 형 죠지는 부자로는 살았지만 남에게 베풀지 않아 구두쇠란 말을 들었습니다. 늘 자신의 재산을 누가 훔쳐갈까 봐 사람들을 의심하며 전전긍긍 불안하게 살았습니다.

 

대영백과사전에 윌리엄 캐리에 대해서는 한 페이지 반에 걸쳐서 기록하고 있는 데 반해, 당대에 떵떵거리고 살았던 조지 캐리에 대해서는 단 한 마디로 윌리엄 캐리의 형이라고만 기록되어 있습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속담이 있듯이 한 나라의 역사나, 혹은 개인의 삶이나 사람이 지나간 자리에는 반드시 흔적이 남습니다.

 

바로 그가 소금과 같은 존재로 살아간 흔적인 것입니다.

 

여기 한 사람 여배우의 삶의 흔적이 보세요.

세계 남성의 우상처럼 군림했던 미국의 여배우 마릴린 먼로(Marilyn Monroe)입니다.

그가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방송실 : 마릴린 먼로 사진 송출)

나는 한 여성이 가질 수 있는 모든 것을 가졌습니다. 나는 젊고 아름답습니다. 나는 돈도 많고 사랑에 굶주리지도 않았습니다. 수백 통의 팬레터도 매일 받습니다. 누구보다도 건강하고 부족한 것이 없습니다. 미래에도 그렇게 살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그런데 웬일일까요? 나는 너무나도 공허하고 불행합니다. 뚜렷한 이유를 찾을 수는 없지만 나는 불행하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결국 마릴린 먼로는 1962년 어느 날 밤, 나의 인생은 파장하여 문 닫는 해수욕장과 같다는 글을 남기고 자살로 36세의 생을 마감했습니다.

 

세상의 모든 행복의 조건들을 다 가지고 있으면 행복할 것 같지요. 사실 그것은 신기루에 불과합니다.

 

예수께서는 그리스도인 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다같이 오늘 본문 말씀을 읽겠습니다.

5:13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심은,

예수께서 이 세상에 소금처럼 그렇게 사셨기 때문입니다.

세인트헬레나 섬에 유배당하고 있으면서 위암으로 죽어가던 나폴레옹이 어느 날 탄식하며 말했던 그 유명한 말을 다시 기억합니다

총과 칼, 대포로 얻은 나의 땅은 날로 줄어가는데, 사랑과 겸손과 자비로 얻은 예수의 땅은 날로 늘어가는구나. 그는 승리자, 나는 패배자다.

 

성도 여러분!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소금입니다.

그러나 내가 세상의 소금이라는 정체성을 깨닫지 못하고 산다면, 의미있는 인생을 놓치게 됩니다.

 

19세기 목사의 아들로 태어난 독일 무신론 철학자 니체라는 사람을 아실 겁니다. 아버지는 니체가 5살 때 뇌질환으로 사망했고, 그는 복잡한 집안에서 자랐습니다. 더군다나 자기부정을 말하고 있는 기독교에 대하여는 적대감을 갖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니체가 한 말 중에 담아둘 말이 있습니다.

그는 현대인은 두 가지 병을 지니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하나는 자기를 잃어버리는 병이요,

다른 하나는 자기를 잃어버리고도 그것을 깨닫지 못하는 병이다.”

이 말을 한 니체도 안타깝게도, 마지막 생애 10년을 정신병원에서 보내고, 56세의 나이로 자기를 잃어버린 채, 생을 마감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자신에게 이 물음을 던집니다.

하나님은 나에게 왜 생명을 주시고 이 땅에 태어나게 하셨는가?

하나님은 왜 이 세상에서 거듭되는 삶의 역경 속에서 하나님 안에 있는 나를 찾게 하시는가?

나를 지으신 하나님이 나에게 오늘을 주셨고, 나와 함께하시는 나의 하나님을 확신하고 있는가?

 

오늘 언약의 말씀이 있는 자리에 함께하신 여러분!

주님은 우리를 소금과 같은 존재로 거듭나게 하셨습니다.

소금이 없는 곳에는 생명도 없습니다. 소금을 대신할 다른 것이 없습니다.

다같이

나는 소금과 같은 존재다.”

 

여기 후회를 남긴 사람이 있습니다.

아이폰, 아이패드, 맥북 등으로 세계의 기업이 된 애플 주식회사가 있지요.

1976년에 창립된 이 회사의 창시자는 스티브 잡스, 스티브 워즈니악, 로널드 웨인 이렇게 세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 중에서 로널드 웨인은 창업 11일 만에 주식지분 10%8백 달러, 100만원에 되넘겼습니다.

그 지분은 그 후 시간이 흐르고 흘러서 시가 220억 달러, 한화로 24조 원이나 되었습니다.


돈보다 큰 것은 그의 후회였습니다. 돌이킬 수 없는 이러한 후회입니다.

역사의 중심에 있을 때 내가 그곳에 있는 것을 몰랐습니다.

 

여러분! 함께 생각해보세요~

나라고 하는 소금이 지금 창고에 있지는 않습니까?

내가 그리스도인으로, 하나님의 자녀 살아있을 때, 그 존재가치가 얼마나 큰 것인가를 모른다면, 220억의 가치를 놓치고 후회하는 로널드 웨인의 후회를 반복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를 소금처럼 없어서는 안 되는 값비싼 존재로 거듭나게 하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십자가에 못박히시는 것을 택하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세상의 소금이 되라는 주님의 말씀을 내게 주신 말씀으로 받습니다.

이에 우리는 세상의 소금으로 살아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세상의 소금이 될 때

비로소~

죽음이 있는 곳에 영원한 생명을!

불안과 염려가 있는 곳에 하나님의 언약을!

부패와 부정이 있는 곳에 의로움과 섬김을!

분열과 분쟁이 있는 곳에 평화를! 

허무한 곳에 참된 가치를!

이루게 할 것입니다.

그리고 나의 소중한 삶을 감사할 것입니다. 

더욱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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