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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기예배
2021.04.03 21:35

고난주간에 들려주신 6편의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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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한봉희목사
설교일 2021-3-29월~4-2금
본문말씀 마4:1-11외 5편

 

              고난주간(3/29~4/2)에 들려주신 6편의 말씀을 되새김질하며 쉬지 않는 기도가 되도록 힘씁니다.

                 

월 새벽/ 4:1-11 / 사탄이 걸어온 시험             

화 새벽고후6:9-10 / 주님의 능력 안에 있는  성도            

수 새벽/ 마태복음8:1-17 / 주께서 우리의 질고를 지시고!   

목 새벽12:17-21  / 선으로 악을 이기고 화목하라                              

금 새벽고후5:14-17 /  생명은 내 것이 아닙니다

금요 밤기도회 / 8:9-15  / 육의 생각에서 영의 생각으로                 

 


/2021-3-29

찬송 : 342장       기도: 김성찬전도사      

 

사탄이 걸어온 시험  / 마태복음4:1-11

 

사탄은 예수님까지도 시험을 했습니다.

예수님을 시험한 사탄의 전략은 예수님을 따르는 성도들에게 당연히 겪게 될 시험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시험을 받으신 곳은 광야입니다.

4:1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4:2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

 

이 부분을 막1:12-13에서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1:12 성령이 곧 예수를 광야로 몰아내신지라

1:13 광야에서 사십 일을 계시면서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시며 들짐승과 함께 계시니 천사들이 수종들더라

그리고 누가복음 4장에서는 광야에서 사십 일 동안 성령에게 이끌리시며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시더라(1-2)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알게 되는 것은, 이미 성령께서 사탄에게 시험받으실 것을 아시고, 예수님을 이끌고 광야로 이끄셨다는 사실입니다. 성령께서는 사탄에게 너 예수님을 시험해보려거든 해보라, 너 사탄은 그와 같은 시험으로 예수님을 결코 넘어지게 하지 못하리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이 받으신 시험은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데 있어서 걸어오는 시험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같은 시험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물리치며 살게 됩니다.

 

그렇다면 사탄이 예수님을 시험한 것은 무엇입니까?

 

1. 하나님의 뜻 대신, 네 자신의 욕구를 만족시켜라

 

4:3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

4: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사탄은 예수 그리스도로 하여금 자신의 정체성을 의심케 하고흔들기 위해서 40일을 금식하시고 당장 해결되어야 할 육신의 양식 문제로 시험합니다.

너 먹고 살아야지, 죽으면 아무 것도 못해~ ”

돌을 떡덩이로 만들 수 있는 것은 무에서 유를 만드신 하나님의 신성으로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더욱이 말씀으로 세상을 지으신 하나님은 당연히 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할 수 있다 없다보다 중요한 것은 해야 하는 것인가 아닌가에 있습니다.

예수님은 신8:3로 대답하셨습니다.

8:3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곧 내 자신의 욕구를 내려놓고, 하나님의 말씀에서 인생의 답을 찾으라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을 시험하고, 그분의 말씀을 의심하라

 

4:5 이에 마귀가 예수를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4:6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되었으되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

4:7 예수께서 이르시되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사탄은 시91:11-12을 인용하면서 시험합니다.

91:11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천사들을 명령하사 네 모든 길에서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

91:12 그들이 그들의 손으로 너를 붙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아니하게 하리로다

 

말씀으로 오신 예수님을, 기록된 말씀을 놓고 시험한 것입니다.

이것은 말씀에 대한 믿음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이것은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시험하는 문제입니다.

말씀대로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면 그 다음부터는 사탄의 종이 될 것입니다.

말씀대로 하지 않는다고 하면 왜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하느냐고 할 것입니다.

 

이에 예수께서는 신6:16  대답하십니다.

6:16 너희가 맛사에서 시험한 것 같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시험하지 말고

 

지금도 사탄은 우리를 시험합니다.

너 하나님의 말씀대로 해봐 독을 먹어도 해를 당하지 않는다고 했으니 농약을 먹어봐~

세상의 소리로 사탄은 시험합니다. 너 교회 다닌다며 그래 교회에 다니니까 다 잘 되니~

그렇습니다. 믿음의 문제를 넘어서 이것이 사탄의 시험인가 아닌가를 분별해야 하겠습니다.

 

3. 십자가는 버리고, 스스로 영광을 취하라

 

4:8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4:9 이르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4:10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4:11 이에 마귀는 예수를 떠나고 천사들이 나아와서 수종드니라

 

이는 예수께서 희생하심으로 이루어야 할 고난의 십자가의 능력을 파괴시키고자 하는 사탄의 전략입니다. 경배받으셔야 할 하나님을 사탄이 대신하고, 사탄이 주는 천하만국의 영광을 받으라는 시험입니다.

 

사탄은 예수께서 대속의 십자가를 지지 않게 하려고 무척 애를 썼습니다

십자가에 달려 계실 때에 더욱 집요했습니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입을 통해서 모욕합니다.

27:40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대제사장들, 서기관들, 장로들의 입을 통해서 함께 희롱합니다.

27:42 그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그가 이스라엘의 왕이로다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올지어다 그리하면 우리가 믿겠노라

 

악으로 공격한 것이 아니라, 안락함으로 유혹한 것입니다.

 

사탄은 예배의 방향을 하나님으로부터 세상 만국의 영광으로 돌려놓으려고 합니다.

이에 주님은 신6:13로 대답하십니다.

6:13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를 섬기며 그의 이름으로 맹세할 것이니라

 

오늘을 사는 사람들 가운데 성공하기를 원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이 성공하고자 애쓰고 노력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과연 성공의 추구가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의 목적이 될 수 있냐는 것입니다.

실패한 것 같으나 성공한 인생이 있습니다. 반대로 성공한 것 같으나 실패한 인생도 있습니다.

성공과 실패는 나의 기준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준으로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서 원하시는 것은 성공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시험에서 이긴 것은 성공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순종함이었습니다.

 

실로 예수께서 광야에서 육체적 욕구 중에서 사탄과 싸우신 것은

바로 우리가 이 광야와 같은 세상에서 싸워야 할 영적 싸움입니다.

 

사탄은 시험을 걸었습니다.

1. 하나님의 뜻 대신 네 자신의 욕구를 만족시켜라

2. 하나님을 시험하고 그분의 말씀을 의심하라

3. 십자가는 버리고 스스로 영광을 취하라

 

기도의 자리에 함께 하신 성도 여러분!

예수님이 받으신 시험은 곧 우리가 받고 있는 시험입니다.

또한 예수님의 승리는 곧 나의 승리입니다.

 

히브리서 2:18 말씀입니다.

자기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시느니라”(2:18) 

 

지금 나에게 머물고 있는 시험이 있습니까?

오늘 함께 기도하는 가운데, 시험하려고 왔던 사탄이 물러가고, 천사가 시중드는 은혜로 가득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 주기도 / 찬송 3421

 

개인기도

우리는 지금 영적 싸움터에 나왔습니다.

진정 우리가 싸워할 것은 무엇입니까?

바로 내 안에 내가 있는 것 아닙니까?.......

성령의 인도하심 따라 오늘은 나를 내려놓은 기도에 집중하고

사탄을 물리치는 기도를 합니다.

 



/2021-3-30

찬송 : 370장 기도: 이대원장로 

 

주님의 능력 안에 있는 성도 (공감능력) / 고린도후서6:9-10

 

고후 6:9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아 있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고후 6:10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세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존재와도 비교할 수 없는 존재가 바로 인간입니다.

AI인공지능이 이미 상당부분에서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인공지능이나 로봇이 따라올 수 없는 인간의 능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이른바 공감능력이라는 것입니다.

공감능력은 다른 사람의 상황과 기분을 느낄 수 있는 능력입니다. 적극적으로 다른 사람의 경험 일부가 되어 그 느낌을 공유하며 그것을 통해 상대방과 소통하는 능력을 말하고 있습니다.

미래학자 제러미 리프킨공감의 시대라는 책에서 인간이 세계를 지배하는 존재가 된 것은 뛰어난 공감능력을 가졌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바 있습니다.

 

저는 여기서 중요한 점이 빠져 있다는 것을 체크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과의 공감능력입니다.

하나님이 설계하신 인간입니다.

하나님이 목적하신 인간입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려고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신 인간입니다.

당연히 하나님과 함께하는 인간으로 살아갈 때, 하나님이 뜻하신 인간으로 존재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이러한 공감능력을 이렇게 비유하셨습니다.

15: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떠나서는 결코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람으로 살 수 없습니다.

, 하나님 안에 있으면 하나님의 능력 안에 있는 사람으로 살 수 있다는 말입니다.

 

여기 모순에 빠진 인간을 봅니다.

하늘에 인공위성을 올려놓고, 모르는 길도 척척 안내하는 그 놀라운 네비게이션을 만든 인간이 자신의 인생이라는 길을 찾지 못하는 것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세계적인 바이올린니스트가, 세계적인 피아니스트가 악기를 경이롭게 연주하면서, 자신의 인생이 하나님의 악기라는 것을 발견하지 못하고 있다면 어떻게 생각합니까?

최첨단 휴대폰을 만들어서 지구 반대편에 있는 가족과 화상통화를 하는 인간이, 자신을 이 땅에 지어주신 하나님과 교통하지 못하고 있다면 어떻게 생각합니까?

우주를 찾아 우주선을 띄우며, 우주를 탐사하는 인간이,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앞에서 답안지를 제출하지 못하는 인간이라면 어떻게 생각합니까?

 

오죽하면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고 말했겠습니까?

 

하나님의 아들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이처럼 하나님과의 공감능력을 잃어버린 인간을 하나님의 자녀로 회복하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하나님과 교통하는 공감능력을 가진 존재로 회복하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성령 하나님 안에서 다시 찾아주시는 공감능력’ - 이를 다른 말로 영적 능력이 있는 인간으로, 성령의 능력 안에 있는 인간으로 다시 깨어 일어나게 하신 것입니다.

더욱이 예수께서는 이 인간사회의 불통의 장벽을 깨뜨리고, 사랑의 능력으로 회복하게 하시기 위해서 십자가의 길을 가셔야 했습니다.

 

그렇게도 예수 그리스도를 배척하고 핍박하던 청년 사울이 예수님의 대속의 은혜를 입은 후에는 그의 삶이 180도가 바뀌지 않았습니까? 자신의 지식과 행위로 될 수 있다고 했던 삶을 부정하고 오직 예수 안에서 그것이 그의 인생좌표가 되지 않았습니까?

 

이에 오늘 우리에게 이 말씀을 전해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고후 6:9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아 있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고후 6:10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한 마디로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 안에 있는 사람의 고백입니다.

 

바울은 이 고린도교회에 보내는 편지의 펜을 놓기 전에 이 소중한 말씀을 기록합니다.

고후 12:9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고후 13:4 그리스도께서 약하심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셨으나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아 계시니 우리도 그 안에서 약하나 너희에게 대하여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와 함께 살리라

 

우리는 이 찬송을 부르곤 합니다.

약할 때 강함 되시네 나의 보배가 되신 주

주 나의 모든 것 주안에 있는 보물을 나는 포기할 수 없네

 

그렇습니다. 주님이 내 안에 담아주신 주님의 보물을 포기할 수 없습니다.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 맨발로 무대에 올라 타악기를 연주하며 전 세계인에게 감동을 주었던 여성이 있습니다. 스코틀랜드 출신 에블린 글레니(1965~)입니다.

그는 8살 때 청각장애를 겪기 시작하여, 12살이 되면서 완전히 청력을 잃은 장애를 갖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귀를 잃은 그녀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다른 귀가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양쪽의 귀 대신 양 뺨과 머리, 가슴 등 온몸으로 소리를 받아들이는 연습을 했습니다.

그중에서도 극도로 섬세해진 발바닥의 촉각 하나하나가 그녀의 청각기관이 되었습니다. 소리의 진동을 더 잘 느끼기 위해 무대에서 신발을 신지 않은 채 연주를 해서, ‘맨발의 연주자로 불렸습니다.

 

여기서 잠간 그의 연주를 동영상으로 함께 하겠습니다.

[방송실: 에블린 글레니 타악기연주 송출, 130]

 

그렇습니다.

인생에서 찾아오는 시련은 좌절을 주기도 하지만, 반면 새로운 공감능력을 찾는 기회가 됩니다.

C.F 블렌차드는 이렇게 말합니다.

시련이란 꼭 방해 거리만 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을 우리의 발아래 놓으면 더 높이 올라갈 수 있다.”

 

에블린 글레니 그는 12살 때 청력을 완전히 상실함으로, 자기에게는 소리에 관계된 일에는 한 조각도 희망이 없다고 좌절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타악기 소리로 세계 정상에 올라 수많은 인생에게 감동을 주는 자가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인생의 답안지를 그렇게 멀리 두지 않습니다.

바로 각 사람의 마음의 집에 넣어두셨습니다.

 

불치병에 걸린 남자가 있었습니다. 세상의 그 어떤 약을 써도 병은 차도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용한 의사가 나타나 처방을 내려 줍니다. 당신의 병은 특이하여 3년 동안 말린 쑥을 달여 먹어야만 병이 나을 수 있소이다.그 때부터 이 사람은 3년 말린 쑥을 구하려고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녔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오랫동안 말린 쑥을 구할 수가 없었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병은 악화되었고, 결국 이 사람은 죽고 말았습니다. 이 사람이 쑥을 찾으러 다니기 시작한 지 7년째 되는 해에 죽은 것입니다.

만약 그가 바로 쑥을 사서 말렸다면 살아날 길이 열렸을 것입니다.

 

예수께서 하늘로 오르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이 말씀을 주셨습니다.

24:49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으로 입혀질 때까지 이 성에 머물라 하시니라

 

그렇습니다. 그들은 위로부터의 능력을 임하기를 기다리며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서 전심으로 기도할 때, 성령께서 각 사람의 머리위에 임하셨습니다. 곧 성령의 능력 안에 있는 교회입니다.

그들은 약한 자 같은 강한 자로, 가난 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케 하는 자로 일어났습니다. 그리스도의 영, 곧 성령께서 그들 곁을 떠나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평화의 가족 여러분!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 안에서 하나님과 공감하는 능력을 입은 자들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하심으로

우리에게 이 공감능력을 회복해 주신 예수께서 이 놀라운 약속을 하셨습니다.

 

15:7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오늘 우리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령 안에서 주신 이 놀라운 공감능력을 회복하기 위해 기도합니다.

주님의 말씀이 내 안에, 내가 주님 안에 거하는 자 되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할 수 있는

주님의 능력 안에 있는 자로 거듭 일어나야 하겠습니다.

 

기도 / 주기도 / 찬송 3701

 

개인기도

-주님과 공감능력이 있는 자로 살게 하소서

-당회원을 위해 / 교역자를 위해

-공감능력을 회복하는 사회, 우리나라가 되도록

 


 

/2021-3-31

찬송 : 471장 기도: 강성민 안수집사 

 

주께서 우리의 질고를 지시고! / 마태복음8:1-17

 

이 세상을 살면서, 질고가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예수께서는 말씀의 성취자로 오셔서 우리의 질고를 짊어지셨습니다.

8:17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에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

헬라어본문으로 직역하면 이렇습니다.

그가 우리의 연약함들을 떠맡으셨다. 그리고 질병들을 그가 지셨다.”

우리의 질고를 무거운 십자가 지심같이 다 떠맡으셨습니다. 아멘!

우리의 질고를 십자가에서 다 지셨습니다. 아멘!

 

오늘 본문 마태복음 8장에서는 여러 가지 질고에 놓인 사람들을

예수께서 치유하신 역사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러 형편에 놓인 이들을 치유하셨습니다.....

 

함께 살지 못하던 자를 치유하셨습니다.

  

산상수훈이 끝나고 예수님을 따라온 무리중에 가장 먼저 예수 그리스도 앞에 나온 사람은 나병환자였습니다. 이들은 사회적으로 부정한 죄인으로 낙인이 찍힌 사람들로 함께 하는 삶에서 완전히 격리되어 살아야 했습니다. 예루살렘성 밖으로 추방되었고, 성안으로 들어오면 돌로 쳐 죽임을 당했습니다.

무엇보다도 나병환자를 치유하신 일은 하나의 모델로서 전인적인 치유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8:2 한 나병환자가 나아와 절하며 이르되 주여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하거늘

8:3 예수께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이르시되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시니

즉시 그의 나병이 깨끗하여진지라

8:4 예수께서 이르시되 삼가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고 다만 가서 제사장에게 네 몸을 보이고

모세가 명한 예물을 드려 그들에게 입증하라 하시니라

 

여기 2절에서 번역되지 않은 부분이 있습니다. 바로 2절의 시작 부분이다.

이 두 글자다. => () 카이 이두 (그런데 보라!)

이는 큰 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보라! 나병환자가 (주께로) 나아온다.”

격리된 자가 예수께 바로 나아옴은 (율법)을 넘어 (은혜)가 열렸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1:17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

  

나병환자가 이렇게 간구합니다. 주여 원하시면

  

우리가 원하는 것보다 주께서 원하심이 더 온전하고 더 충만하고 더 영원한 것입니다.

예수께서도 그렇게 기도하셨습니다.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22:42)

 

예수께서 나병환자를 치유하시고 말씀하십니다.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고 다만 가서 제사장에게 네 몸을 보이고

예수께서 정치적 메시아로 판단을 받아 하나님의 뜻도 이루지 못하고 권력자로부터 배척을 당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에 조용히 제사장에게 병이 나은 것을 보이고, 정결함을 확인받도록 하셨습니다. (새 두 마리를 드려 정결케 하는 의식을 행하게 하였다 / 13~14)

예수님의 이러한 치유는

그에게 거리두기에서 해제되어 참 자유가 주어졌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스스로 일어날 수 없는 자를 치유하셨습니다.

 

 

8:5 예수께서 가버나움에 들어가시니 한 백부장이 나아와 간구하여

8:6 이르되 주여 내 하인이 중풍병으로 집에 누워 몹시 괴로워하나이다

 

당시 가버나움에는 외국인을 용병으로 하는 헤롯의 군대가 주둔하고 있었습니다. 여기 백부장은 로마인으로 보입니다. 후에 예수께서 유대인들로부터 배척당하실 것과는 대조적으로 이방인이 먼저 예수께로 다가와 간절히 구하는 것은 그 자체가 계시적인 사건입니다.

더욱이 하인의 병을 위해 겸손히 예수께 나아가는 행위는 겸손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으로부터 제한할 수 없는 (은혜)의 문이 열려있음을 증거케 하였습니다.

  

한 백부장이 나아와 간구하여

 

우리의 간구는 예수님의 발걸음을 옮기게 합니다.

8:7 이르시되 내가 가서 고쳐 주리라

 

백부장은 당시 이방인의 집에 들어가지 않는 유대인의 삶을 알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주의 (말씀)은 모든 경계를 넘어 어디에나 들어갈 수 있음을 (믿음)으로 고백합니다.

8:8 백부장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사옵나이다

8:9 나도 남의 수하에 있는 사람이요 내 아래에도 군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

8:10 예수께서 들으시고 놀랍게 여겨 따르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노라

 

예수께서 이 백부장의 믿음에 대하여 대조적으로 당시 이스라엘 사람을 향하여 말씀하십니다.

8:11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동서로부터 많은 사람이 이르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 앉으려니와

8:12 그 나라의 본 자손들은 바깥 어두운 데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이는 인간이 겪는 극도의 괴로움과 (완전한) 절망을 말합니다.

 

그러나 여기 이방인의 경계를 넘어

예수께 나아와 믿음으로 간구한 백부장에게 (완전한) 희망을 선포하셨습니다!

8:13...가라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 하시니 그 즉시 하인이 나으니라

  

자기를 찾지 못하는 자를 치유하셨습니다.

 

8:16 저물매 사람들이 귀신 들린 자를 많이 데리고 예수께 오거늘

예수께서 (말씀)으로 귀신들을 쫓아 내시고 병든 자들을 다 고치시니

 

귀신은 천사의 자리를 떠남으로 생겨났습니다.

결국 자기 자리를 잃은 존재입니다.

귀신이 사람에게 들어가면 사람이 있어야 할 자기 자리를 잃게 됩니다.

 

그래요. 그리스도의 영 외에 다른 영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훼방하고 혼미케 합니다.

하지만 주님의 말씀은 이러한 악한 영의 세계를 물리칩니다.

다가오는 시대는 점점 환란의 역사가 강해지는 시대입니다.

사탄 마귀는 하나님을 믿는 자들을 넘어지게 하려고 시험합니다.

예수께서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셨으나 말씀으로 물리치셨습니다.

마귀와 귀신들을 몰아내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충만한 삶으로 세상을 이겨야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평화의 가족 여러분!

주께서는 치유하시는 하나님으로 우리 가운데 오셨습니다.

 

53: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14~15절을 보면서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8:14 예수께서 베드로의 집에 들어가사 그의 장모가 열병으로 앓아 누운 것을 보시고

8:15 그의 손을 만지시니 열병이 떠나가고 여인이 일어나서 예수께 수종들더라

 

여러분! 우리에게는 이러한 주 예수님이 함께 하십니다.

....

들어가사 - 병든자의 집에 주께서 들어가십니다. 아멘!

보시고 - 그 질고를 보십니다. 아멘!

만지시니 십자가에 못자국난 손으로 만지십니다. 아멘!

떠나가고 질고가 떠나갑니다. 아멘!

일어나서 병든자가 다시 일어났습니다. 아멘!

 

그리고 이 말씀입니다.

예수께 수종들더라

우리가 다시 일어나야 할 이유는 사랑과 섬김의 인생 가치를 새롭게 하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기도합니다.

주여! 십자가에 못 자국 난 손으로 나를 만지소서.

머리로부터, 눈과 귀와 코와 입을 지나, 심장과 폐와 장을 만지소서.

척추와 골반을 지나 무릅과 발바닥까지 만지소서.

그리하시면 내 병이 낫겠나이다!”

 

기도 / 주기도 / 찬송 4711

 

개인기도

치유를 위하여 (자신,가족,성도들,이웃,코로나세상)

- 환우 여러분들, 외에도 심적인 고통을 겪고 있는 이들.....

안수집사님의 사역과 가정과 직장.....

교회의 각부서, 기관을 위하여

 

 

 

/2021-4-1

찬송 : 308장 기도: 청년회장 윤찬영 

 

선으로 악을 이기고 화목하라  /  로마서12:17-21                          

 

탈무드에서 흥미로운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노아의 홍수때의 일입니다. 노아는 모든 짐승을 암수 한 쌍씩 방주로 받아들입니다. 그런데 ’()이 혼자서 덜렁덜렁 오는 것입니다. 노아가 전부 한 쌍씩 들어오라고 했는데 너는 왜 혼자 들어오느냐?” 하며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할 수 없이 선은 자기와 짝이 될 것을 찾아 돌아다니다가 ’()을 데리고 왔습니다.

이 이야기는 세상에 왜 악이 있을까? 선과 악이 함께 공전하고 있는 것을 골치 아프게 생각한 나머지 한 지혜자가 지어낸 이야기 같습니다.

    

선과 악이 있으므로, 악은 선을 보고 자기를 보고, 선은 악을 보고 자기를 봅니다.

선이 악에게 잠시 지는 것 같이 보일지라도, 결국에는 선이 악을 이길 것입니다.

혹 악이 이기는 세상이라면, 우리가 살아 있어야 할 이유조차 없는 세상이 되고 말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선은 악을 이깁니다.

  

그럼에도 세상이 고통하는 것은 악을 악으로 갚으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한 젊은 농부가 이웃 농부와 오랫동안 살아왔는데, 어느 날 참기 어려운 모욕을 당했습니다.

화가 난 농부는 복수할 양으로 존슨초라고 하는 잡초씨를 이웃 농부의 밭에 확 뿌려버렸습니다. 그 밭에서 잡초가 무성하게 자랐습니다. 그런데 묘하게 그 이웃 농부의 딸과 이 젊은 농부가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장인이 된 그 이웃 농부가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고 있는 그 밭을 사위에게 결혼 선물로 주었습니다. 이를 받은 젊은 농부는 그 밭의 잡초를 없애느라고 무려 30년이 넘도록 평생을 고생했다고 합니다.

결국 그 잡초가 자기에게 돌아온 것입니다. 심은 대로 거둔 것이지요~

 

가만히 보면 못된 사람 버릇 고친다고 하다가 자기가 더 나빠지는 것을 봅니다.

정의를 위한다고 하다가 결국 자기가 더 악해지는 것을 겪곤 합니다.

    

성경은  오늘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합니다.

12:17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12:18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

12:21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간단하게 담으면 이 말씀입니다.

악을 악으로 갚지 말라!

모든 사람과 화목하라!

선으로 악을 이기라!

 

여기 악을 선으로 이긴 분이 있습니다.

누구입니까?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십자가에서 주님은 기도하셨습니다. 그렇게도 불의하게, 치욕적으로, 처참하게, 고통스럽게 못을 박은 자들을 생각하며 주님은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23:34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그렇습니다.

십자가는 악을 선으로 이긴 놀라운 표적입니다.

    

성도 여러분!

악을 이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을 하나님께서 제시하셨습니다.

선으로 악을 이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악한 세상에 선하신 독생자을 보내셨습니다.

악으로 악을 이길 수 없습니다. 더 악하여 질뿐입니다.

    

누가 묻습니다.

의로운 스데반 집사가 돌에 맞아 죽을 때에 하나님은 무엇을 하고 계셨습니까?

이에 스펄전 목사님은 이렇게 확실하게 대답을 해줍니다.

하나님께서는 스데반으로 하여금 원수를 위해서 기도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스데반을 돌에 맞지 않도록 피신시키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자기를 죽이는 자들을 위해서 기도할 수 있는 그 힘과 그 용기와 그 사랑, 그리고 참 승리를 그에게 주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원수를 갚을 수 있는 권한을 주지 않으셨습니다.

12:19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12:20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18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12:18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

모든안에 바로 나 자신도 넣어주셨습니다.........

    

천로역정을 쓴 존 번연은 이렇게 말한 바 있습니다.

참 이상하다 마귀와 더불어 대적해야 할 성도들이 자기들끼리 싸우고 있다니!”

원수까지도 사랑해야 할 교회가, 오히려 다투는 교회로 세상에 보여진 적이 한 두 번이 아닙니다. 결국 하나님의 능력이 떠난 교회가 적지 않습니다.

 

악은 분쟁을 일으키지만, 선은 평화를 가져옵니다.     

예수께서는 죄악으로 인하여 완전히 타락한 세상에 평화의 왕으로 오셨습니다.

선한 자를 찾아서 평화조약을 맺으신 것이 아니라, 죄인의 짐을 스스로 지시고 평화의 언약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 나 같은 죄인과 평화의 언약을 맺으신 것입니다.

 

    

퀴즈 한 가지 내겠습니다.

예수께서 8복을 말씀하셨습니다.

그 중에서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게 하시는 복을 받는 자는 누구입니까?

........... (맞습니다. 화평하게 하는 자입니다.)

5:9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주님은 화평이 있는 곳에 복을 주셨습니다.

더욱이 화평하게 하는 자에게는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모든 것을 상속받을 수 있는 권리가 있는 아버지의 자녀가 되는 신분이 주어졌습니다.

    

화평을 이루십시오. 그곳에 나의 아버지 하나님이 계십니다.

12:14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역으로 하면, 주를 보는 자가 있다고 말씀하네요~

여기서 주를 본다고 하는 말씀에서 본다는 헬라어 원어 호라오눈으로 보다, 마음으로 보다, 경험하다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누가 주를 보는 자입니까? 누가 주를 경험하는 자입니까?

바로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는 자입니다.

 

이 평화, 평안, 화평은 세상이 줄 수 없습니다.

1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이 평안, 이 평화를 주시기 위해서 주님은 값을 치루셨습니다.

53: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오늘 우리는 기도하는 자리에 함께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선으로 악을 이기고 화평케 하는 자의 간구를 들으십니다.

 

벧전 3:11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며 그것을 따르라

벧전 3:12 주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의인의 간구에 기울이시되

주의 얼굴은 악행하는 자들을 대하시느니라 하였느니라

 

이 말씀은 시3414~16절에서 인용된 말씀입니다.

시편 34편을 함께 펴겠습니다.

34:14 악을 버리고 선을 행하며 화평을 찾아 따를지어다

34:15 여호와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그들의 부르짖음에 기울이시는도다

34:16 여호와의 얼굴은 악을 행하는 자를 향하사 그들의 자취를 땅에서 끊으려 하시는도다

그리고 이어지는 17절 말씀은 이것입니다.

34:17 의인이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그들의 모든 환난에서 건지셨도다

 

하나님의 자녀된 여러분!

이 세상은 스스로 정화시킬 능력이 없습니다. 스스로 선해질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선으로 악을 이기는 그리스도인이 있어야 합니다.

화평케 하는 성도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고난당하는 자의 간구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그들의 간구에 귀를 기울이시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는 선으로 악을 이기며 화평케 하는 자로서 간구할 것입니다.

주께서 이러한 간구를 외면하실 수 없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오늘 새벽에도 이렇게 간구하는 자를 찾으십니다. 기도합니다.

 

기도 / 주기도 / 찬송 3081,3

 

개인기도

선으로 악을 이기는 힘을 주소서

평화를 잃은 세계에 화평케 하는 복 있는 자가 되게 하소서

청년부, 다음 세대가 악에 빠지지 않고 복음의 능력 안에 머물 수 있도록

북한에 있는 성도의 고난을 생각하며,.... 미안마에 민주주의의 회복을...

 



/2021-4-2

찬송 : 149장 기도: 이숙애권사 

 

생명은 내 것이 아닙니다 / 고린도후서5:14-17

 

고난주간을 통해서 새벽에 주신 말씀들 제목만이라도 기억해봅니다.

/사탄이 걸어온 시험

/주님의 능력안에 있는 성도(주님과 공감하라)

/주께서 우리의 질고를 지시고

/선으로 악을 이기고 화목하라

 

그리고 오늘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말씀입니다.

생명은 내 것이 아닙니다


1. 생명이 자기의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미국에서 식당을 경영하는 사람으로서 대성공을 한 사람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는 뉴욕에서 캘리포니아까지 또 캐나다에서부터 멕시코만까지의 미 전역에 간이식당을 차렸습니다. 그런데 그가 임종을 앞두게 되었습니다. 그의 임종을 지켜보기 위해 모인 가족들에게 그가 남긴 말이었습니다.

햄을 얇게 썰어라

무슨 말인지 아시죠~

이런 사람은 돈은 많이 모았는지 모르지만, 그의 인생은 항상 돈이라는 주인님에게 종노릇하다가 그의 생명을 헐값으로 날려보낸 사람입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16:26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

무엇은 물질입니다. 그러나 목숨은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생명입니다. 어떤 물질로도 만들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의 그 어떤 것으로도 우리에게 주어진 생명을 대신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 생명이 무엇들을 위해서 사용될 때, 생명은 자기의 것이 되고, 결국 물질의 노예가 되는 생명이 됩니다.

 

2. 그러므로 내 생명을 대신할 수 있는 분은 한 분밖에 없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십자가에서 죽은 사람은 누구입니까? 예수님 혼자 죽으셨습니까? 아닙니다.

 

고후 5:14 ....우리가 생각하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모든 사람이 죽었습니다. 나도 거기서 죽었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이 외침~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이는 바로 나의 죽음을 선언하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은 내가 죽어야 내가 다시 살 수 있음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그 어떤 것도 우리에게 영원한 가치를 담은 생명을 줄 수 없습니다.

 

물질이 그렇게 하지 못합니다. 권력이 그렇게 하지 못합니다.

첨단 과학이, 첨단 의학이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생명이 자기 것이 아닌 것을 알고 다시 일어난 사도 바울의 자기 정체성 고백입니다.  

1:1 사람들에게서 난 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도 된 바울은

그리고 저의 정체성을 만들어준 말씀이기도 한 빌3:12절 말씀입니다.

 

3:12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여러분! 예수께서 부활하신 첫 모습을 본 사람은 누구입니까?

곧 예수께서는 누구에게 부활의 첫 소식을 듣게 하시기를 원하셨습니까?

예수님은 의도적으로 제일 먼저, 지극히 사회적으로 비천한 사람, 그러나 은혜를 받고 인생의 수렁에서 건짐받은 사람 막달라 마리아에게 보이셨습니다.

 

그렇습니다. 나는 그 십자가에서 죽었습니다.

그러므로 내게 주신 거듭난 생명은 내게 소유권이 있지 아니한 새 생명입니다.

 

3.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고후 5:15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

고후 5:16 그러므로 우리가 이제부터는 어떤 사람도 육신을 따라 알지 아니하노라

비록 우리가 그리스도도 육신을 따라 알았으나 이제부터는 그같이 알지 아니하노라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산 자는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습니다.

도리어 자신을 위해 살려고 하면 다시 죽게 됩니다.

 

탈무드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 랍비가 읍내를 걸어가고 있는데 어떤 이가 자기 뜰안에 있는 돌맹이들을 길거리에 내다 버리고 있는 남자를 보았습니다. 랍비는 그대는 왜 그런 일을 하고 있소?”하고 물어보았습니다. 그 남자는 웃기만 할 뿐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습니다. 10년이 지나고 20년이 자나서, 그 남자는 자신의 땅을 팔게 되었습니다. 막상 남의 손에 넘기고, 다른 곳으로 가려고 내딛기 시작하자마자 전에 자기가 버린 그 돌에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는 이야기입니다.

자기 때문에 자기가 넘어진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이 되어야 복있는 사람입니까?

    

1)복있는 사람은 자기를 잊어버릴 수 있는 사람입니다.

 

사실 가장 행복한 순간은 내가 지금 일하고 있구나 하는 것조차 잊어버리는 순간입니다.

 

시인 휘티어는 이기심은 영혼의 감옥이라고 했습니다.

성 어거스틴은 인간에게는 자기 자신에게로 구부러지는 성질이 있다고 했습니다.

  

예수께서는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 잃는다는 말의 헬라어 원어는 묶어 놓았던 것을 풀어 놓는다는 뜻이 있다고 합니다.

이것은 자기라는 울타리속에 갇혀 있던 자신을 다른 사람들 가운데 풀어 놓는 것을 뜻합니다. 정말 불행한 사람은 자기를 풀어놓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자아의 사슬에 얽매인 사람입니다.

 

2)복있는 사람은 남을 발견하는 사람입니다.

곧 다른 사람이 있음으로 내가 있음을 아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소유형에 머물지 않고, 나눔형으로 바꾸게 됩니다.

소유형의 인간은 자기가 가지지 않으면, 행복하다고 생각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소유욕이 도리어 있어야 할 중요한 것들을 잃게 합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하신 일은 바로 자신의 살과 피를 남에게 나누어 주신 일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원리를 과소평가합니다.

주는 것은 곧 가지는 것이다라는 원리입니다.

가질수록 많아지는 것으로 아는데, 실상은 주는 것이 많아지는 것입니다.

 

열왕기상 17장에 보면 엘리야와 사르밧 과부의 만남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정말로 흉년이 들어 먹을 양식이 없어서 마지막으로 한 끼분의 양식을 먹고 죽음을 준비하려던 사르밧 과부의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없는 중에서도 그 과부에게 먼저 선지자 엘리야에게 먹을 것을 가져오게 한 다음에 과부와 아들이 먹게 하셨습니다. 과부가 이에 순종하여 결국 비가 다시 내릴 때까지, 흉년이 끝날 때까지 통의 가루와 병의 기름이 떨어지지 아니하는 이적을 하나님께서 행하셨습니다.

이 여인의 믿음에는,

지금까지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살았다는 고백이 있습니다.

그리고 내어줌이 없이는 더이상 남을 것도 없다는 고백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인간을 위해 내어줌이 되시고 그 모든 인간의 주가 되셨습니다.

 

3)복있는 사람은 자신을 불태우는 열정을 가지고

재가 될 때까지 헌신하는 사람입니다.

 

14:8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번제단에 바쳐진 제물은 불태워지고 재가 됩니다.

케에르케고오르는 열정이 없는 삶은 참 삶이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는 우리는 자신을 바침으로 구원을 얻는다고 했습니다.

 

실로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위하여 자신을 바칠 때, 우리의 연약함과 우리의 실패와 그리고 그 죽음까지도 정복됩니다.

 

어떤 목사님이 점심을 잡수시기 위해 어느 식당에 들어갔습니다.

테이블보는 더럽고 워이터들도 더러웠습니다. 친절하지 않고 음식맛도 별로였습니다.

식당을 예약하려던 생각마저 취소하고 나왔습니다.

그 후에 다시 그 식당을 지나가게 되었는데, 이러한 팻말이 붙어 있었습니다.

새 주인이 경영합니다

식당이 얼마나 달라졌나 하고 들어가 보았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인상이 좋은 사람이 나오더니 친절하게 인사를 하고 안내를 합니다. 테이블보며, 웨이터의 옷이며 모든 것이 깨끗하였습니다. 종업원들이 친절하고 음식맛도 좋았습니다. 다음에는 다른 이들도 소개하여 함께 와서 식사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헌 집에 들어가면, 그 집을 새 집으로 만듭니다.

새 사람이 들어갔기 때문입니다.

 

다같이!

고후 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주께서 나를 위해 사시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새로운 주인으로 모신 삶은 항상 새로운 것을 창조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생명은 내 것이 아닙니다.

1)새생명을 받은 복있는 사람은 자기를 잊어버릴 수 있는 사람입니다.

2)새생명을 받은 복있는 사람은 남을 발견하는 사람입니다.

곧 다른 사람이 있음으로 내가 있음을 아는 사람입니다.

3)새생명을 받은 복있는 사람은 자신을 불태우는 열정을 가지고 재가 될 때까지 헌신하는 사람입니다.

나는 주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지금 어떤 삶의 모습을 가지고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라고 말하겠습니까?

내 안에 들어오시는 새 주인 예수님을 보여야 하겠습니다.

 

                   

기도 / 주기도 / 찬송 4071


개인기도

권사님들과 구역가족을 위해,

새생명 받은 자의 삶을 위해...

아직 구원에 이르지 못한 가족과 이웃....

 

 

(성금요일 밤기도회2021-4-2

         기도 : 이영삼안수집사 

 

육의 생각에서 영의 생각으로  /  로마서8:9-15      

 

8:10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말미암아 죽은 것이나 영은 의로 말미암아 살아 있는 것이니라

8:11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8:12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8:13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8:14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8:15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셍떽쥐베리는 어린왕자에서, 흥미롭게도 어린이와 어른을 숫자로 구별하는 것을 봅니다.

어른들은 숫자를 좋아해서 그 애가 몇 살이지? 형제는 몇이나 있다고 하니? 체중은 얼마나 되니? 아버지가 돈을 얼마나 번다고 하니?” 등의 숫자로 이야기를 한다는 겁니다.

아이들은 어떤 놀이를 좋아하니? 나비를 채집하지 않니?” 식으로 이야기하는데 말입니다.

 

이는 어른들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생각이 점점 세속적으로 바뀌고 있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은~

인간의 육에 속한 사람의 죽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8:12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8:13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그리고 예수께서 무덤에서 부활하심은~

예수 그리스도를 죽음에서 살리신 하나님의 영이 머무는 자로서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지게 된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8:11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육신대로 살아온 인간의 생각이 어리석음을 보이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스승이 제자에게 돌멩이 하나를 주며 말했습니다.

이것을 시장에 가지고 가서 팔아 보아라.

다만 누가 돌에 관해 묻거든 계속 거절하면서 그 가격에는 팔지 않겠다고 말하거라.”

 

제자는 의아했지만, 스승의 말대로 시장에 나가서 보자기를 펴고, 그 위에 돌멩이를 올려놓고 있었습니다. 그의 모습을 보고 사람들은 아무 가치 없는 돌을 가지고 나왔다며 제자에게 핀잔을 주며 비웃고 지나갔습니다.

 

그런데 그때 한 노인이 다가와 그에게 말했습니다.

여기 돈을 줄 테니 그 돌멩이를 나한테 팔게나”"

하지만 제자는 스승의 말에 따라 그 가격에는 팔지 않겠다고 대답했습니다.

예상치 못한 제자의 단호한 행동에노인은 그 돌을 귀한 것으로 생각했고 가격을 높여 말하며 다시 팔라고 했지만, 제자는 또다시 거절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지나가던 사람들은 노인이 돌을 사기 위해서  흥정하는 모습에 그 돌이 무엇인지 더욱 궁금해졌고, 그렇게 하나둘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서로 그 돌멩이를 사겠다며 흥정에 끼어들었고 결국 돌멩이의 가치는 꽤 많이 올라갔습니다. 사람들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흥정하는 동안 제자는 돌을 보자기에 싸서 다음에 오겠다면서 태연하게 돌아갔습니다.

 

시장에서 돌아온 제자에게 스승은 말했습니다.

"이제 알겠느냐? 사람들이 정하는 가치란 얼마나 헛된 것인지를..."

명품은 사람들이 정한 가치 중 최고의 것으로 인정되어 값비싸고 귀하게 여겨집니다.

하지만 아무리 값비싼 것들로 치장한다 해도그것은 물건의 값어치이지 절대로 자신의 가치가 될 수는 없습니다. 곧 육에 속한 가치는 될 수 있어도, 영에 속한 가치에 이를 수는 없습니다.

 

독일의 신학자요 목사요, 순교자의 삶을 살았던 본훼퍼(Dietrich Bonhoeffer, 1906~1945)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가치 있게 여기는 것을 우리는 가치 없게 여기고,

세상 사람들이 가치 없게 여기는 것을 우리는 가치 있게 여긴다.”-본회퍼

무슨 뜻일까요?

정말 생명에 담을 수 있는 가치 있는 삶이 무엇인가를 찾고 추구하는 것이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이 아니겠습니까?

 

예수께서 하신 말씀에서 이 가치의 이해를 도와줍니다.

25:40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내게 한 것이니라

지극히 작은 자에게 주님의 가치를 동격화 하셨습니다.

지극히 작은 것(물건)이 아니라, 작은 자(인격)임을 구분해야 합니다.

 

많은 경우에 있어서, 우리의 이성적인 생각을 거꾸로 뒤집어 놓을 때, 하나님의 생각과 그 길에 가까워진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55:8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55:9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

 

육의 생각은 탐심이라는 수렁에 빠지게 합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십니다.

12:15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

결국, 그 수렁에서 나오지 못하고 사망에 이릅니다. 본문보다 앞에 있는 말씀입니다.

8:5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8:6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영의 생각은 생각지도 못했던 하나님으로부터의 은혜를 경험케 합니다.

 

1993년부터 1997년까지 제16대 주한 미국 대사를 역임했던 제임스 레이니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가 외교관으로서 삶을 마무리하고 미국 에모리 대학교 교수로 인생의 다음 단계를 시작했을 때였습니다.

길을 걷다 자신의 집 앞에 앉아 있던 한 노인을 만났습니다

외로운 노인의 모습에 말을 걸었던 것을 계기로 노인과 종종 티타임을 가지는 관계가 되었습니다. 레이니는 인생의 황혼기에 있는 노인에게 위로자가 되었습니다

어느 날 레이니는 항상 보이던 노인이 길에서 보이지 않자, 그 노인의 집을 방문하였고, 노인이 전날 별세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노인은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전 코카콜라 회장이었습니다.

한 유족이 레이니에게 노인의 유서를 건넸는데, 그 내용은 놀라웠습니다.

내 말벗이 되어 준 레이니 고마워요. 당신에게 25억 달러(한화로 약 3조 원)와 코카콜라 주식 5%를 유산으로 남깁니다.”

그림입니다.

원본 그림의 이름: 에모리대학교 캠퍼스.jpg

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1280pixel, 세로 774pixel



레이니 교수는 이렇게 받은 유산을 에모리 대학의 발전기금으로 내놓았습니다. 그 후 그는 에모리 대학 17대 총장으로 섬겼습니다[방송실 : 에모리대학교 사진 송출]

이 에모리 대학교는 1836년에 감리교 목사를 양성하기 위한 교육기관으로서 설립된 대학이었습니다. 1970대에 들어서면서 급성장하여,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 시에 소재한 상위권 명문 사립대학교로 우뚝 서게 되었습니다.

 

한 외로운 노인의 말벗이 되어드린 것밖에 없었는데,

그 영적 가치는 계산으로 할 수 없는 더 큰 역사를 이루게 한 것입니다.

 

여기에는 하나님의 생각이 있기 때문입니다.

영의 생각이 작용했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앞서서 겟세마네 동산에 엎드린 기도는

하나님의 생각을 구하고, 하나님의 생각에 순종하기 위한 기도였습니다.

 

우리가 십자가를 지는 것은 육의 생각을 물리치고, 영의 생각으로의 끊임없는 변화를 이루는 삶입니다. 2000년 전의 오늘입니다. 주께서 무덤에 머물러 계십니다. 나를 육의 생각에 잡히게 하는 것들을 이 시간 주님의 무덤에 던져버리고, 주님의 생각으로 다시 일어나야 하겠습니다.

오늘 우리도 하나님을 외롭게 계시는 분이 아닌, 우리와 함께하시는 분으로, 그분께 기도와 생각과 걷는 길목에서 벗이 될 때, 하나님은 오늘 우리의 기도를 값으로 측량할 수 없는 은혜로 이루실 것입니다. 아멘

 

2부 기도회

주의 피로 이룬 샘물

보혈을 지나

주님 내게 오시면

괴로울 때 주님의 얼굴 보라

  

고난 주간에 들려주신 여섯 편의 말씀을 되새김질하며 쉬지 않는 기도가 되도록 힘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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